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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그랜저 XG, 아무리 회장이 한마디 했다고 말이야….

[유재형의 하이빔 34] 북미 딜러들은 그때 왜 그랬을까?

현대자동차는 최근 그랜저 7세대 모델인 ‘디 올 뉴 그랜저(GN7)’의 디자인을 공개했다.

전장이 5,000mm를 넘는 장대한 모습에 그동안 가는데 모르고 이리저리 헤매던 디자인 방향을 비로소 찾은 듯한 느낌이다. 디, 올, 뉴 … 좋은 말은 다 붙여서 이름 짓느라 고생했겠다.

2016년 6세대 그랜저(IG) 시판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형 그랜저다. 2008년 1세대 제네시스(BH)가 출시되면서 그랜저의 명성 및 가격 포지셔닝이 낮아진 것도 사실이다. 기존 쏘나타 수요층을 흡수해 판매량은 오히려 더 늘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2000년대 초반, 그랜저 XG의 위상은 대단했었다. 현대는 1998년 EF 쏘나타를 내놓으면서 북미 시장에서 실추되었던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있었고 또 다음 해인 1999년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초대형 세단인 에쿠스를 내놓고 고급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끼인 그랜저 XG는 자칫하면 애매한 포지셔닝이 될 수도 있었지만, 초대형 세단으로 판매량에 한계가 있는 에쿠스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현대자동차의 최고급 승용 세단이면서 상품성이 좋아 소비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새 차를 샀을 때 속 안 썩이는 차를 보고 차 잘 뽑았다고 하기도 하는데 정말로 그 당시 그랜저 XG는 현대차 차 중에서도 잘 뽑은 차였다. 그랜저 XG의 후속으로 TG, HG, IG 그랜저가 이어서 나왔지만 지금도 그랜저를 기억하는 소비자 중에서는 그랜저 XG를 손꼽는 사람들이 많다.

각 언론에서 써 내려간 그랜저의 대하드라마를 읽다 보니 뉴 그랜저 XG에서 있었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사건이 문득 떠오른다. 당시 그랜저 XG를 사랑하던 소비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사건이었다.

2002년 3월, 국내는 물론 북미 등 해외시장에서도 호평받고 있던 그랜저 XG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뉴 그랜저 XG’가 출시되었다.

그 전해인 2001년 현대차 연구소의 디자인센터에서는 뉴 그랜저 XG 모델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경영층 품평이 있었다. 그랜저 페이스리프트에서 가장 큰 디자인 변화는 트렁크 리드 부위와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였다.

요즘은 차량 제작 기술의 발달로 페이스리프트라 하더라도 거의 신차에 가깝게 그 변경 폭이 크지만, 그 당시는 페이스리프트라고 해도 차체의 패널을 변경하는 것은 큰 변화에 속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아니면 기존 모델의 성공에 너무 자신감이 있어서였는지 모르지만, 뉴그랜저 XG는 뒤태를 바꾸는 시도를 한다.

트렁크 리드 끝 쪽을 살짝 치켜올렸고 번호판 부착 위치를 차체 하단의 뒷범퍼에서 트렁크 뒷면으로 올렸다. 또,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도 세로의 사다리꼴에서 L자형으로 바꿔 L자의 끝부분이 트렁크 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차폭이 더 넓어 보이게 하려고 그랬다는데.

연구소에서는 두 개의 디자인 안을 최고경영층 품평에 제시했고 정몽구 회장이 차폭이 좀 더 넓어 보이는 안이 좋아서 이 안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당시 뉴 그랜저 XG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디자인이 벤츠 E-CLASS와 유사해 정몽구 회장이 벤츠의 고급이미지를 고려해 정했다는 말도 있다.

L자형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로 시장에서 말이 많아지자 정몽구 회장은 “아무리 내가 한마디 했다고 해서 진짜로 바꾸는 놈들이 어디 있냐?”고 했다는 소문도 있다. 회장이 지시하는데 대놓고 반대를 하는 건 TV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이지 어느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그것도 그 당시 현대차에서 말이다.

미국에서는 달랐다. 뉴 그랜저 XG 디자인 안을 받아본 현대자동차 미국판매법인(HMA)에서는 뉴 그랜저 XG의 디자인이 오히려 개악이라고 하며 그 디자인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쉽게 말해서 구형 그랜저 XG로 그냥 팔겠다는 이야기였다. 회장님이 결정했는데 감히 어느 놈이 반발을? 하고 이야기할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 해외 딜러, 특히 미국 딜러의 파워는 막강했다.

싼타페의 모터쇼 컨셉 디자인이 좋다고 정몽구 회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디자인대로 양산 차로 나오게 할 정도로 미국 딜러의 파워는 막강했고 거대한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엄청나게 차를 팔아주는 그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년 후인 2003년 5월, 현대차는 새로 개발한 뉴 그랜저의 XG의 후면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신형모델의 인수를 거부해온 해외 바이어를 달래기 위해 100억여 원을 투자해 부랴부랴 ‘수출용 뉴 그랜저 XG 신모델’을 따로 내놓았다. 아니 뉴그랜저 XG가 신형인데 신형의 신형이냐!

수출용 뉴 그랜저 XG는 다시 기존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로 돌아갔다. 물론 기존 모델과 똑같이 바뀐 것은 아니고 번호판이 범퍼에 부착되어 단아한 모습을 보이던 후면 트렁크 리드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램프만 기존 디자인으로 환원한 것이었다.

문제는 국내에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새로 개발한 신형 뉴그랜저 XG는 해외시장에만 판매하고 국내시장엔 출시하지 않는다고 밝히자 국내 소비자 및 언론, 자동차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는 국내 소비자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물론 여기에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수출용 뉴 그랜저 XG를 국내에도 출시할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았지만, 해외와 달리 이미 신형을 판매하고 있는 국내시장에 1년 만에 디자인이 원래대로 돌아간 더 신형(?)을 어떻게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된다면 이미 차를 구매한 소비자의 불만은? 설사 그 방법이 옳다고 해도 어떻게 정몽구 회장을 설득할 것이며.

요번에 나온 신형 그랜저가 ‘디 올 뉴 그랜저’라고 했던가. 결국 뉴 그랜저라는 이야기네. 아주 친숙한 이름이다.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XG는 빠졌지만.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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