EV6가 드디어 1차 업그레이드를 단행했다. 3년 만의 변신이다. 굳이 따지자면 상품성 개선모델. 안전 및 편의장비들의 완성도를 높였고,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도 개선했다. 메이커는 가격을 동결했다지만, 보조금이 줄어 소비자 부담은 늘었다. 이 정도가 변화의 핵심이다. 기아가 제공한 GT-라인 롱레인지 모델을 시승했다. 19인치 타이어, 빌트인 캠을 적용한 2WD 모델이다.
배터리가 가장 큰 변화를 거쳤다. 에너지 밀도를 높인 4세대 배터리를 적용했다. 용량이 77.4kWh에서 84kWh로 늘어, 주행가능거리도 475km에서 494km로 늘었다. (롱레인지 2WD, 19인치 타이어, 빌트인 캠 미적용 기준) 시승차의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는 456km다.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는 계산이 좀 필요하다. 배터리 잔량 10%에서 충전을 시작해 80%까지만 충전한다면 실제로는 배터리의 70%만 쓰는 셈이다. 주행가능 거리도 70% 정도로 줄어드는 셈이다. 시승차 기준으로는 320km 정도다. 실제로는 공인 연비보다 훨씬 더 좋게 연비가 나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실제로 파주-서울 55km 구간을 경제운전으로 달린 연비는 6.7km/kWh로 공인복합 연비 4.9km/kWh보다 훨씬 더 좋게 나왔다.
급속 충전 속도도 빨라졌다. 배터리 잔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350kW 초고속 충전기로 18분이면 된다. 플러그를 연결하면 바로 충전을 시작하고 결재까지 이뤄지는 플러그&차지 기능도 있어 편하게 충전할 수 있다. 물론 이용자가 밀려서 기다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충전 예약 기능을 익혀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불편함은 최소화할 수 있다. 전기차를 탄다는 건, 내연기관차를 타는 것과는 다른 생활 패턴을 요구한다.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에는 정보와 기능이 넘쳐난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하나하나 확인하다 보면 그 안에서 길을 잃어버릴 정도다. 그중 가장 경쟁력 있는 기능이 인공지능 기반의 음성 인식 시스템이다.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그 의미를 알고 대답하고 대응한다. 간단한 인사, 날씨, 음악, 목적지 선택 등 아주 많은 기능을 음성으로 처리할 수 있다. 운전하다가 실내 온도를 조절할 때, 시트나 스티어링 휠에 열선을 넣고 싶을 때 작동 버튼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음성인식 시스템 버튼을 누르고 목소리로 “열선 핸들 켜줘” 하면 된다. 한국차라 한국말에 강하다.
V2L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고전압 배터리를 이용해 가전제품을 쓸 수 있는 기능이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삼겹살을 구워 먹고, 냉장고를 가동하는 게 가능하다. 캠핑 파트너로 딱이다. 자연재해로 정전이 발생하면 비상 전원으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충전구에 꽂힌 플러그 아래에 220V 플러그를 꽂으면 사용할 수 있다. 혹은 실내 2열 시트 아래에 220V 플러그가 있다.
넓은 공간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 효과다. 뒷좌석에 앉아 넓은 공간을 만끽하면 대형세단 부럽지 않다. 뒷좌석 머리 위 공간 압박이 있지만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전기차의 주행 질감은 엔진을 사용하는 차에 견줄 바가 아니다. 압도적으로 우수하다. 가장 무거운 배터리가 미드십 가장 낮은 곳에서 무게 중심을 꽉 잡아주고 있어서다. 긴 휠베이스도 한몫한다. 이런 구조적 특성으로 흔들림이 적고 일단 흔들림이 나 진동이 발생해도 오뚜기처럼 강한 복원력으로 안정감을 확보한다. 전기차니까 가능한 주행안정감은 고속주행 중에 더 빛을 발한다. 도로의 굴곡을 따라 흔들리는 상하 진동, 좌우 흔들림, 앞뒤 흔들림 등이 확실히 덜했다. 거기에 더해 후륜구동이어서 뒤에서 밀고 가는 승차감이 인상적이다.
전기차의 구조적 특성이 큰 틀에서 주행안정감을 확보해 준다면, 디테일하게 승차감을 확보해 주는 건 주파수 감응형 쇽업소버와 19인치 타이어 등이다.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승차감을 보이는 비결들이다.
전기차 운전은 회생제동 시스템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에 달렸다. 운전하는 재미도, 연료 즉 전기를 아끼는 묘미도 이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 패들을 조작해 0, 1, 2, 3단계로 회생제동 단계를 조절하고 Auto로 이용할 수도 있다. 패들을 잡아당기는 동안 마치 브레이크를 밟은 것 같은 제동 효과를 볼 수 있다. i페달도 있다. 브레이크 페달은 없는 셈 치고, 가속 페달 하나로 가속과 감속을 조절하는 것. 패들을 통해 자동변속기를 수동 조작하는 것처럼, 전기차에서도 패들을 조작하며 적극적으로 운전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일상 주행 영역에서의 조용함도 인상적이다. 속도를 높여도 상대적으로 더 조용한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체감속도가 낮다. 실제 속도보다 몸이 느끼는 속도가 현저히 낮다.
주행보조 시스템은 한결 더 좋아졌다. 고속도로 주행보조 시스템2로 완성도를 높여 차선 변경까지 지원한다. 고속도로 진출입로, 커브 등에서 속도를 줄여주고, 과속 단속 카메라에도 대응한다. 그럼에도 주행보조 시스템은 늘 걱정거리다. 이를 너무 믿고 운전에 집중하지 않고 한눈팔고 딴짓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놓치는 부분, 빈틈을 챙겨주는 안전장치라고 인식하는 게 좋다.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시스템에 물을 수는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최고출력은 229마력, 공차중량은 정확하게 2,000kg이다. 마력당 무게 8.8kg. GPS 계측기로 측정한 0-100km/h 가속 시간 베스트 타임은 7.51초였다.
기아는 판매가격을 동결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은 지난해보다 줄었다. 소비자 부담은 늘어났다. 보조금이 시장을 왜곡한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롱레인지 기준, 친환경차 세제혜택 적용 후 가격으로 ▲라이트 5,260만원 ▲에어 5,530만원 ▲어스 5,935만원 ▲GT-라인 5,995만원이다. 여기에 정부 보조금을 제하면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가격이 된다.
전기차 안 팔린다고 걱정이 많다. 가격을 낮추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한 번 더 큰 점프를 하기 위해선 보조금 없이도 살 수 있을 수준으로 가격이 낮아져야 한다고 본다.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는 충고는 단 하나다. 전용 완속 충전기를 쓸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전기차로 갈아타는 게 현명한 일이다. 집밥이 해결된다면 전기차 안 탈 이유가 없다. 전용 완속 충전기가 안 된다면 전기차 구입은 늦추는 게 낫다. 공용 충전기에 오롯이 의지하기에는 불편함이 크기 때문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트렁크를 열면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의 예각이 드러난다. 닫혀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캠핑하거나 아웃도어 활동을 한다고 트렁크를 연 상태에서 사람이 부딪히면 다칠 수 있겠다. 자동차에서 예각은 금기다.
음성인식 시스템은 무척 많은 기능에 폭넓게 대응한다. 다만, 단 하나의 단점은 음성으로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헬로 기아, 안녕 기아 등의 명령어로 활성화시키면 더 좋겠다. EV3에 적용됐으니 EV6에도 머지않아 도입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