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3는 전기차 시장의 캐즘을 건널 수 있을까.
폭우 속에 기아 EV3를 타고 서울에서 출발해 속초까지 달렸다. 시승차는 GT 라인 롱 레인지 트림. E-GMP 플랫폼을 적용한 기아의 세 번째 모델이다. 일단은 ‘삼육구 라인업’의 완성이다.
기아는 EV3를 앞세워 전기차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다. 그만큼 많이 팔겠다는 말인데, 시장 상황은 쉽지 않다. 뜬금없이 등장한 케즘이라는 귀신에게 발목 잡힌 시장은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판매 증가세가 현저히 꺾였고, 판매가 줄어들기도 한다.
돌파구는 컴팩트 세그먼트다. 작고 저렴한 시장, 그래서 진입장벽이 낮은 곳에서 판매대수를 확 끌어올려야 캐즘을 깨버릴 수 있다. EV3가 지금 그 시장에 나섰다. 그룹 내 처음 적용하는 많은 기술들을 자랑하며 등장했다. 콕핏 하단의 공조 부품 크기를 줄여 공간을 더 넓게 확보하고, 공력 성능을 높이고, 배터리 밀도를 높이고, 아이페달과 회생제동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놀라운 효율을 먼저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춘전까지 87km 구간에서 경제운전을 통해 연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결과는 7.7km/kWh. 공인 복합 연비가 5.1이니 실주행 연비가 제법 좋은 편이다. 춘천-속초 98km 구간에서는 스포츠, 컴포트, 에코 모드를 상황에 맞게 선택하며 연비 신경쓰지 않고 달렸다. 그래도 연비는 6.8km/kWh를 기록했다. 6.6이 7.7보다 더 와닿는 숫자다.
회생제동과 i페달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한다. 이를 잘 활용하면 브레이크는 거의 쓸 일이 없다. 급한 상황이 아니면 브레이크 밟을 일이 없다. 패들을 이용해 단계별 회생제동을 사용하고, 때로는 i페달 기능으로 가속페달로만 가감속을 조절하기도 한다. 패들 조절이 손에 익으면 제법 재미있게 운전할 수 있다. 내리막 와인딩에서 패들을 이용해 회생제동을 감고 풀고 반복하며 움직이는 게 아주 재미있다. 가끔 그 타이밍을 놓치면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이 차를 타면 우선 패들을 이용해 회생제동의 감각을 익혀둘 필요가 있겠다.
주행 질감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오뚜기 같은 안정감이다. 앞바퀴 굴림이지만 무게 중심이 낮아 노면 충격에 강했다. 충격이 오거나 노면 굴곡을 넘을 때 소형차 같지 않은 안정감이 돋보였다. 무거운 배터리가 낮은 곳에서 무게 중심을 꽉 잡아주는 효과에 더해 주파수 감응형 쇽업소버와 앞바퀴에 적용한 하이드로 부싱 서스펜션 등이 높은 수준에서 완성된 결과다. 공기저항계수 0.27이다. 하체를 언더커버로 덮었고 휠하우스까지 세심하게 공기흐름을 잡은 덕이다.
위아래가 직선인 더블 D컷 스티어링휠은 락투락 2.6 회전한다. 조향 성능도 매우 안정됐다. 앞바퀴 굴림이지만 엔진이 없어 무게가 앞으로 쏠린 게 아니어서 언더스티어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모니터로 쓰는 12.3인치 모니터 두 개 사이에 공조 장치용으로 5인치 모니터를 추가했다. 공간을 잘 활용했다. 그 모니터 안에서 만나는 아주 많은 기능은 놀랍다. 수입차를 압도하는 안전 및 편의장치들이 담겨있다. 음성인식 기술은 최고 수준이어서 대화하듯 편하게 명령할 수 있다. 자연어 기반의 AI 어시스턴트다. 운전하는 동안 모니터에서 기능 버튼을 찾아 누르는 것보다 그냥 음성을 작동시키는 게 편하다. 차창, 선루프 여닫는 것은 물론, 실내 온도, 열선 시트, 라디오, 오디오 등등을 목소리로 작동시킬 수 있다. 그 완성도에 놀라게 된다.
전기차 대중화를 이루겠다, 즉 많이 팔겠다는 말이다. 결국은 가격이 관건이다. 전기차 보조금이 지역별로 달라 소비자 부담금이 딱 잘라 얼마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서울 기준으로 4,000만 원 전후다. 가장 낮은 가격인 EV3 에어 스탠다드는 정부 보조금 573만 원, 서울시 보조금 150만원으로 소비자는 3,485만을 내면 된다. 가장 비싼 GT 라인은 정부 보조금 622만 원, 서울시 보조금 150만 원, 소비자 부담은 4,336만 원이다. 추가 옵션 가격은 별도다.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면 일단 계약하는 게 좋다.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다. 마음이 변하면 그때 가서 계약 취소하면 된다. 계약금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으니 손해 볼 일은 없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4세대 배터리를 탑재했다. 롱 레인지는 81.4kWh. 스탠다드는 58.3kWh 배터리다. 17인치 휠 기준 1회 충전 주행거리 롱 레인지 501km, 스탠다드 350km, 19인치 타이어를 쓰는 GT 라인 롱 레인지는 478km다.
앞에 배치된 모터는 150kW(204마력)이다. 롱 레인지나 스탠다드나 같은 출력이다. 공차중량이 1,850kg으로 1마력이 약 9kg 정도를 감당한다. 고성능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전기 모터 특유의 순발력이 살아 있다.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특히 스포츠 모드에서는 고성능 스포츠카만큼의 순간 가속력을 만나 깜짝 놀란다.
EV3는 달릴 때 못지않게 서 있을 때 매력적이다. V2L 기능 때문이다. 220V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다. 삼겹살을 구울 수도 있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일 수도 있다. 차 안내 작은 냉장고를 설치할 수도 있겠다. 비상시에 전력 공급이 끊겼을 때 차에 있는 전력을 끌어내 쓸 수도 있으니 참 든든하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운전석에 앉아 손을 뻗어 지붕 틈새를 살폈다. 버릇이다. 손가락이 드나드는 틈새, 재질의 단면이 드러난 거친 마무리가 손끝을 통해 전달된다. 소음 진동에 미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있을까만,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마무리를 잘하는 정성을 느끼는 부분인데 아쉽다.
충전 전력은 127kW까지 대응한다. 그 이상은 의미 없다. 즉, 200kW는 물론 350kW 초고속 충전기에 물려도 충전 속도가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 당연히 초고속 충전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350kW급 충전 시 배터리 충전량 10%에서 80%까지 롱 레인지 31분, 스탠다드 29분이 걸린다고 기아는 밝혔다. 200kW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100kW급 이상의 고속충전기는 EV3에게 큰 의미 없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