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로 인한 경기둔화 심화로 발생한 소비심리 위축과 신차 가격 상승으로 국내 차량 구매의향 지수가 8개월 연속 기준치(100)를 하회하며 최저치 부근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24개국에서 나라별로 18세 이상 1,000명이 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차량 구매 의향을 조사해 도출한 ‘2023년 3월 자동차구매의향지수(Vehicle Purchase Intent Index, 이하 VPI 지수)’를 발표했다.
2023년 3월 국내 소비자 VPI 지수는 69.8을 기록해 2023년 2월(62.6)과 2022년 10월(63.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월(2022년 3월: 96.7)과 비교할 때 26.9포인트 낮은 수치다.
이 같은 저조한 구매의향 지수의 배경에 대해 딜로이트는 ‘소비 심리 위축’과 ‘신차 가격 상승’을 주된 요인으로 보고 있다.
VPI 지수는 향후 6개월 내 차량 구매 의향을 나타낸 소비자 비율을 지수화한 지표이다. 딜로이트 글로벌은 2021년 10월 VPI 지수(100)를 기준으로, 이를 상회하면 소비자 자동차 구매의향이 ‘증가’, 하회하면 ‘감소’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딜로이트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부품의 고급화, 전동화 전환에 따른 신차 가격 상승이 이처럼 VPI 지수가 계속 저조한 데 주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자율주행과 차량의 고급화 및 전동화로 인한 신차의 차량용 반도체 소요 규모가 증가한 가운데, 차량용 주요 원자재 가격도 지난 2년 사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루미늄의 경우 2020년 말 기준 1톤당 1,704달러에서 2022년에 2,703달러로 가격이 59% 상승했으며, 구리 가격은 2020년 말 1톤당 6,181달러에서 2022년 말 8,797달러로 42% 올랐다.
이와 같은 소요 부품 증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속에 올해 3월 공시된 현대차•기아차가 발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 승용차 가격은 2021년 대당 4,758만 원에서 2022년 5,031만 원으로, 기아자동차의 승용차 가격은 같은 기간 대당 3,365만 원에서 3,431만 원으로 각각 상승했다.
글로벌 소비자 VPI 지수는 3월에 84.4로 2월에 비해 0.6 포인트 하락했다. 글로벌 VPI지수는 2022년 10월 77.7로 조사 이래 최저치를 보였다가, 같은 해 11월 82.8, 12월 84.8을 기록하며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2023년 1분기 VPI 평균값이 84.1(1월 83.1, 2월 85.0, 3월 84.4)에 그치는 등 여전히 기준선보다 크게 낮은 80선을 벗어나지 못한 채 횡보하고 있다.
딜로이트 글로벌은 이 같은 구매의향 하락요인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유로7 준수에 따른 자동차 생산 원가 상승, 중고차 재고 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 높은 금리로 인한 차량 할부 이자율 증가 등을 꼽았다.
글로벌 VPI의 경우 반도체 수급 회복에 따른 자동차 출고 대기 기간 감소 및 대기 물량 해소, 전기차 공급 증가와 더불어 전기차 및 차량 배터리 가격 인하로 인한 소비자 관심이 증가가 차량구매의향의 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보았다.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 확대와 세계 주요국의 전기차 판매 보조금 삭감·폐지 계획 발표에 따라 최근 테슬라를 중심으로 한 전기차 가격 인하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업체들이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예고하고 있으며, 핵심 광물 가격 안정에 따른 배터리 가격 하락 소식까지 이어져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3월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 구매 시 직접적인 요인으로 국내 소비자의 24%가 ‘신차에 탑재된 최신 기능과 성능을 원한다’고 답변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다음으로 ‘현재 보유 중인 차량의 유지비와 수리비 부담이 크다’(19%), ‘타사 혹은 다른 모델의 차량을 원한다’(16%)는 응답이 뒤따랐다.
이러한 결과는 앞서 지난 2월 조사에서는 ‘타사 혹은 다른 모델의 차량을 원한다’가 가장 큰 비중(21%)을 차지한 것과 비교할 때 구매 동인의 순위 변화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구매할 때 고려하는 가계 재정 요인 중에서는 ‘고가품목 구매 계획 연기(53%)’가 여전히 1순위 응답이었고, ‘현재 저축금액 소진 우려’(50%)가 2순위였다.
글로벌 소비자도 국내 소비자와 동일하게 구매 동인 중에서 ‘신차에 탑재된 최신 기능과 성능을 원한다’(23%)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글로벌의 경우 ‘타사 혹은 다른 모델의 차량을 원한다’(18%), ‘현재 보유 중인 차량의 유지비와 수리비 부담이 크다’(15%)는 순서로 답했는데, 2월과 비교할 때 응답 순위의 변화는 없었다.
글로벌 소비자들은 자동차 구매 시 고려하는 가계 재정 요인으로 국내 소비자와 달리 1순위로 ‘현재 저축금액 소진 우려(45%)’, 2순위로 ‘고가품목 구매 계획 연기’(44%)로 각각 응답했다.
김태환 한국 딜로이트 그룹 자동차산업 리더는 “글로벌 시장에서 자동차 구매심리가 소폭 살아나기는 했으나 아직은 고금리 및 가계경제 악화로 인해 한국과 글로벌 모두 자동차 판매 시장 전체가 경직되어 있는 상황”이라면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구매를 원하는 이들의 소비심리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체계적인 판매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진 daedusj@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