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의 하이빔 38] 자동차 산업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머스크와 테슬라
얼마 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에 관한 일화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MS나 애플을 만든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사업을 시작한 머스크는 사무실에서 업무와 숙식을 함께 해결하며 하루에 17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머스크는 “ZIP 2”,“X.com(엑스닷컴/페이팔 전신)” 등을 만들어 대기업에 매각하여 30대 초반에 이미 억만장자가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회사를 매각해 30대 초반에 1억 달러 이상의 돈을 갖게 되면 평생 일을 안 하면서 우아하게 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기본개념을 전기차의 설계부터 생산공정, 심지어는 판매방식에 이르기까지 송두리째 바꿔버린 혁신가다.
테슬라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 나는 테슬라가 기존 제작사 대비 우수한 점이 있다면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OTA(Over The Air) 정도라고 생각했다.
대시보드의 온갖 버튼들을 태블릿 화면 한 장에 몰아넣은 것을 보고 컴퓨터로 돈 번 친구라 자동차도 컴퓨터처럼 만드는구나 하고 웃기도 했다. 심지어 모니터가 고장 나면 에어컨도 못 틀겠네 하는 한심한 생각을 하기도 했고(!)
OTA 이외의 다른 부분은 오히려 기존의 자동차 제작사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OTA 같은 건 애플 같은 회사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가? 많은 자동차 제작사들이 OTA를 몰라서 적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애플이 아니라도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문제없이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자동차의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일원화하게 개발하고 주저 없이 적용하는 혁신 정신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테슬라의 혁신 정신은 전기차 성능의 핵심을 꿰뚫는 기술혁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전기차의 초기부터 제작사들이나 소비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은 차량의 동력성능을 좌우하는 모터의 성능과 얼마나 내연기관만큼 멀리 주행할 수 있는가 하는 배터리의 성능에 있었다.
전기차가 활성화되고 소비자의 관심과 지식이 늘어나면서 주행거리를 더 늘리고 모터의 고성능화에 따른 배터리의 가열 문제 해결을 위해 열을 제어하는 기술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테슬라는 2020년 중앙집중형 열관리 시스템인 ‘옥토 밸브’ 시스템을 선보였다. 일론 머스크는 “모델 Y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는 컴퓨터도 아니고 고용량 리튬이온 배터리도 아닌 ‘옥토 밸브’다”라고 했다.
옥토 밸브는 냉난방, 배터리, ECU 등의 열을 관리하는 핵심 시스템 부품이다. 모든 냉각. 가온 회로를 옥토 밸브와 연결해 온도가 높아진 부분의 밸브를 열고 냉매를 보내 냉각하는 구실을 한다. 옥토 밸브의 기능과 성능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소프트웨어의 원격 업데이트로 성능을 향상시키는 ‘OTA’와 조합했을 때다. 여기서 OTA가 또 활약한다. “자동차의 진가는 이제 하드에서 소프트로”라는 말이 있다.
타사보다 이 말의 의미를 먼저 이해하고 실천한 머스크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된다.
자동차 산업은 규모의 경제다. 테슬라는 2003년 창사 이후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런 테슬라가 2020년부터 영업이익 기준으로 흑자로 전환했으며 2021년에는 영업이익률이 13%에 이를 정도로 수익성 있는 회사로 변신했다. 2021년 기준 세계 자동차 회사의 영업이익률을 비교해 보면 테슬라가 13.8%로 1등, 벤츠, BMW가 12% 수준, 도요타가 9.5%, 현대차 5.7%, 폭스바겐 4.3% 등이다.
통상적으로 완성차 업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8% 전후인 시장에서 BMW, 벤츠와 같이 고가의 프리미엄 모델 중심의 회사도 아닌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이 1등인 원인은 무엇일까? 머스크는 이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저를 ‘거물 사업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80%는 기계, 전기, 우주 공학 등 엔지니어링과 생산공정에 관한 것들이다.”
테슬라의 강점을 이야기할 때 혁신적인 상품성뿐 아니라 완전한 온라인 판매를 통한 판매 비용 절감 등을 들곤 하지만 머스크가 언론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혁신적인 생산공정’이야말로 테슬라의 영업이익을 증가시킨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테슬라의 혁신적인 생산공정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그 결과인 HPV, 즉 전기차 대당 생산소요시간을 비교해 보면 테슬라가 10시간, 폭스바겐 30시간, 포드 20시간, 현대차(울산공장) 26.8시간이다. 테슬라 생산공정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기존의 제작사는 차를 만들기 위해 생산공정을 설계하지만, 테슬라는 생산공정을 위해, 생산공정에 최적화해 차를 설계한다고 볼 수도 있을 만큼 생산공정의 혁신에 공을 들였다.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서 큰 흐름이 되는 생산방식이 있다. 그 첫째는 100여 년 전 헨리 포드가 만들어낸 컨베이어 방식의 포드시스템, 또 하나는 반세기 전에 나온 도요타 생산시스템(TPS, Toyota Production System)이다. 어떤 기사에선가 앞으로 TPS의 T가 ‘Toyota’가 아니라 ‘Tesla’로 바뀔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테슬라가 생산성을 빨리 높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많은 사람이 ‘기가 프레스(Giga Press)’ 기술을 언급하곤 한다. 기가 프레스는 알루미늄을 녹인 액을 틀에 부어 거대한 부품을 통째로 주조하는 생산방식이다.
테슬라는 ‘MODEL Y’의 후방섀시를 만들 때 수십 개의 패널을 용접해 만드는 대신 기가 프레스 기술을 이용해 한꺼번에 찍어낼 수 있다. 테슬라의 자료에 의하면 이 방식으로 후방 섀시 제작비용은 40%, 중량은 30%가 줄었다고 한다.
테슬라의 다른 공장에서는 후방뿐 아니라 전방섀시도 이렇게 찍어내어 차량의 하부 골격이 ‘전방섀시 + 배터리팩 + 후방섀시’ 단 3개 부품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즉, 중앙 하부의 배터리팩 자체가 차량을 지지하는 구조물 역할도 하도록 차량 설계단계에서 고려가 된 것이다.
물론 기가 프레스 기술을 이용하려면 차량의 설계단계부터 이를 고려해 설계하고 소재 개발, 생산기술 개발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해 기존의 공장이나 차량이 아닌 신공장에서 새로운 차를 생산하는 테슬라 같은 회사에 적합하다고 하겠다.
또 여러 제작사가 스마트공장을 위해 수많은 로봇을 사용하고 있지만 테슬라는 이에 한발 더 나아가 로봇 수천 대의 업데이트를 자동화하도록 해 며칠 만에 공장 생산설비의 시스템 전체를 리셋할 수 있다고 한다. 공장에 신차를 투입하려면 생산설비 시스템 세팅에만 몇 달이 걸리는 기존 제작사의 공장과 테슬라 공장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겠다.
몇 년 전, 머스크가 MODEL 3의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해 생산공정 개선을 하느라 공장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일하고 있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를 봤을 때는 설마 했지만, 과연 그런 집념의 결과로 MODEL 3의 생산성을 빨리 높이고 현재 효자 노릇을 하는 MODEL Y를 짧은 시간에 출시할 수 있었다고 느꼈다.
2030년에는 연간 2,000만 대 생산을 하겠다는 머스크의 장담이 얼마나 이루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기 위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혁신을 보여줄는지.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 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