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43] 전기차 시장 분위기가 바뀐다.
한동안 전기차가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고 지구를 살리는 절대적 존재로 대접을 받아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말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전기차의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앞다투어 보조금을 주고 전기차를 운행하는 데 있어 특혜를 주었다.
아직도 자동차시장 판매의 90%를 차지하는 내연기관, 하이브리드차는 무슨 죽을죄를 지은 죄인처럼 곧 죽을 날만 기다리는 모양이 되었고. 아주 대놓고 2030년이니 2040년이니 해가면서 내연기관차의 운명 날을 못 박아 놓기도 했다.
멀쩡하게 잘살고 있는 사람에게 너는 20년 후에 죽을 거야 하고 단정 짓는 것과 다를 게 무어라는 말인가. 산 사람도 스트레스로 일찍 죽겠다(!). 그렇게 내연기관의 장례식을 준비하던 자동차시장의 분위기가 언젠가부터 변했다.
전기차 사라고 앞다투어 보조금을 주면서 등 떠밀던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보조금을 줄이거나 없애고 있다. 지난 12월 17일부터 독일 정부는 예고 없이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이번 일은 프랑스에 이어 내려진 조치로 자동차 업계의 반발이 크다. 그래도 내년 말까지는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었는데 결국 1년 일찍 종료하게 된 것이란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7월 28일, 2024년부터 적용될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재까지는 차량 운행 중의 탄소 배출량만으로 친환경 차 구매보조금을 지급했다면, 2024년부터는 도로에서 사용되기 전 모든 단계를 환경점수로 산출해 그 점수에 따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앞으로 전기차 보조금 받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다.
국내의 경우는 2023년 전기차 보조금 소진율이 60%란다. 지자체의 전기차 보조금 예산이 소진되기 전에 먼저 출고해야 한다고 난리를 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남아돌다니 이 또한 무슨 소린가.
그나마 비싼 전기차 구매의 동력 역할을 해주었던 보조금도 지속해서 축소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대당 최대기준으로 2018년 1,200만 원, 2019년 900만 원, 2020년 820만 원, 2022년 700만 원에, 올해에는 680만 원이었다. 환경부의 2024년 전기차 보급지원 예산도 2023년 대비 10% 줄어 2024년에는 보조금이 400만 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가뜩이나 판매성장의 추세가 수그러들고 있는 판에 보조금을 더 주면 더 줬지 오히려 줄이거나 안 준다니 해외나 국내나 이게 무슨 소리인가.
결국은 소비자들이 살만한 가격대의 전기차가 나와야 한다. 물론 높은 가격대만이 전기차 성장의 장애요인은 아닐 것이다. 최근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구매 조건도 악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자주 언급되는 전기차의 화재 사고, 충전 설비 부족 등도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역시 자동차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는 요인은 적정한 가격대에 가성비가 좋은 상품의 유무다. 차에서 배터리 등 전기차 구성품의 가격 비중이 높다 보니 상대적으로 동 가격대 내연기관차에 비해 상품성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요즘 원주에 자주 갈 일이 있어 원주역에 내리면 택시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
전기 택시가 많아지다 보니 탈 기회가 많은데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 5,000만 원대의 차가 계기판을 포함해 내부의 편의장비가 거의 없이 휑한 모습을 보면서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2000년 초 싼타페가 나와 승용 SUV 시장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승용차시장을 위협했지만 결국 현재의 SUV 시장을 완성한 건 투싼(급)이다. 굳이 판매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현대차가 세계에서 판매하고 있는 투싼의 판매량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투싼과 싼타페의 가격 차이가 얼마나 될까? 1,000만 원 이상 차이가 날까? 대략 가장 최근의 유사한 모델(하이브리드)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700~800만 원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옵션을 추가하면 더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결국 싼타페의 20% 정도 낮은 가격이면 투싼이 된다.
아이오닉 5는 5,000만 원부터 시작한다. 그보다 20%가 낮으면 1,000만 원, 즉 4,000만 원짜리 전기차가 된다. 현재 아이오닉 5의 바로 아래 동생이 코나 전기차가 4,500만 원부터 시작한다. 500만 원, 아이오닉 5보다 10% 싸다. 아니 10%밖에 싸지 않다. 10%밖에 싸지 않을 뿐 아니라 그래도 4,000만 원이 넘는다.
4,500만 원을 그대로 두고 그랜저와 비교해 보자. 이미 올해 11월까지 10만 대가 넘게 팔렸고 그 절반 이상이 하이브리드인 ’올 뉴 그랜저‘ 말이다. 기본형만 사도 훌륭한 그랜저니, 프리미엄 모델에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스마트센스 옵션까지 추가해도 4,500만 원이 안 된다. 코나 전기차를 사겠는가?
물론 가격이 낮은 보급형 전기차의 개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폭스바겐이 2,000만 원대 소형전기차 ID2.0의 개발에 나서고 테슬라도 모델3 아래에 있는 모델2를 개발 중이고 르노, 포드, 닛산 등도 5e, e-퓨마, 미크라등 저가의 보급형 전기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도 폭스바겐 등 보급형 전기차를 겨냥한 2,000만 원대 순수전기차 개발에 착수했다고 이미 밝힌 바 있고 그 차는 ’아이오닉 2‘가 될 것이며 유럽과 호주, 뉴질랜드 시장 등을 겨냥한 해치백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현대차는 IMA(통합 모듈러 아키텍쳐, Integrated Modular Architecture)로 차급별로 최적화한 다양한 전용 플랫폼을 2025년 선보일 예정이라는데 아이오닉 2에는 현재 사용 중인 E-GMP 대신 개량형인 eM 플랫폼이 탑재될 예정이란다.
아이오닉 2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부터 앞선다. 해외는 그렇다 치고 과연 국내시장에 아이오닉 2가 해결책일까? 소형차를 아예 단종시킨 시장이다. 베스트 셀러였던 아반떼는 물론 쏘나타 시장까지 축소되는 시장에서 비록 전기차라지만 아이오닉 2가 내수 전기차 성장의 견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글을 쓰는 중에 밖에서 요란한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온 동네가 소방차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달려 나가 소방관에게 물어보니 윗동네에 불이 났단다. 전기차에! 싼 전기차 만들어야 한다고 글을 쓰고 있는데 말이다.
아들놈에게 타고 있던 투싼을 빼앗기고 무슨 차를 사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마누라가 전기차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