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를 다녀오다가 휴게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경유 리터당 2,145원. 휘발유는 2,135원. 휘발유가 더 쌌다. 기름을 자주 넣지 않아서 못 느꼈는데 지난 5월 중순, 경유 가격이 14년 만에 휘발유 가격을 제쳤다는 기사가 비로소 몸으로 느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인 2월 초의 리터당 1,400원 정도에 비교하자면 700원 이상이 인상되었으니 무려 50%가 오른 것이다. 평상시처럼 5만 원 주유하니 연료게이지가 반에도 못 미친다. 예전에는 대강 눈금이 2~3시 정도는 가리켰었는데 말이다!
유럽에서는 디젤 가격이 원래 더 비싸다느니, 우리나라는 유류세 때문에 경유가 더 싼 것이라느니 해도 나에게는 어쨌든 경유는 휘발유보다 싸면서 연비는 더 좋은 연료였다.
2011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이집트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중동으로 퍼져나가면서 중동과 아프리카 산유국들의 정세 불안 및 공급 차질이 계속되어 2012년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12달러로 정점을 찍었었다. 우리나라의 유가도 그해 휘발유 리터당 1,955원, 경유 1,805원으로 신기록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그 원인이야 어쨌든 휘발유, 경유 모두 리터당 2,000원을 훌쩍 넘고도 계속 기록을 갱신 중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형상용차를 제외하고는 디젤연료를 사용하는 차들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건 불을 보듯 하다. 아니 이미 2015년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디젤 차량의 감소추세에 불을 붙이고 기름을 끼얹는다고 해야 하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어 국제원유공급이 안정화되고 유가가 정상화된다 해도 이미 방향을 튼 디젤 차량의 급격한 감소추세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2016년 있었던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때문이니 뭐니 하고 말하지만 결국 디젤차의 감소 원인은 갈수록 강화되는 환경규제 때문이다. 국내에 2015년부터 적용된 유로6은 일반 승용차 운전자들에게 생소한 요소수라는 것을 알게 하고 그 요소수 공급부족으로 인한 불편을 겪게도 했다. 기름이 없어서 차가 운행을 못하는 건 이해해도 요소수가 없어서 운행을 못 한다니 아마 고개를 갸웃한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2018년부터 시행된 “국제표준 배출가스 시험(WLTP)” 제도로 인해 현대자동차는 2018년, 엑센트, 쏘나타, 그랜저 등 디젤 승용차를 단종했다. 2020년에는 소형 SUV인 코나까지 디젤엔진을 삭제했다. 2020년 까지만 해도 디젤 비중이 66%였던 싼타페는 2021년 들어 가솔린모델 비중이 디젤을 앞섰다. 투싼은 이미 2020년에 휘발유가 디젤을 넘어섰다.
쏘나타, 그랜저 디젤 단종 이후 마지막 남은 승용 디젤 모델인 제네시스의 G70과 G80 디젤 모델도 작년 말 단종됨으로써 국내 세단 중 디젤 모델은 모두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국내의 자동차 소비자 중에는 평생 차를 여러 번 바꾸면서도 디젤, 특히 디젤 승용차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2000년 싼타페 출시 이후 그야말로 급속도로 늘어나는 디젤엔진 수요를 보고(물론 SUV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2006년 회사의 대표모델인 쏘나타(NF쏘나타)에 2,000CC VGT 디젤엔진을 탑재한 “쏘나타 VGT”를 출시했다.
2,000CC 가솔린모델보다 300만 원 정도 높은 가격으로 출시된 쏘나타 디젤은 엔진성능이 부족하고 연비 또한 기대한 만큼 좋지 못해 가솔린 모델대비 차별화에 실패했다. 또 판매량이 적어 중고 시장에서도 인기가 없다보니 가솔린모델보다 300만 원 비싸게 산 차가 중고로 팔 때는 가솔린모델보다도 가격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같이 근무하던 과장이 쏘나타 디젤을 팔고 나서 배 아파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싼타페 디젤이 출시되던 2000년 초반, 국내 가솔린/디젤 가격은 1,300원/700원 정도로 그야말로 디젤의 전성기를 누렸다. 연비도 좋으니 경제성은 2배라고 해도 좋았다. 비록 이후 정부의 에너지세제 개편안 발표로 가솔린/디젤 가격의 비율이 100/85로 축소되어 쏘나타 디젤이 출시된 2006년경에는 1,500원/1,200원 수준으로 그 효과가 반감되기는 했지만, 경제적 이유보다는 디젤 승용차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부족과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상품성이 판매부진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쏘나타 디젤을 개발하면서 수없이 많은 시승을 했지만, 승용차 소비자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디젤차의 진동이나 소음을 허용하고 이해할는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연구소에서도 유럽 차 승용 디젤의 소음 진동을 개발기준으로 삼았지만, 과연 우리 소비자가 디젤 승용에 익숙한 유럽 소비자 수준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쏘나타 디젤을 개발하던 당시 유럽 모터쇼에 가서 연구소 직원과 함께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덜덜거리는 고물 디젤 택시였지만 그래도 벤츠였다. 덜덜거리는 수준은 거의 달구지 수준이었다고 할까. 소음은 실내에서 대화가 힘들 정도였다. 또 현지 직원이 렌트한 디젤 승용차도 진동이나 소음이 만만치 않아서 이에 비하면 쏘나타 디젤이 훌륭한 차라고 착각한 경우도 있었다.
쏘나타 디젤을 출시한 후 연구소에서는 그랜저를 가지고도 디젤 모델을 개발하려고 검토 중이었다. 이때는 쏘나타 디젤이 출시되어 시장에서 별다른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던 때라 상품팀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을 요구했고, 몇 번이고 시험 차를 만들어 시승했지만, 시장에 내놓을 수준이라고는 볼 수 없어 프로젝트가 더 이상 진행되지는 못했다.
쏘나타는 그 후, 7세대 LF쏘나타에 7단 DCT에 U2 1.7엔진을 탑재한 디젤 모델을 다시 내놓는다. 이때 내놓은 디젤 모델이 비로소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i40 왜건을 그 이전에 2년간 탄 적이 있었는데 정숙하면서도 정속주행 시 연비가 20 이상 나올 정도로 경제성도 뛰어나 LF쏘나타 디젤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타는 차도 1.7 디젤이다.
NF쏘나타 디젤이 나온 2006년과 LF쏘나타 디젤이 나온 2015년 사이의 10년동안 현대자동차의 디젤 승용차 제작 기술은 상당한 도약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디젤 승용 기술의 발전으로 현대자동차는 2014년, HG 그랜저를 보강한 ‘2015년형 그랜저’를 출시하면서 R2.2 엔진을 탑재한 디젤 모델을 그랜저에도 추가하고 후속인 IG 그랜저까지 이어진다.
SUV보다 더 엄격한 소비자의 수준에 맞는 디젤 승용차 개발 능력을 갖춘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디젤 승용차들을 단종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아까운 일이다. 유럽의 전통 디젤 메이커들이야 사골뼈 우려먹듯이 했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EU의 유럽의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유공급 차질과 가격폭등으로 인해 유럽의 탈탄소 속도 조절과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자동차 배출 이산화탄소량 규제 상한치를 앞당겨 시행하자는 법안을 모두 부결시켰다고 한다. 혹시 자동차 회사들에게 급진적으로 강요되어온 자동차 탄소중립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건 아닐까?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오는 7월 발표할 신규 자동차 배출가스 관련 규제, 유로 7도 숨 고르기 할 여유가 생기는 건 아닐까?
꼭 디젤 승용차를 되살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