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E SUV를 드디어 만났다. 연초 서울모빌리티쇼에 잠깐 선보인 뒤 지난 7월에 국내 출시한 차를 이제 시승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 EVA2를 기반으로 만든 럭셔리 비즈니스 전기 SUV다.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를 사용했다는 건 우선 공간이 넓다는 의미다. 차체 길이가 4,880mm인데 휠베이스가 3,030mm다. 내연기관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비례를 구현하고 있다. 휠베이스가 길어지면 실내 공간도 따라서 넓어진다.
앉아보면 무릎 앞으로 따로 측정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남는다. 공간 그 자체가 주는 여유로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뒷좌석은 4:2:4의 비율로 나눠서 접을 수 있다. 트렁크 공간은 기본 520L로 뒷좌석을 접으면 최대 1,675L까지 넓어진다.
공기저항 계수(Cd) 0.25다. 이 정도 크기의 SUV에 공기저항 계수 0.3 미만이면 대단한 수준이다. 신형 싼타페가 Cd 0.29라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 0.25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가늠할 수 있다. 너비 1,930mm, 높이 1,685mm로 넓고 높은 차체를 가진 대형 SUV인데 공기저항 계수를 이만큼 낮출 수 있었던 건 디자인의 힘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 차체 하부의 공기흐름까지 고려한 디자인이라는 설명이다.
10개 모듈로 구성된 88.8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했다. NCM811 삼원계 배터리다. 1회 충전 주행가능 거리는 401km로 국내 인증을 받았다. 날씨 좋은 때에는 이보다 훨씬 더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짧아진다. 영하 10도에서 난방을 사용하는 경우 370km 정도 주행을 기대할 수 있다. (WLTP 기준) 배터리 폐열을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히트펌프 기능이 있어 겨울철 배터리 효율을 높여준다.
4매틱, 그러니까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됐다. 굳이 사륜구동이 필요 없는 안정적인 주행 상황에서는 후륜구동으로 움직인다. DCU(Disconnect Unit)를 적용해 전륜 모터를 분리하는 원리다.
앞뒤에 각각 하나씩 모두 두 개의 모터를 사용해 구동한다. 최고출력은 408마력, 300W다. 공차중량은 2,510kg. 마력당 무게는 6.15kg. 메이커가 밝힌 0-100km/h 가속 시간은 4.9초. GPS 계측기를 사용해 직접 측정한 최고 기록은 5.01초였다.
헤드램프는 밝고 스마트한 디지털 라이트다. 130만 개의 마이크로 미러를 통해 260만 픽셀 이상의 해상도를 구현한다. 빔프로젝터처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헤드램프다.
계기판은 12.3인치, 센터패시아 모니터는 12.8인치 OLED 디스플레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까지 화면이 시원하다.
에어매틱 에어서스펜션이 차체 높낮이를 조절하고 어댑티브 댐핑 시스템을 통해 드라이빙 모드, 속도 및 하중에 따라 각 휠을 개별 제어한다. 오프로드 모드를 택하면 차체는 25mm가 높아지고 70km/h 이상으로 넘어가면 정상 높이로 되돌아온다. 다시 50km/h 미만이 되면 25mm가 높아지는 식이다.
오프로드 모드에서는 투명 보닛 기능도 활성화된다. 보닛 아래 상태를 타이어와 함께 화면으로 보여준다. 물길이나 장애물이 많은 길을 움직일 때 큰 도움이 되겠다.
스티어링은 정확하게 2회전 한다. 이 큰 덩치를 단 두 바퀴 돌리는 스티어링휠로 컨트롤한다는 것. 리어액슬 스티어링이 있어 더 다이내믹하게 움직인다. 뒷바퀴는 시속 60km 미만 저속에서 최대 10도까지, 그 이상의 속도에서는 최대 2.5도까지 조향에 개입한다. 저속에서는 앞뒤 바퀴가 역방향, 고속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회전한다. 회전 직경 10.5m. 그만큼 좁은 공간에서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플러스에는 차선변경 어시스트가 더해졌다. 공간이 충분히 비어있을 때 차선변경을 위해 방향지시등을 살짝 터치하면 그 방향으로 차선변경을 시도한다. 이때 운전자는 반드시 스티어링휠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선변경을 시도하는 중에 경고음을 내보내고 중단한다. 손을 가볍게 핸들에 올려놓는 정도면 차선변경을 무난하게 해낸다. 물론 아무 때나 가능한 건 아니다. 공간이 충분하고 스티어링을 쥐고 있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즉, 초보 운전자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라야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 대부분 운전자에게는 처음이라 신박한 기능이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먼 기능이기도 하다.
전기차 사운드인 ‘실버 웨이브’ ‘비비드 플럭스’ ‘로어링 펄스’ 등의 소리를 들려주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소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달리는 게 낫다. 없는 소리 일부러 만들 것까지야.
조용한 전기차에서 오디오의 가치는 더 높다. 부메스터 3D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은 욕심나는 오디오다. 총출력 710와트, 15개 스피커로 고품질의 소리를 들려준다.
공인복합 연비 3.8km/kWh, 파주-서울 55km 실주행 연비는 7.7km/kWh였다.
판매가격은 보조금 없이 1억 2,850만 원이다. 보조금 눈치 볼 필요 없이 언제든지 살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예약 충전이 안 된다. 그래서 심야 전력을 이용하려면 11시까지 기다렸다가 충전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려고 비싼 전기차 샀나 자괴감이 들법하다. 1억원 넘는 비싼 전기차 타면서 얼마나 아끼려고 심야 전력 타령이냐고 타박할지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값싼 전력이 있는 것 뻔히 알면서 비싸게 충전하는 것도 억울한 일이다. 예약충전 기능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 그리 고급 기술도 아니다. 서둘러 도입해야 하는 기능이다.
SUV를 넣은 촌스러운 이름도 문제다. EQE에 세단도 있고 SUV도 있으니 어쩔 수 없이 SUV를 이름에 넣어야 했다. EQ 라인, 더 나아가 벤츠의 전체적인 모델 네이밍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수많은 차종의 이름이 멋있게 보이도록 짜임새 있는 네이밍 체계를 고민해야 할 때다. ‘EQE SUV’는 정말 촌스러운 이름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