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가 출시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디지털 사이드미러’는 아웃사이드 미러를 카메라와 모니터로 대체해 사각지대를 줄인 것으로 전기차의 첨단 느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포니의 이미지를 계승했다는 디자인은 파격이다. 전기차니까 가능한 디자인이다.
금이 간 듯 쪼개진 옆구리 디자인은 신형 투싼이 진작에 보여줘서 다행이다. 20년 전 싼타페가 처음 나왔을 때 소비자들이 느꼈을 느낌이 이해가 간다. “이차는 새 차라는데 무슨 옆구리를 들이 받혔나?” 하던 느낌 말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니, 국고 보조금 반영하면 얼마니 해도 이미 사전계약 1시간 만에 1만 8,000대를 돌파했다니 얼리 어답터들께서는 이미 계약을 했을 것이고 결국 또 생산량이 문제가 되겠다.
본격 전기차 플랫폼을 도입한 아이오닉5는 현대차가 전기차 시장에 던지는 출사표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1900년대 초로부터 약 120년, 국내에서 자동차를 양산하기 시작한 70년대부터로는 약 50년이 지나 이제 새로운 자동차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나 보다.
전기차 하면 테슬라, 테슬라하면 전기차를 떠올리듯이 테슬라는 120년이 넘는 자동시장에서 불과 20년 남짓한 세월에 시가총액이 토요타를 제치고 자동차 업계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미미하나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테슬라의 미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치솟는 주가가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테슬라를 압박하는 경쟁자들도 늘어가고 있다. GM이 최근 쉐보레 볼트의 SUV 버전을 내놓고 포드는 2026년 중반까지 유럽 내 모든 승용차를 전기차로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이오닉 5의 등장도 의미가 크다. 그 밖의 메이커들도 그간 컨셉트 개념으로 개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양산을 시작할 것이다. 테슬라를 향한 압박 강도가 점차 더해갈 것임을 알리는 조짐들이다.
기존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변환해 생산하는 것과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생산하는 것과는 생산단가나 공정 등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현대를 포함한 테슬라 경쟁자들의 실력은 빠른 시일 내에 향상될 것이다.
각 메이커가 전기차 판매를 늘려가는 것은 시장 점유율 확대라는 측면도 있지만, 내연기관차를 판매함으로써, 반대로 말하면 환경차를 팔지 못함으로써 물어야 했던 엄청난 벌금을 안 내도 된다는 이야기이며 테슬라 입장에서는 반대로 차 팔아서는 적자였지만 전기차 팔아 획득한 탄소배출권을 팔아 거두어들이던 이익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된다.
게다가 그동안 배짱부리며 고가격으로 판매하던 테슬라도 최근 모델 Y의 저가 버전과 모델 3의 가격을 2,000달러씩 내린 것처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등 이런저런 요인들이 테슬라의 목줄을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등 테슬라의 장점은 많지만 자동차는 안방에 모셔두고 보는 전자제품이 아니다. 이런저런 상황의 길을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내구제 이기에 내구성을 무시할 수 없다.
만일 시장을 독점하는 제품이라면 고장이 나도, A/S가 시원찮아도 그저 팔아만 주시고 사용하게만 해주셔도 감사히 여기고 설사 고장이 나도 A/S만 해주시면 몇 달을 기다려도 감지덕지하겠지만 여기저기 경쟁자가 나오는 상황이 되면 하루아침에 입장은 바뀌게 된다.
컨슈머 리포트 등 유수의 언론은 테슬라의 문제점 및 품질평가 등수를 낮추는 요인으로 서스펜션 문제라든가 도장 문제 등을 지적하곤 했다. 이런 면에서는 기존의 제작사들이 아무래도 오랜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의 내구성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이 구글이나 애플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천재 엔지니어를 모셔오면 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의 내구성은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하고 연구하고 투자한 결과다. 설사 벤츠의 서스펜션 전문가를 연봉 10배 주고 모셔온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고가의 모델이야 첨단 전자 장비와 고급부품을 사용해서 해결한다고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다 고가모델을 구입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벤츠 S클래스의 승차감이 중요한 게 아니고 아반떼나 쏘나타를 타지만 그런대로 만족할만한 승차감과 내구성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기존의 내연기관보다 더욱 규모의 경제를 필요로 하기때문에 여러 메이커가 배터리등의 부품 공유를 통해 단가를 대폭 낮추기 위한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한 메이커들은 그야말로 경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가 될 수도 있겠다.
폭스바겐이나 GM, 토요타와 같이 덩치가 큰 메이커라고 예외일 수 없다. 차라리 특별한 소량의 슈퍼카 만드는 회사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현대자동차도 새로운 자동차 만들기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경쟁자들과 힘을 합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각 메이커의 독특함은 차보다는 차와 연관된 사업에서 나타나게 될 수도 있다.
결국 2000년대 초 자동차 업계에 떠돌던 조만간에 세계에 자동차 메이커가 5개만 남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현실화될지도 모르겠다. 시장 악화나 재정 능력이 떨어져서 힘 있는 회사에 흡수되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1 + 1 = 2가 아닌 3, 4가 되기 위한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다. 제작사는 비록 5개라도 브랜드는 각자의 특성을 살려 여러 개가 될 수도 있겠다. 모든 컴퓨터에 Intel Inside라고 붙어있던 것처럼.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 난다.
2007년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개발하던 시절, 본격 양산용으로 개발하는 최초의 하이브리드였기에 회사 안팎으로 관심이 높았지만 하이브리드라면 누구나 기대하는 그런 빵빵(?)한 연비가 안나와 연구를 담당한 파워트레인 연구소는 골머리가 아팠다.
잘못 내놨다가는 회사 망신에 연구소도 폭풍을 면치 못할 상황이라 어떻게 하면 연비를 좋게 할까 고민하다 대안으로 연료값이 싼 LPG 연료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돌아보면 연비향상이라기 보다는 연료 가격이 낮은 연료를 사용한다는 장점을 활용한 그야말로 한국형 억지(?) 하이브리드였던 것 같다. 그 당시 개발하느라 수고하셨던 동료 선후배들께는 죄송한 얘기다.
그런 현대자동차가 불과 13년이 흘러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본격 전기차를 내놓았다. 어쩌면 어느 제작사에게나 전기차는 그 개발역사가 비교적 짧아 현대자동차도 크게 뒤지지 않고 보폭을 맞추는 것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고성능의 내연기관 엔진을 개발했다면 어쩌면 더 불가능 했을 수도 있었겠다.
2007년 아이폰이 처음 이 세상에 나온 지 15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상을 바꾼 것처럼 전기차 또한 앞으로 10년, 20년 내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전기차는 자동차의 생태계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동반하는 자율주행 기술 등 엄청난 부가 기술과 서비스 기능으로 인해 우리의 삶을 아이폰보다 더 다이내믹하게 바꾸게 될 것이다.
아! 애닯다. 내 생애 등짝을 스매싱하는 내연기관 V8 엔진의 웅장한 굉음은 이제 스피커를 통해서나 즐길 수 있겠구나! 인위적으로 만든 가상의 사운드로 말이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