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몰고 미니 쿠페가 왔다. 더 예쁘고 똑똑해진 미니쿠퍼 S 3도어다. 10년 만에 교체된 4세대 풀체인지 모델이다. 누가 뭐래도 미니는 시대를 앞서는, 청춘과 함께하는 아이콘이다.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지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헤드램프를 이용해 표정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헤드램프의 동그라미, 그 안의 두 줄을 따로 또 같이 드러내며 변화를 준다. 브레이크등도 달라진다. 빨간 바탕에 검은 줄을 그어놓은 리어컴비네이션 램프를 보면 유니언잭보다는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이 생각난다.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은…

계기판이 사라졌다. 계기판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다. 빈공간을보며 내뱉은 말. “어? 이게 뭐지?” 컴바이너 타입의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센터패시아 모니터를 통해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필요한 기능을 선택하게 된다.

나 없으면 세상이 안 돌아갈 것 같지만,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잘만 돌아간다. 어쩌면 더 잘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계기판이 그렇다.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잘만 달린다. 왜 진작에 없애지 않았을까.

운전자가 독점하던 계기판을 없애면서 정보는 자연스레 공유된다. 주요 정보들이 센터패시아 모니터에 표시되기 때문이다. 탑승객 모두가 원형 화면에 뜨는 정보를 함께 보게 된다. 운전자만 보던 정보들이 고스란히 모두에게 노출된다. 옆자리에서 잔소리가 늘어나는 이유다. 빠르게 달리면서 속도를 숨길 수 없다. 잔소리를 감수하거나, 천천히 달려야 한다. 정보 공유의 효과다.

티맵을 띄우는 화면은 삼성디스플레이와 협업으로 개발한 OLED 모니터다. 선명한 화면에 손이 가는데, 얇아서 더 놀랐다. 두툼할 줄 알고 손가락을 넓게 벌려 잡았는데 얇았다. 얇은 모니터를 통해 기술을 본다. 거실의 괘종시계처럼 지름 240mm의 원형 디스플레이는 모두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자리했다. 일일이 확인하기 벅찰 만큼 많은 기능을 그 안에 담았다.

두툼하게 손에 꽉 차게 잡히는 스티어링휠은 2.3 회전한다. 고카트의 느낌을 살리기에 딱 좋은 조향비다. 항상 고카트 느낌이면 피곤하다. 느슨하게 달리다 꽉 조인 고카트처럼 달리기도 하고, 고카트의 느낌을 벗어나서 편안하게도 움직인다. 고카트의 느낌도 좋지만, 필요하다면 이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더 큰 매력이다. 주행모드 선택을 통해 가능해진다.

직렬 4기통 2.0 파워터보 가솔린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 조합이다. 전동화 시스템이 들어가 있지 않으니 ‘순수’ 가솔린 엔진이라고 해도 좋겠다. 204마력. 그 힘으로 정신없이 몰아붙이고, 편안하게 업어주고, 적당한 속도로 달린다. 몸은 가볍다. 공차중량 1,355kg이니 204마력의 최고출력이 더 세게 다가온다. 꾹 밟으면 튕겨 나간다. 마력당 무게가 6.6kg. 6.6초 만에 시속 100km를 터치한다.

그 힘을 좀 더 재미있게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방법이 없다. 패들 시프트가 없고 변속 스위치도 수동 모드가 없다. 그냥 가속 페달을 밟는 정도로 기분을 낼 수밖에 없다. 엔진 회전수를 높이며 달리는데 제법 박력 있는 반응이다. 밟으면 힘차게 튀어 나가고, 발을 떼면 휘청이듯 속도를 줄인다. 탄성 좋은 고무줄 같은 반응이 마음에 든다.

한참 신나게 달리는데 옆에 앉은 후배 기자가 묻는다. “선배는 어떻게 운전하는데 이렇게 수동 모드처럼 달립니까?” 우쭐해지는 질문이다. 너는 못 하는 걸 내가 한다는 거잖아? 친절한 척, 하지만 잘난 척 “코너와 경사도에 따라 가속 페달 깊이를 잘 조절해야지! 잘 봐!” 사뭇 인자함을 숨기듯 드러내며 중미산 와인딩 로드를 신나게 달렸다. 달렸는데…. 이런.

오른쪽 커브를 도는데 시선이 변속 스위치에 꽂혔다. 아뿔싸. 변속 스위치의 초록색 램프가 D 아닌 L에 켜있다. D인 줄 알았는데, L이었다. 후배 기자 눈을 피해 슬며시 D로 옮겨 놓으니, 세상에 이렇게 편한 반응이 없다. 탄성 좋던 고무줄은 낡은 팬티의 고무줄이 되어버렸다. 적당히 늘어졌고, 적당히 당겨준다. 팽팽함은 사라진다. 후배 기자가 말없이 씨익 웃는다.

수동변속 같은 느낌의 비결은 L모드였다. 로우 모드다. 엔진 회전수를 높여 더 강한 구동력을 확보하는 기어모드다. 수동변속처럼 힘차고 박력 있게 달리고플 땐 L 모드를 써보자. 시프트 업다운을 수동변속처럼 힘 있게 해낸다. 재미있다. 뜨거운 여름 오르막길에서라면 엔진이 과열될 수도 있으니, 엔진을 잘 살펴가며 즐길 필요는 있겠다.

rpm은 고카트 모드에서 표시된다. 고카트 모드를 택하고 시속 100km를 유지하면 2,000rpm을 마크한다. 7단 듀얼 클러치가 엔진 회전수를 조금 높게 끌어올리고 있다. 늘 고카트 모드일 필요는 없겠다. 코어모드에서 편안한 주행을, 그린 모드에서 경제 운전을 택할 수 있다.

공인복합 연비는 12.7km/L다. 서울을 출발해 고속도로 국도를 누비며 왕복 215km를 달린 연비는 11.8km/L. 서울-양양 고속도로에서의 고속주행, 중미산 와인딩로드에서의 짜릿한 달리기, 청평댐을 지나 북한강과 나란히 움직이며 빠르게 때로 천천히 달린 연비가 11.8km/L다. 작정하고 경제 운전을 하면 적어도 공인복합 연비보다 더 좋은 효율을 장담할 수 있겠다.

4,810만 원. 재기발랄하고 개성 충만한 20~30대를 위한 젊은 차다. 선후배가 이 차타고 마라탕후루 먹으러 가면 딱 좋겠다. 60대가 타도 그림 괜찮겠다. 은퇴 이후의 미니멀한 삶에도 잘 어울리지않을까, 유심히 보게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5인승 아닌 4인승이지만 그래도 2열 시트는 좁다. 3도어 미니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4인승이지만 둘이 타는 차로 타야 속이 편하다.
패들 시프트가 있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이 차를 누릴 수 있겠다. 아쉽게도 없다. 스티어링휠을 쥔 손이 패들을 찾아 허공을 헤맬 때가 많다. L 모드를 활용할 수 있지만, 패들을 이용해 수동변속을 즐기는 재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패들을 달아 더 재미있게 탈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