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 10만 대를 넘겼다. 2020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10만 439대를 기록했다.
우리보다 앞서 미국,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이 2020년에 전기차 신규 등록 10만 대를 돌파했고 2021년에는 노르웨이가 합류했다.
국내 전기차 판매 상황을 보면, 현대차가 아이오닉 5의 판매 신장에 힘입어 점유율 44%로 1위를 차지했고, 기아, 테슬라 순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기아의 1t 트럭인 포터/봉고의 전기 모델이 신규 등록 10만 대 중 무려 26,000대, 즉 26%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작년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한시적으로 전기차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대폭적인 보조금(국비+지방비) 혜택에 더해 화물차 총량제로 인한 영업용 번호판 신규 발급을 금지하는 운수 사업법을 개정해 영업용 번호판을 자유롭게 부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 4월에 그 혜택이 종료한다고 해 수많은 포터/봉고 전기차 미출고 고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처럼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정부에서는 혜택을 주고 있지만, 한전에서는 가뜩이나 적자인데 전기차 전기료 할인 혜택으로 적자가 더 심해진다는 이유로 전기차 충전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다행인지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서 향후 5년간 충전요금을 동결하겠다고 공약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전기차 17종을 출시하여 전기차 판매 비중을 10년 만에 현재 4% 수준에서 36%까지 10배 가까이 대폭 늘리겠다는 ‘중장기 전동화 가속화’전략을 최근 발표했다. 2020년 말 전기차 중장기 전략을 발표한 지 1년 만에 기존의 전략을 대폭 강화한 ‘가속화’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원래 2040년을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의 전 라인업 전동화 시점으로 목표했던 현대차가 이렇게 전동화를 ‘가속화’하겠다고 한데는 작년 7월 EU 집행위원회가 기후변화에 대응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규모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을 제안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제안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2035년부터 EU내 신규 가솔린. 디젤 등 내연기관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내연기관차의 규제는 CO2 배출기준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번 EU의 제안은 2030년부터 신규 차량의 CO2 배출을 2021년 대비 55% 줄이고 2035년부터는 100% 줄이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2035년부터 등록되는 모든 신차의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EU 회원국 내에서의 내연기관 차량 판매금지를 의미한다.
물론 EU 집행위원회의 제안이 현실화되려면 EU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협의와 승인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결국 EU 회원국들은 기존의 중장기 내연기관 퇴출 전략(=전기차 전략)을 5~10년씩은 앞당기는 것이 불가피하고 현대차의 이번 ‘가속화’발표도 같은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탈탄소, 탄소 제로화가 목적이라면 유로 배기 규제는 탈탄소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마치 건강한 금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담뱃값을 대폭 올리고 흡연구역을 점차 없애는 것과 같다고 할까. 하지만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선도적으로 탈탄소를 주장하는 유럽도 스스로 딜레마에 빠져있다.
자동차 제작사들은 배출가스 규제와 충돌 안전 법규를 만족하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 배출가스 규제와 충돌 안전 법규는 나라마다 일부 다르지만 그 기준이 되는 법규가 1992년부터 유럽연합에서 시행하고 있는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Euro,Euro emission standards)와 미국 고속도로 안전을 위한 보험협회(IIHS)가 실시하는 충돌안전 테스트다.
날이 갈수록 강화되는 이 법규들로 인해 차는 엄청 좋아지고 환경 보호 효과도 커지는 한편으로는 법규에 맞추기 위해서 차를 만드는 과정의 어려움, 엄청난 투자비, 재료비 상승 등으로 판매가격이 높아져 소비자 불만이 커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유로1~유로6까지 지속해서 강화되어온 배출가스 규제기준에 볼보는 디젤 엔진 개발을 포기하고 전동화 전략에 매진하기도 했다.
2014년부터 발효된 유로6 규제를 만족했다는 폭스바겐이 1.6, 2.0 승용디젤 엔진의 배출가스 조작으로 온 세상을 뒤흔들고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었던 사건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디젤엔진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 폭스바겐은 선생님 같은 존재였는데 그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고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랬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자동차 업계는 빠르면 2025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사실상 내연기관 자동차의 마지막 규제등급이 될 유로7의 규제수준과 테스트 조건 등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귀를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EU 위원회 산하 AGVES(차량 배기가스 자문그룹)와 컨소시엄인 CLOVE에서 나올 유로7 초안의 내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폭스바겐을 비롯한 여러 내연기관차 생산 메이커들은 유로7을 ‘내연기관의 종말’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서 유로7 규제를 연기하거나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투어 엔진 개발을 포기하고 전동화를 더욱 강화하고 앞당기겠다고 발표하고 있어 마치 내연기관차가 우리 곁에서 곧 사라질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물질의 공급상황에 따라 그 타입이 NCA(니켈코발트 알루미늄 산화물)에서 LFP(리튬 인산철)로 바뀌는 등 시장변화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실정이다. 당장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산 니켈의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또, 전기차를 운행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후진국의 경우 상당한 기간 동안 내연기관 자동차 운행이 불가피한데 유로7 법규에 대응하기 위해 내연기관 차량 가격이 대폭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런 지역 운행차량의 대다수인 소형차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해 질 것으로 보고 있다. 쏘나타 가격의 아반떼를 타야 한다는 것.
이런 상황아래 폭스바겐은 가까운 미래는 기존의 내연기관을 개선하여 대응하고 먼 미래는 전동화로 대응한다는 전략까지 발표했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자동차 회사들은 2025년 이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전기차를 내놓을 준비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판매의 50~70% 비중을 차지하며 실질적인 수익원인 내연기관 자동차를 계속 팔 수 있도록 준비(유로7 대응)도 해야 하는 상황에 있으며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있다.
그놈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유가가 2천 원을 넘는 사태가 발생하자 더욱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하지만 자동차 영업소에 가서 계약하면 언제나 차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고는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마는 상황이니 분위기만 좋다가 말았다고 할 수밖에.
어쨌든 2025년 전에 무슨 대책이 나와도 나오지 않겠는가.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