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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ID.5 GTX 타고 알프스를 달렸다. 기적처럼.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을 달리는 ID.5 GTX. 사진제공=폭스바겐그룹코리아

주행가능거리는 82km,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79km. 오르막이라도 만나면 낭패다. 오르막 1km를 가면 주행가능거리는 5km 이상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칫 중간에 배터리가 바닥나면 오도가도 못한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악도로여서 판단은 쉽지 않았다.

독일 뮌헨에서 폭스바겐 ID.5 GTX를 타고 출발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근 그로스글로크너를 지나서 달리는 중이었다. 그로스글로크너는 해발 3,789m의 오스트리아 알프스 최고봉이다. 도로 최고점이 해발 2,500m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높은 지역. 이곳을 지났다면 어느 방향으로 가든 길은 대체로 내리막이라는 의미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 가장 좋은 조건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최고점을 지나온 터였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을 달리는 ID.5 GTX. 사진제공=폭스바겐그룹코리아

조심스럽게 차를 움직였다. 당연히 에코 모드를 택했고 에어컨도 껐다. 차창을 여니 늦여름을 지나는 알프스의 공기가 서늘하게 파고든다. 에어컨 바람보다 백배는 더 좋다. 진작에 창을 열 것을…. 후회막급이다.

손가락이 바빴다. D로 달리다 급한 내리막에서 B를 택하고 탄력이 줄면 다시 D로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B 모드에서는 회생제동시스템이 적극적으로 가동돼 전기를 많이 모을 수 있다. 가늘고 길게 가는 방법이다.

목적지까지 거리는 줄어드는데 주행가능거리는 달릴수록 늘어났다. 79km를 모두 달리고도 주행가능거리는 149km가 남아 있었다. 전기차니까 가능한 기적 같은 일이다.

1일차 주행을 마친 뒤 계기판. 배터리 잔량 24%, 주행가능거리는 149 km다. 사진 = 오종훈.

ID.5 GTX는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달릴수록 배터리 잔량은 더 늘었으니 움직이는 발전소였다. 회생제동의 힘이다. 평소에는 모터가 바퀴를 돌리지만, 내리막에서는 바퀴가 모터를 돌린다. 바퀴 힘으로 도는 모터는 전기를 만들어 배터리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비어있는 연료통에 휘발유가 쌓이는 법은 없지만, 비어있는 배터리에 전기가 쌓이는 일은 흔한 일이다. 기적 같은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과학’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행가능거리가 79km 남은 차가 80km를 다 달리고도 149km를 더 달릴 수 있는 건 평균 연비로 주행가능거리를 구하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을 달리느라 악화된 연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79km를 더 갈 수 있지만, 그 이후 내리막길을 달렸으니 평균 연비는 크게 좋아졌고 그 연비를 기준으로 계산하니 주행가능거리는 계속 늘어나는 기적 같은 일이 가능했다. 첫날 418km를 7시간 32분 동안 평균 속도 시속 56km로 달린 평균 연비는 17.6kWh/100km, 환산하면 5.68km/kWh였다.

주행정보를 알려주는 모니터. 사진 = 오종훈.

폭스바겐그룹 초청으로 뮌헨에서 열리는 IAA 2023을 취재하기 위해 독일을 찾은 김에 폭스바겐 ID.5 GTX를 3일간 시승했다. 폭스바겐의 전기차는 ID 패밀리다. ID3, 4, 5로 이름 지었다. ID2 all이 컨셉카로 지난봄에 선보였고, 이번 IAA에서 ID.7을 만날 수 있었다. ID.버즈를 타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불발됐다.

이름을 잘 지었다. 자동차 동네에서 가장 세련된 네이밍중 하나다. 전기차가 도입되면서 보디 스타일과 세그먼트 등의 의미를 구분해 이름 짓느라 메이커마다 브랜드마다 머리를 싸맸는데, 폭스바겐이 ID 단 두 개의 알파벳과 하나의 숫자로 심플하게 이름을 지었다. 가장 세련된 이름이다. 세단과 SUV를 겹치지 않게 포진시킨 결과다.

SUV에 쿠페 스타일을 접목한 ID.5 GTX. 사진=오종훈

ID.5는 ID.4의 쿠페 스타일이다. ID.4가 SUV이니 ID.5는 쿠페형 SUV인 셈이다. 이 둘은 파워트레인을 함께 사용한다. 여기에 붙은 GTX는 그랜드투어러 GT에 ‘모든 것’ 혹은 ‘미지의 세계’ 정도를 의미하는 X를 붙인 이름이다. ID.4와 같은 듯 다른 모습이다. 보디 스타일, 루프라인, C 필러 주변이 다른데, 리어 스포일러가 보이면 ID.5 GTX다.

