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스의 등장은 화려했다. 댄서들의 힘찬 군무와 더불어 트랙을 달리듯 사방으로 내달리는 트랙스의 모습이 반가웠다. 미국 이름 트랙스, 한국 이름은 트랙스 크로스오버. 꼬리가 길어진 건, 뭔가를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넘치는 의욕 때문이다. 나쁘지 않다.

트랙스의 등장으로 조금 무기력해 보였던 쉐보레에 활기가 보인다. 크로스오버를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세단과 SUV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서 세단보다 좋고, SUV보다 좋은 차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어느 한쪽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쟁이의 마음이다. 미사여구에 그치기 쉬운 말이기도 하다. 말장난인지 실제로 그런지는 소비자들이 알아본다. 시장이 뜨겁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크로스오버를 강조하는 쉐보레의 자랑이 빈말은 아니다.

사진 왼쪽이 RS, 오른쪽이 액티브 트림. 라디에이터 그릴 형상이 다르다.

쉐보레는 트랙스 크로스오버에 투톱을 세웠다. 액티브 트림과 RS 트림이다. 선택할 수 있다는 건,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느 것을 택할까. 좀 더 스포티한 감각의 RS? 아니면 아웃도어에 특화된 액티브? 소비자들은 “어느 게 더 좋아?” “누가 더 세?”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 답이 명확하지 않다. 같은 파워트레인에 디테일만 살짝 바꿨기 때문이다.

선택지를 늘어놓고 소비자에게 결정을 미룬 것이다. 라디에이터 그릴 주변의 디자인, RS 뱃지, 루프랙이 있고(액티브) 없음(RS), 타이어 사이즈(RS는 19인치, 액티브는 18인치) 정도다.

RS를 시승차로 골랐다. 더 비싼 차니까 최고의 트림을 탄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액티브를 골랐어도 큰 차이는 없었겠다. 디자인은 각자 보기 나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직접 보고 판단하면 된다.

공간에 놀랐다. 길이 4,540, 너비 1,825, 높이 1,560mm에 휠베이스 2,70mm의 크기. 소형 SUV의 뒷좌석에서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넉넉히 드나드는 공간을 확보했다. 머리 위로도 주먹 하나 여유가 있게 드나든다.

게다가 뒷좌석 바닥은 센터 터널이 없어 평평하다. 센터 터널의 공간 압박에서 벗어났다. 공간만으로 본다면 굳이 준중형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겠다. 아니, 준중형에서도 이런 뒷좌석 공간을 만나기 힘들 정도니 오히려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야 할 정도다. 공간 하나만으로도 성공하겠다.

도어를 열고 엉덩이를 밀어 넣으면 시트, 반대로 도어를 열고 다리를 내밀면 길바닥에 바로 다리가 닿는다. 드나들기가 쉽고 편하다.

8인치 컬러 클러스터와 11인치 컬러 터치스크린으로 듀얼 스크린을 구성했다. 제법 큰 센터패시아 터치스크린은 운전자를 향해 9도 기울었다. 안드로이드 오토 혹은 카플레이 기능은 무선으로 연결된다.

신형 1.2리터 E-Turbo Prime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다. 배기량이 너무 작지않나 싶지만 최고출력 139마력이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겠다. 게다가 공차중량 1,300~1,340kg으로 감량에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마력당 무게비가 9.3kg 정도다. 차급을 고려하면 무게와 출력의 균형이 괜찮은 편이다.

힘이 좋다. 139마력 이상으로 다가온다. 가속이 지루하지 않고 고속까지 너끈히 달린다. 과부의 ‘한 닢’ 같은 힘이다. 1.2 리터 엔진에서 나오는 139마력의 힘이, 가진 것 전부를 내놓는 과부의 한 닢을 생각하게 한다. 배기량이 적어 자동차 세금도 부담 없겠다.

앞바퀴 굴림이다. 노면의 굴곡을 타고 적당히 흔들리는 느낌이 고속주행의 긴장감을 살려준다. 빠른 속도까지 치고 나가는 힘이 제법이다. 서스펜션의 느낌도, 245/45R19 타이어의 노면 그립도 참 좋았다. 노면을 딛고, 충격을 견디며 움직이는 반응이 차급 이상이다.

시속 100km에서 1,900rpm을 유지한다. 엔진 회전수가 생각보다 낮다. 배기량 1.2리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 조합으로 무척 안정적인 수준을 보였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유지보조시스템이 운전자의 주행을 보조한다. 차선 중앙을 꾸준히 유지하는 건 아니어서 차선을 밟기 전 혹은 밟은 다음으로 중앙으로 밀어 넣는 반응을 보인다. 어댑티브 크루즈는 스탑&고까지 지원한다.

한국에서만 더 적용되는 사양이 있다. 브레이크 오토 홀드, 뒷좌석 에어벤트, 파워 리프트게이트, LED 테일램프와 LED 방향지시등 일체형 아웃사이드 미러, 샤크핀 안테나 등이 미국에서는 만날 수 없는 한국 시장 특화 사양이다. 파워리프트 게이트는 좀 과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왕 주는 거 시원하게 쏜다는 느낌이다.

결국 가격이다. 최저가격 2,052만원부터다. 가장 비싼 RS 트림이 2,739만원. 많은 이들이 환호하는 지점이다. 그동안의 쉐보레와는 다른 행보다.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뭔가 달라 보이고,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놀라운 가격 경쟁력이 셀토스, 베뉴, 티볼리 등을 긴장하게 할만하다. 시작 가격 기준으로 XM3 정도가 더 낮다.

낮은 가격은 늘 좋은 핑계가 된다. 이거 없고 저거 없는데? 라는 불만에, 사실은 그리 부족한 것도 없지만, 이 가격에 뭘 더 바라십니까? 라는 대화가 가능해진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가격은 ▲LS 2,052만원, ▲LT 2,366만원, ▲ACTIV 2,681만원, ▲RS 2,739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트레일블레이저가 걱정이다. 트레일블레이저 시작 가격은 2,571만원. 5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이 가격, 이 품질이라면 트레일블레이저를 택할 이유는 크게 줄겠다. 차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를 윗급으로 유도해야하는데, 그 반대로 가겠다. 트레일블레이저 보러왔다가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택하겠다는 얘기. 개별 제품과 전체 라인업을 잘 정돈해놓은 역량이 아쉽다. 각 모델별 독자생존하라는 얘기인데 제대로 생존할 녀석은 몇 안보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