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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형의 하이빔] 7. “소비자가 그것도 모를까 봐?”-싼타페 개발 뒷담화

싼타페를 처음 출시했던 당시의 자료를 검색해 보던 중 문득 그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나서 “사륜구동 견인라벨”이라고 검색을 했더니 견인에 관한 자료보다 라벨을 판매하는 사진과 자료가 화면에 꽉 차온다. 호기심에 모비스의 부품 판매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사륜구동 견인스티커 토잉라벨 3,000원”. 이게 정확한 명칭인가 보다.

싼타페가 처음 세상에 나오던 해, 막바지 출시를 앞두고 각 부문에서 이것저것 최종 점검을 하던 중에 싼타페의 기술자료를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싼타페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평시에는 싼타페의 기본인 전륜으로 구동력이 전달되지만 노면 상황에 따라 뒷바퀴의 미끄러짐을 감지해 앞바퀴로만 가던 동력을 트랜스퍼기어를 통해 뒷바퀴로도 가변적으로 배분해주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아마도 역시 이 친구는 갤로퍼나 테라칸 같은 파트타임,즉 필요시에만 트랜스퍼기어나 버튼을 조작해 사륜구동으로 전환하는 차만 만들던 사람이라 싼타페와 같은 첨단(!) 시스템은 처음 접하는구나 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건 아니었고 상시 사륜구동이라는 것이 내가 임의로 동력을 사륜으로 보냈다가 이륜으로 보냈다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술 자료상에는 평시에는 전륜에 100%, 후륜에는 0%로 동력이 배분되다가 도로 조건이 바뀌면 최대 전후 50:50까지 구동력 배분 비율이 바뀐다고 하지만 이론일 뿐이고 구동력 전달계통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네 바퀴와 변속기와 엔진은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차량을 견인하는 방법에 관한 의문이었다. 싼타페와 같은 타입의 사륜구동차는 어떻게 견인을 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물음으로 수개월간의 논쟁과 반박이 시작되었다. 연구소에 모여 회의를 하기 전에 정비 등을 통해 차량견인과 관련한 문제점들을 들어봤다. 현대자동차의 차는 물론이고 수입차의 경우까지도.

정비 파트에서 당시 소비자보호원에 불법주차 차량 견인 관련해서 문제가 되었던 상황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견인 기사가 아우디 A6 콰트로를 일반차량처럼 차량의 바퀴 한쪽만(아마 그 당시 수입차는 대부분 후륜구동이라 후륜 쪽을 견인했을 듯)을 견인해서 발생한 문제였다. 견인된 차는 사륜으로 동력을 전달하는 트랜스퍼 케이스부터 변속기까지 심하게 손상이 되어 수리비만 2,000만 원인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차주는 불법주차 벌금은 내겠지만 차량 손상은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는 이야기였고 견인 기사 측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고 만일 자기 차가 상시 네 바퀴에 동력이 전달되기 때문에 네 바퀴를 모두 들어올려(요즘은 ‘어부바’라고 한단다)견인해야 하는 차량이라면 어딘가에 경고 표시를 하던가 해야 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Quattro라고는 쓰여 있었을 텐데) 그 당시 아우디 가격이 얼마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쉽게 해결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비 기사에게 물어보니 전문 견인 기사 중에는 수입차 같은 경우는 차 아래를 들여다보면 소**처럼 둥그런 데후(디퍼런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특수한 차를 이용한다고 알려줬다.

연구소에서 관련 회의를 하려고 했으나 연구소에서는 회의도 필요 없이 싼타페는 사륜이지만 평상시에는 전륜에 동력이 100% 전달되고 시동을 끈 상태면 더욱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차가 견인을 할 때는 시동을 끄는 것은 당연하고 아우디 같은 차가 견인시 문제가 되는 것은 노면에 닿은 바퀴가 돌면 거꾸로 디퍼런셜을 통해 트랜스퍼 케이스로, 최종적으로는 변속기를 거쳐 엔진까지 회전하게 되기 때문에 오일이 흐르지 않는 상태에서 이런 동력전달 계통이 회전하게 되면 과열이 되고 손상이 간다는데. 이런 일이 싼타페에는 없다는 것이다.

연구소 내에서도 싼타페 사륜의 동력 배분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실제로는 완전히 100:0은 아니라는 이야기부터 작은 동력 배분은 무시해도 될 정도라는 이야기까지.

회사 내에서도 SUV는 처음일 뿐 아니라 사륜구동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었다. 모비스(당시는 현대정공)에서 파워트레인을 담당했던 직원들도 갤로퍼나 테라칸의
파트타임 사륜구동 시스템만 알았지 싼타페같이 그야말로 자기가 알아서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은 접해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북미연구소 등에 자료협조를 구해 알아본 결과 아직 싼타페와 같은 사륜구동 타입이 많지는 않지만 만일의 문제에 대비해서 글래스나 차량 도어내측등에 견인시 사륜을 모두 들어야 한다는 경고문을 부착한다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전달하면서 우리도 만약을 대비해 견인시 주의 라벨을 부착하자고 설계 사양을 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지만, 연구소에서는 완강히 불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심지어는 차의 후면에 4WD라는 엠블럼이 손바닥만 하게 붙는데 그것도 못 읽는 기사가 있겠느냐고 반박을 해왔다. 요즘 견인 기사들은 다 안다는 이야기부터(아는 기사가 2,000만 원을 물어주는 시대인데) 요즘 소비자가 그런 것도 모르냐는 이야기까지(차를 세워 놓고 가면 본인은 알고있어도 소용이….)

밀고 당기다가 포기할 즈음, 런칭을 앞두고 경영층 앞에서 각 부문이 모여 문제점이나 건의 사항을 토론하는 회의가 있어 애로사항을 이야기했더니 바로 적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회의 결과를 알고 연구소에서는 노발대발 난리였다.

알고보니 스티커를 부착하기로 결정이 나면 원가가 올라가고(그 당시 원가 300원?) 설계 사양이 나와 신뢰도, 내구테스트 등을 마치면 생산개시 시점에 맞추지를 못하게 되고 그럴 경우 해당 부서에서 경위서를 쓰는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초기 출고 차량은 스티커가 공급되지 못해 생산라인에서 스티커를 부착하지 못하고 출고가 되어 전국의 전시차는 물론 일부 초기 출고가 된 차량의 경우는 카마스터가 고객을 찾아가서 부착해주기까지 했다.
싼타페 사륜을 두 바퀴만 들고 견인하면 어떻게 될까?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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