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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AMG SL 63, 강자의 여유

메르세데스 AMG SL 64 4매틱 플러스. 이름이 길다.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은 단어들을 이어 붙인 이름. 이름에 벤츠는 없고, 대신 AMG가 들어갔으나, SL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벤츠의 아이콘이다. SL은 몰라도, 갈매기 날개처럼 하늘로 펼쳐진 도어를 가진 차를 기억하는 일들은 많을 것이다. 그때는 300SL이었고, 지금은 SL 64 4매틱+다. 7세대 완전변경 모델이다.

SL이지만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갈매기 날개는 사라졌고 후륜구동은 최첨단 사륜구동으로 바뀌었고, 그때는 2인승이었으나 지금은 4인승이다. 더 좋아진 걸까? 아니, 그때와 지금의 SL이 비슷하기라도 한 걸까? 호적에 그리 올렸으니 부르기는 하지만, 도대체 왜 눈앞의 이 차를 SL로 불러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14개의 기둥을 세운 그릴, 각을 세운 디지털 헤드램프도 좋지만, 옆 모습이 가장 멋있다. 롱노즈 숏 데크의 전형을 보인다. 휠베이스는 길고 오버행은 짧다. 21인치 타이어가 꽉 채운 휠하우스는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A필러와 함께 뒤로 잔뜩 누운 앞창은 바람을 가를 준비가 됐음을 말하고 있다.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시트의 위치다. 차의 중심에서 뒤로 많이 물러난 곳에 운전석이 있다. 2열은 뒷차축에 걸터앉았다. 그래서일까. 조향 특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반응이 빠른데 아주 미세한 시차를 몸이 느낀다. 엇박자가 이어지는 빠른 리듬에 몸을 맡겨 춤을 추는 기분이다.

리어 액슬 스티어링도 조향 특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저속에서 앞뒤 역방향, 빠른 속도에서 앞뒤 같은 방향으로 뒷바퀴가 조향에 개입한다.

또 하나, 스티어링휠 락투락 조향비가 2회전에 못 미쳐 1.8 회전한다. 핸들이 두 바퀴가 안 돌아가는 것. 제대로 된 고성능 스포츠카임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시트, 스티어링 락투락, 리어 액슬 스티어링, 이 세 가지 요소는 조향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시속 60km 이하의 속도라면 차가 움직이는 중이어도 지붕을 열 수 있다. 전동식이라 편하다. 다만 지붕이 열리는 15초 동안 모니터에 뜬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한다. 손을 떼면 열리던 지붕도 작동을 멈춘다. 조금 불편하다.

센터패시아 모니터는 11.9인치.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화면 하단에 띄워주는 제로 레이어 기능을 비롯해 아주 다양한 기능을 품고 있다. 모니터 각도도 12°에서 32°까지 조절할 수 있다. 가장 잘 보이는 각도로 고정하면 된다.

12.3인치 모니터로 구성한 계기판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계기판 디자인부터 올라오는 정보, 헤드업 디스플레이 구성까지 선택할 게 아주 많다.

스티어링 휠에는 층층이 많은 버튼이 쌓여있다. 제일 아래 두 개의 휠 버튼은 주행모드, AMG 다이내믹, 스포츠 배기 시스템, 수동변속 모드, 엔진 오토스톱, 리어 스포일러, 등을 조절한다. 스포츠 배기 시스템, 수동변속, 구동장치, 섀시, AMG 다이내믹 하나하나를 상황에 맞춰, 입맛에 따라 다르게 선택할 수 있다. 하나하나 버튼을 누르며 고르다 보면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이 과정이 재미있으면 이 차의 운전석에 앉을 자격이 있다. 짜증 난다면 궁합이 안 맞는 것이니 조용히 운전석에서 내려오는 게 맞다.

