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AutoDiary

지프 그랜드 체로키, 어떤 풍경에도 녹아든다.

강추위와 함께 그랜드 체로키가 왔다. 올 뉴 그랜드 체로키와 올 뉴 그랜드 체로키 4xe를 만나는 날, 눈이 내렸고 기온은 급강하했다. 2022년 마지막 시승차로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만났다.

그랜드 체로키는 온로드는 물론 오프로드까지 두루 커버하는 차다. 랭글러는 오프로드용이고 그랜드 체로키는 온로드를 지향한다는 단순한 구분에 동의하기 힘들다. 랭글러가 오프로드용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랜드 체로키를 그 반대편, 온로드에만 묶어둘 수는 없다.

도시 풍경에 잘 녹아드는 품격 있는 디자인이다. 세븐 슬롯 그릴을 앞세워 격조 있게 빌딩 숲을 달리는 모습은 멋있다. 무대를 옮겨 깊은 산속, 사막 한 가운데, 혹은 바닷가나 강가에서도 그랜드 체로키는 잘 어울린다. 어떤 배경에도 녹아드는 모습이다.

밤사이에 내린 눈, 영하 5도의 추위, 거친 날씨도 그랜드 체로키와의 케미는 최고다. 차를 믿고 한 치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설 수 있다. 대부분의 차들이 시승을 포기해야 할 만큼 거친 날씨에 “얼씨구나” 춤을 추며 길을 나선다. 그랜드 체로키는 그런 차다. 어떤 풍경, 어떤 날씨여도 그랜드 체로키를 타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좋고, 나쁘면 더 좋다. 도심이어도 좋고, 거친 강을 건너야 하는 심장 쫄깃한 상황이어도 괜찮다. 어느 위치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리베로. 바로 그랜드 체로키다.

여기에 파란 심장을 더한 게 그랜드 체로키 4xe다. 그랜드 체로키의 기본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두 개의 모터로 상징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한 모델이다. 강추위에 전기 모터와 배터리가 조금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랜드 체로키의 기본기로 이를 잘 커버하고 있었다.

그랜드 체로키는 아메리칸 프리미엄 SUV의 정수다. 단정하면서도 힘 있는 디자인부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까지 미국식 고급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유러피언 프리미엄이 바늘 하나 꽂기 힘들 만큼 빈틈이 없는 고급이라면, 아메리칸 프리미엄은 디테일에 빈틈이 살짝 열린 ‘친근한 고급스러움’이다.

그 고급스러움을 품은 공간은 충분히 넓다. 차체 길이가 최대 5,010mm, 휠베이스는 2,965mm다. 공간 그 자체가 주는 고급스러움을 충분히 느낄만한 크기다. 조금 솟아오른 센터 터널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 넓은 차창과 선루프를 통해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차 안으로 스며든다. 통유리로 마감한 실내에서 바깥을 보는 기분이다.

센터패시아에 배치한 10인치 모니터에는 유커넥트 기능이 담겨 있다. 가벼운 터치스크린을 통해 많은 기능들을 조작할 수 있다. 모니터 바깥에도 버튼들은 널려 있다. 어지러운 내 책상처럼, 수많은 버튼들이 여기저기 사방에 흩어져 운전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을 대놓고 비웃고 있다. 화면 속 미로를 헤매지 않고 바로 버튼을 눌러 원샷원킬로 조작할 수 있는 대신 버튼 너무 많아 어지러울 정도다.

그랜드 체로키 오버랜드 트림에 올랐다. V6 3.6 가솔린 엔진이 내는 힘은 286마력, 35.1kgm다. 터보도 마다하고 배기량으로만 만들어내는 자연흡기 엔진이다. 스포츠 모드에서 ‘묵직’하고 ‘굵직’하게 뽑아내는 힘의 질감이 매력 넘친다. 과하지 않다. 운전자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 점점 빨라지는 속도를 느긋하게 즐길 만큼의 힘이다.

힘이 필요하면 엔진 배기량을 늘리는 ‘미국식’이다. 억지스럽지 않은 배기음을 포함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힘을 쓰는 자연흡기 엔진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대배기량의 여유 있는 힘. 그 미국식 엔진이 한국에 오면 세금 걱정을 해야 한다. 배기량에 따라 에누리 없이 내야 하는 자동차 세금 말이다.

스티어링 휠도, 가속감도 적당한 무게감이 있다. 가볍게 휙휙 돌아가는 스티어링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가속페달도 끝까지 아무 저항 없이 밟힌다. 오버랜드 트림 모델은 공차중량 2,190kg으로 마력당 무게가 7.6kg 정도다.

주행 속도와 상황, 도로 상태 등에 따라 차체 높이는 변화한다. 극적으로 높일 수도, 노면에 가깝게 내릴 수도 있다.

