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 프리미엄 컴팩트 SUV ‘이보크’의 미니멀리즘을 만났다.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 레인지로버의 엔트리 모델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엔트리 모델은 서로 부딪히는 온갖 가치 간 타협의 산물이다.

프리미엄인데 엔트리급, 가격은 낮은데 고급스러움을 유지해야 하고, 작아도 필요한 공간은 확보해야 하는, 프리미엄의 자존심을 담은 최소한의 가격으로 정해야 하는, 그래서 어느 선까지 양보하고 타협해야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한 끗 차이로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차가 프리미엄 브랜드의 엔트리급 모델이다.

이보크가 그렇다. 국내에는 두 가지 트림으로 판매한다. P250 S와 P250 다이내믹 SE. 시승차는 상위 트림인 P250 다이내믹 SE다.

지붕이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를 떠받치는 A, B, C, D 필러가 검은색이어서다. 트릭을 섞은 재미있는 디자인이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헤드램프는 레인지로버 가문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인테리어는 인상적이다. 꼭 필요한 버튼 두 개, 시동 버튼과 비상등 버튼만 남겨놓고 싹 걷어냈다. 시동을 끈 채 인테리어를 보면 단순함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더 이상 걷어낼 게 없는, 미니멀리즘의 최대치다.

없다고 부족하거나 없어 보이는 건 아니다. 소재의 고급스러움을 손끝이 먼저 느낀다. 적당한 탄력을 품은 대시보드, 매끈한 가죽의 질감이 살아있다. 사라진 버튼들은 최첨단 피비 프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품었다. 11.4인치 커브드 글래스 터치스크린을 통해 화면 터치 두 번만으로 원하는 거의 모든 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다. 내비게이션, 실내 공기질 관리, 안드로이드 오토 (혹은 애플 카플레이) 등은 물론이고 주행 모드 선택까지 화면 터치로 작동한다.

계기판은 12.3인치 모니터다. 화면 구성, 주행 정보 등을 운전자가 선택할 수 있다. 9단 자동변속기를 조절하는 기어 시프터는 주먹 쥐듯 손을 감아쥐면 그 안에 쏙 들어와 안긴다. 단순해서 더 멋있다.

클리어 사이트 룸미러는 후방 시야를 카메라와 모니터를 통해 보여준다. 선명하고 넓은 화면을 통해 후방 시야를 충분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신 차 안에 있는 승객들, 예를 들어 뒷좌석의 아이들을 볼 수는 없다. 이를 원하면 룸미러로 세팅하면 된다.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는 오프로드에서 보닛 아래의 노면 상태를 화면으로 보여준다. 장애물이 있을 때 회피 기동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직접 노면 상태를 살피고 확인한 뒤에 차를 움직여야 한다. 완전히 이 시스템에만 의지해서 차를 움직이면 안 된다.

티맵 내비게이션을 적용했다. 한국에선 티맵이 최고다. 의심하는 마음 없이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직렬 4기통 2.0 가솔린 터보차저 인제니움 엔진이다. 내연기관에 ‘순수’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순수 가솔린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249마력이다. 중요한 건 몸무게다. 공차중량 1,390kg으로 마력당 무게는 7.75kg. 메이커가 밝히는 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7.6초. 숫자들을 살펴보면 이 차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컴팩트 SUV지만 중형 세단 정도의 숫자들이다.

정통 오프로드 SUV임을 알려주는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 2는 피비 프로를 통해 제어한다. 컴포트, 에코, 잔디-자갈-눈, 머드, 샌드, 다이내믹 및 자동 모드를 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엔진, 변속기, AWD 시스템, 서스펜션, 스태빌리티 컨트롤을 변경하고 최적의 견인력과 안정성을 제공한다.

9단 변속기는 이 차의 숨은 병기다. 9단에서 1,500rpm으로 3단에서 6,000rpm으로 시속 100km를 커버한다. 밀어붙이는 강력한 힘, 혹은 허리띠 풀고 느슨하게 움직이는 여유로움을 같은 속도에서 느낀다. 다단변속기의 힘과 여유를 제대로 품고 있었다.

컴팩트 세그먼트라고는 하지만 작지 않다. 4,371×1,904×1,649mm 크기다. 휠베이스는 2,681mm로 뒷좌석에서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꽉 차게 들어간다. 머리 윗 공간은 약간의 압박감이 있다. 손바닥 두 개가 겹쳐 들어가는 정도다. 센터 터널도 솟아 있다. 컴팩트 SUV치고는 넓지만, 어느 정도 공간의 압박이 느껴지는 뒷좌석이다.

트렁크 공간은 591리터, 뒷좌석을 접으면 1,383리터까지 확장된다. 둘이 캠핑 장비 때려 싣고 산속으로 떠나기에 딱 좋겠다.

사륜구동이어서 주행 안정감이 뛰어날 뿐 아니라 오프로드 기동력도 대단하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도강 능력이다. 최대 0.52m 깊이의 물길을 건널 수 있다. 이런 장애물을 건널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세단이나, 무늬만 SUV인 차들을 따돌리고, 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건너가, 더 깊은 대자연의 속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비싼 수리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오프로드 주행을 꺼리게 된다.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SUV인데, 험한 길에서 차가 다치거나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비가 장난이 아니라 오프로드 근처에도 안 간다는 것. 생각해 볼 일이다. 판매가격 8,030만원. 아래 트림인 P250 S는 7,400만원이다.

양평에서 서울까지 60km 구간에서 최대한의 경제운전으로 측정해 본 실주행 연비는 13.5km/L로 공인 복합연비 8.9km/L를 훨씬 웃돌았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앰비언트 라이트가 없다. 조명으로 연출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과감히 포기했다. 어둠 속에서 느끼는 건 고급스러움이 아닌 소박함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콘솔박스 커버를 쪼개서 두 개로 만들었다. 의도가 있을 테고, 알 것도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다. 두 개 말고 하나로 된 커버가 낫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