최근에 시승했던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와 주행 질감이 많이 닮았다. 낮은 차체로 인해 도로 위에 시트 하나 놓고 달리는 기분이 그랬다. 엔진이 폭발하며 차체를 끌고 달리는 고성능 컨버터블이라는 점에서 두 차는 아주 닮았다.

유압식 서스펜션 시스템인 AMG 액티브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은 차체를 무척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속도에 상관없는 안정감이다. 덕분에 실제 주행속도와 체감 속도 사이에 괴리가 크다. 빠른 속도에서도 흔들림이 적다.

주행보조 시스템인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플러스는 양산 차에 구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주행보조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내 차선을 중심으로 좌우 차선까지 3개 차로를 인식하고, 주위를 함께 달리는 차들의 크기까지 구분한다. 차선변경 어시스트 기능까지 포함한다.

MBUX 증강현실이 적용된 내비게이션, 이와 연동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있어서 갈림길에서 직관적으로 진행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카메라로 실제 화면을 불러와 화면에 띄우고 그 위에 진행 방향을 표시해줘서 길 잃을 염려는 제로에 가깝다.

8기통 엔진이다. V8 4.0 가솔린 엔진은 어느 속도에서도 여유롭다. 힘차게 가속하면서도 배기량의 여유, 힘의 여유가 전해온다. 빠듯하게 쥐어짜는 다운사이징 엔진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 그 엔진이 만드는 585마력의 최고출력은 달릴까 말까 늘 갈등하게 만든다.

그 힘을 조율하는 변속기는 AMG 스피드 시프트 MCT 9단 변속기다. 시속 100km에서 9단 1,400rpm, 3단 5,300rpm 구간에서 커버한다. 기어비는 1단 5.354에서 시작해 6단에서 1:1을 맞춘다. 이후 7, 8, 9단이 오버 드라이브다. 낮은 기어에서 힘, 높은 기어에서 효율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어비다.

공차중량 1,955kg으로 1마력이 감당하는 무게가 3.3kg에 불과하다. 큰 힘으로 가볍게 달릴 수 있는 몸이다. 메이커가 밝히는 0-100km/h 가속 시간은 3.6초. GPS 계측기를 장착해 실제 측정해본 결과도 3.84초를 기록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기차들이 등장하면서 0-100km/h 가속 시간이 크게 짧아졌지만, 내연기관으로 시속 100km를 3초대에 주파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 소리에 올라타고 달리는 느낌이다.

고성능의 핸디캡은 연비다. 공인복합 연비가 리터당 6.3km다. 연비 걱정하면서 타는 차는 아니니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한다. 파주-서울간 55km를 달린 실주행 연비는 7.1km/L였다. 교통체증이 심해 평균 주행속도 35km/h였으니 이를 고려하면 그래도 선방한 연비다.

2억 3,360만원이었던 가격이 올랐다. 23년식 2억3,500만원, 퍼포먼스 트림 2억 6,000만원이다.

고성능 컨버터블이지만 호들갑스럽지 않다. 과시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 굳이 과장하거나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다. 강자의 여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조용한 편은 아니다. 지붕을 닫고 달려도 컨버터블인 만큼 틈새로 파고드는 바람 소리를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적용하면 조금 더 낫겠지만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2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아쉽다.
지붕을 열면 차창을 올려도 바람이 몰아쳐 머리가 휘날린다. 그러고 보니 윈드 디플렉터가 없다. 4인승이어서다. 디플렉터를 달면 뒷좌석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디플렉터를 안 달면 뒷좌석을 쓸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차피 뒷좌석은 좁아서 사람이 앉기 힘들다. 둘이 탈 때만이라도 디플렉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왜 4인승으로 만들었을까. 뒷좌석은 성인이 앉기엔 턱없이 좁다. 머리는 지붕에 닿고 무릎은 앞 시트에 닿는다. 여유 공간이 전혀 없다. 그래도 4인승이라면 할 말 없지만, SL이라는 이름을 달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매우 아쉽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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