도로는 얼었고 때로는 눈도 쌓여있는 길이었지만 그랜드 체로키를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4WD 오토를 택하면 어지간히 험한 길은 우습게 넘어간다. 온로드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륜구동에 힘입어 포장도로 위를 안정된 자세로 달릴 수 있었다. 산속으로 이어지는 사잇길, 수북하게 쌓인 눈 위로 빠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코스를 벗어날 수 없는 단체 시승이었다. 온로드를 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고속도로에서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300마력도 채 안 되는 힘이 숫자로는 아쉬웠지만, 실제로는 부족하지 않았다. 고속까지 치고 나가는 느낌이 좋다. 아주 빠르지는 않았다. 덩치 큰, 2.2톤짜리 SUV가 스포츠카처럼 빠르고 다이내믹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 조금 높은 무게 중심, 넓은 공간이 견딜 정도의 빠르기를 택했다. 에어서스펜션과 네 바퀴 굴림의 뒷받침을 받으며 운전자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서 힘 있게 달렸다. 시속 100km에서 8단 1,500rpm, 3단 5,000rpm을 각각 마크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그랜드 체로키 4xe로 옮겨 앉았다. 서밋 리저브 트림이다. 직렬 4기통 2.0 터보 엔진과 두 개의 모터로 구성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 총 시스템 출력은 272마력으로 모터 출력은 각각 63마력과 145마력이다.

스티어링휠은 무겁고, 달리는 차체의 무게감도 살아있는 주행의 느낌은 앞서 탔던 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인 1조로 시승하는데 후반 두 번째 운전자였으니 제일 마지막에 핸들을 잡았다. 앞선 운전자들이 배터리를 다 써버려 EV 모드를 경험하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회생제동 시스템과 e-세이브 모드 등을 이용해 전기를 차곡차곡 모아서 잠깐 EV 모드를 시도할 수 있었다.

4xe 시스템을 완충하면 EV 모드로 33km를 주행할 수 있다. 봄가을에는 이보다 훨씬 더 멀리, 겨울철 혹한기에는 이보다 조금 덜 달릴 수 있다. 배터리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온도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주행 중에 회생제동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EV 주행거리는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 전기, e세이브 등 3가지의 E-셀렉 모드를 지원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운전할 때 고속도로 등 빠른 속도일 때에는 하이브리드나 e세이브를 택하는 게 좋다. 주행 속도가 낮거나, 정체가 심한 도로에서는 전기모드가 제격이다. 빠른 속도에서는 엔진이, 낮은 속도에서는 모터가 효율이 더 좋아서다.

하이브리드-에코 모드에서는 시속 100km에서도 rpm이 0에 붙은 채로 움직인다.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그게 그랜드 체로키라는 게 영 어색했다. 천하의 그랜드 체로키에 모터를 심더니 이렇게 얌전해지는구나. 스포츠 모드, 시속 100km에서 rpm은 8단에서 2000 근처로 조금 더 올라온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 3단까지는 못 가고 4단 4,000rpm까지 커버한다. 배기량이 적은 2.0 엔진이라 회전수를 조금 더 높여야 시속 100km를 커버하는 것.

매킨토시 스피커는 그랜드 체로키의 품격을 한 층 더 높여주는 아주 좋은 소품이다. 이중 접합 차음유리를 사용해 더 조용해진 실내 공간을 19개 매킨토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섬세한 음향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음악 애호가라면 탐낼만한 오디오다.

4×4 시스템은 트림에 따라 쿼드라-트랙 I 또는 쿼드라-트랙 II를 적용했고, 주행 조건에 따라 5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셀렉-터레인 지형 설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오프로드 주행에서 빛을 발하는 기능인데, 이번 시승은 아쉽게도 온로드 중심이어서 그 성능을 제대로 체험하기 힘들었다. 오버랜드와 써밋 리저브 트림은 전자식 세미-액티브 댐핑 기능이 장착된 지프 쿼드라-리프트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해 주행 안정성을 높였다.

그랜드 체로키에는 110개 이상의 주행 안전 편의 사양들이 적용되어 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보행자 감지 긴급 브레이킹 시스템, 사각지대 및 후방 교행 모니터링 시스템, 풀 스피드 전방 충돌 경고 플러스 시스템, 액티브 레인 매니지먼트 시스템 등을 기본 적용했다.

오버랜드 트림 이상은 360도 서라운드 뷰 카메라와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추가로 적용하고, 최상위 트림인 써밋 리저브는 액티브 드라이빙 어시스트, 파크센스 평행/수직 주차 및 출차 보조 시스템 (브레이킹 포함), 교차로 충돌 방지 보조 시스템, 교통 표지 인식 시스템, 운전자 졸음 감지 시스템, 동물/사람 감지 나이트 비전 카메라 시스템 등을 갖췄다.

가격은 ‘올 뉴 그랜드 체로키’ 리미티드가 8,550만원, 오버랜드가 9,350만원이며, ‘올 뉴 그랜드 체로키 4xe’는 리미티드가 1억320만원, 써밋 리저브가 1억2,120만원이다.

그랜드 체로키는 가장 미국적인 프리미엄 SUV다. 인디언 부족의 이름에서 따온 체로키라는 이름부터 그렇다. 강력한 오프로드 기능은 기본이다. 지프니까. 여기에 온로드에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더했다. 어디까지나 오프로더를 기본으로 만든 차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게 지프니까. 랭글러를 비롯해 그랜드 체로키까지 많은 지프의 모델들이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브랜드의 SUV들과는 확연히 다른 지프의 멋을 알고 이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이 지프의 고객들이다. 지프가 이들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센터패시아에 배치된 버튼들은 도대체 몇 개일까. 미니멀리즘의 추세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아주 많은 버튼들이 빼곡하게 배치됐다. 공간이 부족할 정도다. “이게 어디 있지?” 찾다 보면 원하는 기능의 버튼을 한 번에 누르기가 힘들다. 때로는 운전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 많은 버튼들을 어떻게 정리할지가 다음번 모델 변경의 숙제다. 기대해 본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