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체 보호지역 중 7만 4,947ha(헥타르)가 경제림 육성단지와 중첩되어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서울시 전체 면적의 1.2배 면적과 맞먹는 규모다. 보호지역은 세계 보호지역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국내 보호지역을 기준으로 조사했다.
그린피스는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박종원 부경대 법학과 교수와 함께 보고서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을 발간하여 벌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국내 보호지역의 실태를 밝혔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대한민국 산림청의 경제림 육성단지 지도를 분석해, 총 7만 4,947ha의 보호지역과 경제림 육성단지가 중첩된 사실을 확인했다. 경제림 육성단지는 고품질 목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조성되는 지역으로, 산림청이 목재 생산을 위해 나무를 심고 기르고 수확하고 이용하는 산림자원 순환경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경제림 육성단지와 중첩된 보호지역 중에는 대한민국 생태 축으로 불리는 백두대간 보호지역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린피스가 백두대간 보호지역 중 하나인 민주지산을 2024년 4월 직접 방문한 결과, 완충지역부터 핵심지역까지 총 11구역에 걸쳐 숲이 모두 베어져 있었다. 베어진 곳 위에는 ‘민주지산 선도 산림경영단지 숲가꾸기 시범사업 입지’ 라는 안내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보호지역은 인간의 개발행위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정된 지역으로, 국내의 대표 보호지역으로 설악산, 지리산 등 국립공원이 있다. 이 중에서도 백두대간 보호지역은 대한민국의 위와 아래를 잇는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서의 모두베기는 광범위한 생태계 파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린피스는 보호지역 내 경제림 개발이 이루어진 배경으로 미약한 관련 법안 체계를 지적했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법상 ‘경제림’과 ‘보호지역’의 법적 개념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 보호지역은 10개 개별 관계 법령에서 지정한 목적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지정 목적 또는 세부 구분에 따라 입목의 벌채가 금지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벌채가 금지되지 않거나 설령 금지되더라도 광범위한 예외 규정에 따라 허용되는 구조를 띠고 있다.
박종원 부경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백두대간보호법은 보호지역 내의 금지 행위만을 열거하는 블랙리스트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입목 벌채를 금지 행위로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며 “보호지역 내에서 입목 벌채를 허용하는 것은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인한 훼손으로부터 백두대간의 자연환경을 보전한다는 입법취지에도 맞지 않고, 보호지역의 효과적인 보전·관리를 요구하는 UN 생물다양성협약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목표 3(30×30)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태영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보호지역의 개발 행위는 야생동식물의 서식처와 탄소흡수원의 파괴로 이어지 산림의 지속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만큼, 산림청은 보호지역 내 경제림 육성단지를 해제하고 환경부는 국제 기준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가이드라인에 따라 보호지역을 실효성 있게 관리 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2022년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KMGBF)에 서명하고 이에 따라 2023년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에서 2030년까지 전 국토의 30%를 보호지역 및 자연공존지역(OECM)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보호지역인 설악산 내 케이블 카 설치,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중 흑산도 일부 지역에 공항 건설 등이 추진되면서, 이름만 보호지역인 ‘페이퍼 보호지역’ 이 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 보고서는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 사람들 소속 최중기 소장(인하대학교 해양학과 명예교수), 한상훈 연구실장(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윤여창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산림과학) 등이 감수했다.
그린피스는 민주지산의 경제림 개발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상을 보여줄 시뮬레이션 영상을 공개하고 보호지역 내 개발행위를 방지할 법안 발의를 추진하는 등 앞으로도 보호지역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상진 daedusj@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