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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벨라,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

레인지로버가 조금 가까워졌다. 벨라 얘기다. P250이 9,010만 원이다. 윗급 트림인 P400 HSE는 1억 2,420만 원. 여전히 비싸지만, 못 살 것도 없겠다. 접근 가능한 지역으로 내려온 레인지로버라는 점에서 벨라가 반갑다. 벨라 앞에 브리티시 프리미엄 SUV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다. ‘레인지로버’로 충분하다.

단순해서 더 고급스럽다. 안팎이 모두 그렇다. 화려하지 않다. 물론 소박함과도 거리가 있다. 단순하지만 우아하고, 선과 면을 절제해 더 높은 품격을 드러내고 있다. 덜어냄으로써 잘 채우고 있다.

대시보드에는 11.4인치 터치스크린 모니터뿐이다. 다른 아무것도 없다. 비상등과 시동 버튼이 있는데 잘 찾아봐야 보일 만큼 있는 듯 없는 듯 자리 잡았다. 그 모니터 안에 랜드로버가 자랑하는 피비 프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있다. 벨라의 거의 모든 기능을 이 모니터를 통해 살피고, 확인하고, 조작한다. 단 두 번의 화면 터치로 대부분 기능을 실현하게 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12.3인치 계기판을 통해 주행 정보가 전달된다. 선명한 화면이 스트레스를 덜어준다.

스티어링휠 락투락 2.4 회전한다. 4,797×1,930×1,678mm 크기로 차체 크기에 적합한 조향비다. 오프로드 주행까지 고려한다면 3회전까지 여유 있게 세팅해도 좋겠다. 오프로드에선 조금 여유 있어야 좋기 때문이다. 휠베이스는 2,874mm다. 뒷좌석은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어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뒷좌석을 접어 아예 드러누울 수도 있겠다. 트렁크 공간은 기본 735리터, 시트를 접고 공간을 확대하면 1,798리터까지 확장된다.

17개의 스피커와 750W 앰프로 구성된 메르디앙 3D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을 갖췄다. 실내를 울리는 소리의 울림이 다르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을 통해 소음을 줄여 실내를 더 조용하게 유지한다. 자료에 따르면 소음 수준을 –4dB 정도 낮춘다고 한다.

직렬 6기통 3.0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이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감속 시에 손실 에너지를 BiSG(Belt-integrated Starter Generator)로 회수해 48V 리튬이온 배터리에 저장한다. 엔진 스톱과 재시동이 부드럽고, 가속할 때 엔진 효율 높인다.

8단 자동변속기를 거쳐 드러나는 엔진 출력은 최고 400마력, 토크는 최대 56.1kgm에 이른다. 몸무게도 2톤을 넘는다. 공차중량이 2,190kg. 우람한 근육에 강한 펀치를 가진 미들급 복서 같다. 힘이 워낙 세, 무거운 몸을 가볍게 끌고 달린다. 메이커가 밝히는 시속 100km 주파 시간은 5.5초. GPS 계측기로 직접 측정해 본 0-100km/h 가속 시간은 6.65초였다. 센 힘이 무거운 몸을 이긴다.

스포츠 모드에서 시속 100km에서 8단 1,600rpm, 3단 5,500rpm을 마크한다. 3단에서 거친 호흡으로 몰아치고, 8단에서는 아기 숨 쉬듯 새끈거린다. 주행보조 시스템을 작동시키면 차간거리, 차로 유지, 속도 등을 스스로 조절하며 달린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라면 믿고 운전을 맡겨도 좋을 정도지만, 운전자는 운전에 집중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타이어 사이즈 265/45R21로 휠 하우스가 꽉 찬다. 시동을 걸고 처음 움직이면 프리미엄 SUV의 느낌이 바로 전해온다. 그리 상태가 좋지 않은 길이지만 거칠지 않게 움직이며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필요할 때 드러내는 하체의 반응이다.

어댑티브 다이내믹스와 전자식 에어서스펜션이 차체를 최적으로 제어한다. 어댑티브 다이내믹스는 바퀴 움직임을 초당 500회까지, 차체 움직임은 초당 100회까지 모니터링하며 최적의 승차감과 조향 성능을 구현한다.
에어서스펜션은 최대 251mm까지 지상고를 높인다. 오프로드에서는 최저지상고가 높은 것만으로 큰 효과를 본다. 물길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최저 지상고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프로드에서 훨씬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딜레마가 있다. 보디가 긁히고, 하체가 부딪히고, 타이어가 찢길 위험이 큰데, 레인지로버는 워낙 비싼 차라 오프로드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오프로드에 특화됐다고 해도 좋은 브랜드 레인지로버지만, 비싼 가격과 수리비 때문에 오프로드를 달리는 오너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레인지로버의 딜레마다. 거침없이 오프로드를 달리는 레인지로버 오너가 진짜 부자다.

파주-서울간 55km를 달리며 연비를 살펴봤다. 에코 모드로 경제운전을 한 결과 10.5km/L를 보였다. 공인복합 연비는 8.2km/L다. 경제운전을 하면 두 자릿수 연비를 노려볼 만한 수준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수입차여서 한국어에 약하다. 음성명령 시스템은 융통성이 없다. 명령어가 정확하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다. “실내 온도 20도” 하면 “죄송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렇게 대답한다. “온도 20도” 하면 온도를 바꿔준다. 다른 명령도 마찬가지다. 명령어 리스트를 숙지하고 정해진 문장, 혹은 단어 조합으로 정확하게 요청해야 제대로 반응한다. AI 기반의 자연어 명령에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한다.
센터 콘솔 커버는 좌우로 분리했는데 오히려 불편하다. 큰 물건 수납할 때는 두쪽을 다 열어야 하는데 둘 다 지탱하느라 손이 불편했다. 커버는 그냥 하나로 합치는게 낫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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