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좋다고 덜컥 계약하면 안 된다.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운전 기사를 먼저 채용해야 한다. 그래야 이 차를 제대로 탈 수 있다. 렉서스 LM 500h ‘로얄’. 쇼퍼드리븐 미니밴이다. 6인승 이규제큐티브는 나중으로 미루고, 4인승 로얄을 시승했다. 대게 시승은 운전석에서 시작하지만, LM 로얄은 뒤에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가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예사롭진 않지만 그래봐야 미니밴이 거기서 거기지. 도어를 열어 그 안을 보는 순간, 반전이 펼쳐졌다. 미니밴이 이럴 수도 있구나. 렉서스가 만든 일본 프리미엄 미니밴의 정수를 봤다. 이 큰 차를 겨우 4명이 탄다니. 승차 인원 4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뒷좌석에 오르는 단 두 명을 위한 차라고 해도 좋겠다.

전동식 도어가 열리면 아래에는 전동식 도어 스텝이 220mm 높이로 자리한다. 자연스럽게 손을 앞으로 뻗으면 손잡이가 있고, 우산을 세워둘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손이 닿는 곳, 발을 딛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세심한 손길이 닿아있다.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건, 그만큼 정성을 기울였다는 의미다.

뒷좌석에 오르며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벽이다. 앞뒤를 완전히 분리할 수도 있고 벽을 내려 열린 공간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결정은 뒤에서 한다. 뒤에서 잠그면 앞에서 열 수 없고, 앞에서는 잠글 수 없다. 투명한 유리가 버튼을 누르면 불투명으로 바뀌는 디밍 글라스를 사용해 필요할 때는 정확하게 앞뒤 공간을 분리한다. 공간이 분리되면 뒤에서 하는 소리를 앞에서 듣기가 어렵다.

48인치 울트라 와이드 스크린이 압권이다. 앞뒤 좌석을 가르는 벽이 모니터다. 32:9 비율로, 대화면 영상 감상부터 멀티태스킹 업무까지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16:9 비율로 두 개 화면을 띄울 수도 있다. 싱글 및 듀얼 스크린 모드 등 다양한 화면 비율과 구성을 제공한다. 오디오는 좌우 각기 다른 화면을 사용할 경우 각 화면의 사운드를 스피커와 헤드폰 양쪽으로 분리 송출할 수 있어 좌우 독립이 가능하며, 탑승자의 편의성을 한층 높였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볼 수 있고, 사무 공간으로 이용할 수도 있겠다.

1열을 제외하고 나머지 공간에 두 개의 시트만 있다. 아이들 다 내보내고 둘만 사는 60평 아파트가 이럴까. 공간 그 자체가 주는 고급스러움이 최고 수준이다.

뒷좌석 시트는 탑승객의 몸을 풀커버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품어준다. 팔 받침에는 열선을 깔았다. 허리의 피곤함을 줄이기 위해 쿠션의 위치까지 세심하게 배려했다. 모두 7개의 릴랙세이션 모드가 있어 시트에 맡긴 몸을 편안하게 해준다.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머리 위치까지 고려한 대형 헤드레스트는 최상급 소재를 사용했다. 차에서 올라오는 흔들림을 시트가 한 번 더 걸러준다.

신체 부위별 타깃 공조 기능도 새롭다. IR 적외선 센서를 파티션 상단에 탑재해 창문, 트림, 천장 온도를 감지하고, 신체 부위(얼굴, 가슴, 무릎 위, 무릎 아래) 온도를 추정해 부위별로 필요한 공조를 설정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능은 멀티 오퍼레이션 패널로 조정한다. 리모트 컨트롤 형태의 터치식 컨트롤러로 시트, 공조, 조명, 선셰이드, 오디오 등을 좌우 각각 다르게 제어할 수 있다. 모니터는 별도의 리모컨으로 조절한다. 2단계 쿨링이 가능한 냉장고가 있다. 시원한 음료를 늘 준비해 둘 수 있다. 용량은 14L.

리어램프 옆에 버튼이 있다. 전동식 트렁크 도어를 여닫는 버튼이다. 차 뒤에서 트렁크를 여는 게 아니라 옆으로 비켜서서 여는 방식이다. 뒤에서 열면 버튼을 누르고 살짝 뒤로 물러나야 하는데 옆에서 버튼을 누르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좋다.

뒷좌석에서 부자 놀이하다가 운전석으로 옮겼다. 쇼퍼 체험이다.

2.4L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6단 자동 변속기를 적용했다. 총출력 368마력의 힘, 공차중량 2,470kg의 무게를 가졌다. 마력당 무게 6.7kg으로 제로백은 6.9초. 무겁고 큰 몸이지만, 힘이 세서 세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하지만 빠르고 강하게 달리는 차가 아니다. 편안하게, 부드럽게 움직여야 어울린다. 실제로 승차감은 부드럽다. 근래에 타본 차중 가장 부드러운 편이다. 그래도 강약 조절은 정확히 하는 편이어서, 큰 충격을 넘을 때에는 강한 반발력을 보이며 차체의 흔들림을 억제한다. 부드럽지만 항상 부드러운 건 아니어서 필요할 땐 단단한 서스펜션의 모습도 보이는 것.

노멀, 에코, 스포츠, 커스텀 모드에 더해 리어 컴포트 모드가 있다. 뒷좌석 승차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주행모드로 이 차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기능이다. 주행안정장치를 뒷좌석에 최적화하고 제동할 때 롤링을 억제하는 등의 작용으로 뒷좌석의 편안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당연히 사륜구동이다. 뒤에 76kW e-Axle 전기 모터를 올린 전자식 DIRECT4 AWD 시스템이다. 앞뒤 토크 배분을 최대 100:0에서 20:80까지 조절한다. 2.5톤의 무게와 368마력의 힘, 사륜구동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부드럽고 편안하게 움직인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2.5톤의 무게감이 먼저 느껴진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그 무게감이 조금 덜어진다. 강력한 힘을 전달하면 그 무거운 몸을 가볍게 끌고 달린다. 사륜구동의 안정감이 더해져 고속주행까지도 거침없다. 그렇게 잘 달린다.

잘 달리지만, 뒷좌석에 앉은 오너는 그렇게 달리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고, 덜 흔들리고, 조용한 주행을 원하게 마련이다. 드라이버가 기분 좋으라고 만든 차가 아니다. 중요한 건 뒷좌석에 앉은 오너다.

잘 나가는 인기 연예인이라면 이 차와 잘 어울리겠다. 골프백 4개를 실을 수 있으니, 골프 한 팀이 움직이기에도 딱 좋겠다. 차에서 이동중 업무를 볼 일이 많은 이들에게도 이 차는 최고의 선택지다. 의전용으로도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다. 많이 팔릴 차는 아니지만, 알차게는 팔리겠다. 분명한 수요층이 있기 때문이다. 1억 9,600만 원. 렉서스의 자존심을 담은 가격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아주 많은 뒷좌석 편의장비와 기능들을 작동시키는 과정이 직관적이지 않다. 화면을 둘로 나눠서 보기, 다시 하나로 합치기, 유튜브 채널 찾아보기 등을 해보는데 버튼 찾아 헤매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좀 더 직관적인 유저 인터페이스가 아쉽다. 판매가격 2억 원인데,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없다. 에어서스펜션도 없다. 엔화도 싼데 좀 더 쓰지….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