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의 첫 전기차 RZ 450e를 만나는 날,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비 오는 날 전기차라니.
하이브리드가 아닌, 100% 배터리 전기차로의 혁명적 변환을 렉서스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첫 느낌은 조심스러움이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핵 펀치가 아니다. 힘을 쫙 빼고 가볍게 툭 던지는 잽 같은 느낌이다. 우당탕탕 치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살짝 문을 열고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는 그런 느낌.
하이브리드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입장에서는 전기차가 반갑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디뎌보는 분위기다. 아주 조심스럽게 만든 첫 전기차다.
디자인은 ‘넥스트 챕터’를 강조하고 있다. 렉서스의 다음 세대 디자인 방향을 보여준다는 의미. 하지만 여전히 렉서스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틀 안에서 과감하다. L자형 주간주행등, 스핀들 그릴 등이 여전히 렉서스다.
리어 스포일러가 뿔처럼 배치됐다. 이 스포일러가 횡풍으로 인한 차의 흔들림을 줄여준다는 설명이다.
인테리어는 기대 이상이다. 스웨이드 가죽으로 실내를 발라놓았다. 도어를 열고 들어서며 눈이 먼저 감탄하고, 구석구석 만져보며 손이 놀란다. 렉서스가 RZ에서 만나는 제패니스 프리미엄이다.
전자식 버튼 도어 핸들 ‘e-래치’는 문을 여는 또 다른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버튼을 누른 뒤 밀어내는 동작으로 문을 연다. 디테일에서 차별화다. 어떤 소비자는 이런 디테일에 감동한다.
선루프도 조광 기능을 넣어 차별화했다. 운전석 오버헤드 콘솔의 버튼을 누르면 선루프 유리가 투명, 불투명으로 변화한다. 쏟아지는 햇볕을 그렇게 막아주는 것. 이 역시 디테일의 차별화다.
렉서스는 ‘타즈나’ 컨셉을 강조하고 있다. 말과 기수가 혼연일체로 움직이듯, 차와 탑승자가 교감하며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시트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몸을 감싸는 시트보다 더 와 닿는 건 스티어링 휠의 촉감이다. 3 스포크 휠로 만들어진 스티어링휠의 가죽이 보들보들한게 어린 아이 피부의 느낌이다. 자꾸 손으로 쓸어만지게 된다. 놀라운 촉감이어서 손을 떼기가 싫어진다. 늘 손이 핸들에 가 있으면 안전을 위해서도 나쁠게 없겠다.
14인치 터치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보여준다. 스티어링 휠 좌우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면 10인치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반응한다.
열선을 묻은 뒷좌석은 6:4로 접을 수 있는데 등받이가 2단계로 조절된다. 트렁크는 기본 522리터로 뒤 시트를 접으면 1,451리터까지 확장된다.
네이버 클로바을 들여온 음성 인식 시스템은 제법 훌륭하게 작동한다. 음성 인식 부분은 자동차 브랜드별로 가장 격차가 큰 분야다. 네이버 클로바를 업고 렉서스가 선두 그룹에 진입하고 있다. LG U+와는 폭넓은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4,805×1,895×1,635mm 크기에 휠베이스는 2,850mm다. 실내는 넉넉하다. 공차중량은 2,090kg으로 전기차 중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편이다. 앞뒤 차축에 각각 모터를 적용해 사륜구동을 적용했다. 최고출력 312마력. 트윈 모터를 사용하는 사륜구동 전기차치고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모터 출력(앞 150kW, 뒤 80kW)은 앞이 강하고 타이어(앞 235/60R18, 뒤 255/55R18)는 뒷타이어 접지면이 넓다.
71.4kWh짜리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1회 충전으로 최대 377km를 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날씨가 받쳐주면 400km는 너끈히 넘기겠다. 하지만 이는 배터리를 100% 사용할 때의 얘기다. 전기차 배터리는 80%까지 충전하고 10% 잔량에서 충전한다고 가정하면 실제 사용량은 70%로 봐야 한다. 주행가능 거리도 그만큼 줄여 잡아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겨울철 주행 거리. 무공해차 통합 누리집에 따르면 RZ 450 e의 저온 주행가능 거리는 290km다. 한겨울에도 이만큼은 달린다고 보면 일상생활에서 크게 불편함을 느낄 일은 없겠다.
멀리 간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 배터리가 따라서 커져야 해서다. 대용량 배터리일수록 멀리 갈 수 있지만 크고 무겁고 비싸다. 연비에 좋을 수 없다. 우리가 왜 전기차를 타야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RZ 450 e는 렉서스의 특징을 아주 잘 살려내고 있다. 조용하고 편안했다. 시속 80~90km 속도에서 실내에서 들리는 소리가 거의 없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제법 힘 있는 소리가 난다. 모터가 작동하는 소리에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소리가 더해진 소리다. 가상의 사운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겠다. 없는 소리를 굳이 만들어가면서 들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과 달리는 맛을 제대로 살리는데 소리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전자다.
렉서스 세이프티 시스템 플러스는 그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긴급제동보조(PCS), 차선추적 어시스트(LTA),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컨트롤(DRCC), 능동형 주행 어시스트(PDA) 등이 포함된다. 럭셔리 트림에는 12개의 LED 램프를 독립적으로 컨트롤하는 바이 어댑티브 하이빔 시스템(Bi-AHS)까지 적용된다.
판매가격 9,300만 원, 국고보조 320만 원, 서울시 기준 지자체 보조금 84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렉서스 RZ은 렉서스가 전기차로의 전환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가장 보수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RZ의 디자인, 성능, 출시 시기 등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시기적으로 다른 브랜드에 비해 늦었고, 디자인은 틀을 깨지 않고 틀 안에서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조용하지만 무난한 성능은 뒤집어엎는 화끈한 변화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꾸준히 밀고 가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적어도 RZ을 통해 느낀 바는 그랬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지붕과 앞 차창이 만나는 지점은 틈새가 떠 있다. 손끝으로 재질의 거친 단면도 만져진다. 변속레버 아래 수납공간에 스웨이드 가죽을 넣어놓았는데 이게 떼어놓고 보면 그리 고급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아예 붙여놓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반감시키는 부분들이다.
조수석 앞 글로브 박스가 아예 없다. 다른 수납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다 열린 공간이다. 글로브 박스는 막혀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큰데 이게 없으니 난감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