폭스바겐 ID.패밀리에서 5가 처음 GTX 배지를 달았다. ID.5 GTX는 최초의 순수 전기 고성능 모델로 2021년 11월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ID.5의 고성능 버전인 ID.5 GTX는 폭스바겐의 모듈형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MEB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제원을 보면 최고출력 299마력으로 고성능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해 보인다. 최고속도도 시속 180km로 제한됐다. 독일 아우토반 속도 무제한 구역에서도 시속 200km를 넘기지 못했다. 시속 100km 가속 시간 6.3초로 조금 빠른 편이다. 고성능이라기보다는 두 개의 모터를 사용해 네바퀴굴림으로 구동하는 ‘제한된 고성능’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어차피 두 개의 모터를 사용하면 성능이 높아지니 GTX는 사륜구동 전기차로 인식해도 좋겠다.

뒤로 낮아지는 지붕과 리어 스포일러는 ID.5. GTX의 특징. 사진=오종훈

네바퀴굴림이 보여주는 주행안정감은 탁월했다. 오스트리아 호에 타우에른(Hohe Tauern) 국립공원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산 그로스글로크너(Grossglockner), 이를 바라보는 전망대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회에(Kaiser Franz-Josefs Höhe) 까지 이어지는 길은 굽이굽이 물결치는 ‘하이 알파인 로드’로 유명하다. 헤어핀 코스가 수없이 이어지는 길을 차근차근 도장깨기하듯 돌아나갔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화창한 날씨에 주말까지 겹쳐 도로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로 와글거렸다. 그 많은 차와 바이크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무리한 가속 추월을 하지 않고도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추월에 감탄이 나올 정도.

추월은 왼쪽, 회전 로터리에서는 먼저 진입한 차가 우선. 이 정도만 숙지하고 지키면 유럽에서 운전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아우토반에서도 속도 무제한 구간은 별도로 지정된다는 사실도 명심할 것.

ID.5의 공기저항 계수는 0.27이다. 다이내믹한 주행을 하면서도 조용한 실내를 구현했다. 사진=오종훈

조용했다. 길 상태만 좋다면 적막한 실내가 무서울 정도다. 간간이 자글거리는 소리가 실내로 들어오지만 대체로 조용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 조용함이 문제다. 조그만 소리도 크게 들리는 것. 바스락거리고, 트렁크에 여행가방 미끄러지는 소리 등이 뚜렷하게 들린다. 조용해서 때로 시끄러운 이유다.

공기저항계수 0.27. 놀랄만한 수준이다. SUV의 몸에 공기저항 계수를 0.27까지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디자인의 힘이다. 공기의 저항을 줄여 조용하면서 연비까지 좋은 차로 만들었다.

82k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77.0kWh까지 사용할 수 있다. 5kWh 정도를 안전마진으로 확보한 것. WLTP 기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480km다. 인증 조건이 엄청 까다로운 한국으로 건너오면 주행가능거리는 조금 더 짧아질 것이다.

유럽 자료를 찾아보면 최악의 경우 영하 10도에서 난방을 사용하며 달릴 경우 고속도로에서 295km를 달릴 수 있고, 영상 23도에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고 달리면 도심 주행으로 590km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조금 신경 써서 경제운전을 하면 500km 이상 달릴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배터리를 100% 다 사용할 때의 얘기인데, 배터리를 그렇게 쓸 수는 없다. 10% 정도 남은 상태에서 계속 달릴 무모한 운전자는 없을 것이다. 또한 배터리 안전을 위해 100% 충전보다 80~90% 정도 충전할 것을 권하고 있다. 잔량 10%에서 90%까지 충전한다면 실제 배터리가 사용되는 범위는 10~90%까지, 즉 전체의 80%가량 사용할 수 있다. 이 차의 경우 380km 정도를 가면 다시 충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충분한 거리다. 완속 충전 AC 11kW, 급속 충전 DC 175kW까지 대응한다. 주행가능거리 40km에서 320km까지 급속 충전하는 데 30분가량 걸린다.

9월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아름다웠다. 3일 동안 ID.5 GTX를 타고 800km를 달리는 동안 최고의 날씨가 연일 계속됐다. 일행 중 누군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이 분명했다.

파노라믹 글래스루프를 통해 시원하게 보이는 차창 밖 풍경. 사진 – 오종훈.

시승 코스도 환상적이었다. 뮌헨에서 오스트리아 국경까지의 아우토반, 그로스글로크너를 감아 도는 하이 알파인로드, 눈 시린 파란 하늘을 차곡차곡 눈에 담고 ID.5 GTX와 헤어질 순간. 어쩌면 이 차 ID.5 GTX가 전환기의 폭스바겐을 구할 존재는 아닐지 다시 한번 눈도장을 찍는다. 독일에선 여기까지, 한국서 다시보자.

오종훈의 단도직입
산길에서 배터리 전력 소모를 아끼느라 B 모드를 자주 선택해야 했다. 오른손으로 조작하는 데 편하지 않다. 손을 뻗어 B를 택했다가 다시 D로 돌아오는 조작이다. 스티어링휠에 패들을 장착해 B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면 훨씬 좋지 않을까. GTX라는 고성능 이미지에도 패들이 있는 게 더 좋겠고.

독일 뮌헨 =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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