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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형의 하이빔] 6. ‘파격’ 싼타페는 이렇게 개발됐다.

-개발 실무자가 말하는 싼타페 탄생 비화

2000년 6월 첫선을 보인 이후 20년이 훌쩍 지나 벌써 4세대가 되었고 곧 페이스리프트가 예정된 차가 있다. 현대차의 싼타페다. 싼타페 1세대는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당시 현대차 상품팀의 RV 워킹그룹을 담당했던 실무자로서 그 당시 엎치락뒤치락하던 상황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의 모든 차는 울산연구소에서 개발을 진행했다. 디자인, 품평을 거쳐 모델이 고정되고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실무자로서 참가했다.

현대차의 연구소가 국내뿐 아니라 북미, 유럽에도 있었기 때문에 현지 디자인센터에서도 디자인을 하고 품평모델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는 양산보다는 현지 소비자 니즈를 조사하고 미래를 위한 디자인의 방향성 등을 검토하기 위한 그야말로 스터디용 디자인이었다. 국내에서는 해외 디자인센터에서는 무슨 디자인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1999년 초, 북미 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하고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소형 SUV 콘셉트인 HCD-4가 매우 호평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북미의 무지막지한 풀사이즈 SUV(소형트럭이라 하는 게 더 나은)에 비해 토요타의 RAV4니 혼다의 CR-V니 하는 모노코크에 승용 감각의 귀여운 소형 SUV가 있었지만 그래도 HCD-4처럼 황당한(?) 디자인은 아니었다.

지금은 북경현대차에 근무 중인 후배 배** 부장이 그 당시 RV 워킹그룹의 SUV 담당이었는데 같이 사진을 보면서 무슨 차가 이렇게 생겼나? 하고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통상적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콘셉트디자인과 양산모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상식이었다. 실제 제작상의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콘셉트 디자인에서 제시된 캐릭터 라인이나 프로포션(비율)을 참조하는 것이지 그 디자인을 그대로 양산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북미연구소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HCD-4를 본 자동차산업 관계자들과 북미의 현대차 딜러들이 디자인을 극찬하면서 이대로 양산차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북미의 딜러들은 현대차에 SUV가 없었기 때문에도 열렬히 HCD-4의 양산을 원했을 것이다. 미국 자동차 딜러 전시장에 SUV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비중 있는 의견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상품전략본부와 연구소, 당연히 최종적으로는 정몽구 회장에게도 보고가 되었다. 현대정공 시절 갤로퍼를 국내시장에 내놓아 오랫동안 SUV의 교과서였던 쌍용을 제치고 기록적인 판매를 달성했던 정몽구 회장은 이미 SUV의 달인이었고 감히 그 앞에서 SUV에 대해 논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 정몽구 회장 앞에서 지금 눈앞에 놓인 이 HCD-4라는 차에 대해 뭐라고 설명을 했을까? 모름지기 SUV란 든든한 프레임에 얹은 각지고 강인한 차체에 높은 시트 포지션으로 앞에 가는 차들을 내려다보는 것이 제맛인데 HCD-4는 승용차같이 연약한(?) 모노코크바디에 차고도 승용차와 별반 다를 것 없고 옆구리를 들이받혔는지 푹 들어간 보디가 도대체 무슨 디자인이라는 것인지.

승용차도 SUV도 MPV도 아닌 것 같은 차를 콘셉트 그대로 양산하자고 한다고 하니 정몽구 회장의 마음속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정 회장은 엄청 화를 내면서 반대했다고 한다. 통상 이렇게 되면 그 모델은 다시 볼 일은 없고 언급하지도 않는 게 상식이다. 어느 기업에서 회장이 그렇게 노발대발하면서 반대를 했던 일을 다시 언급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 (영화에서는 회장 앞에서 당당히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그러나 북미의 딜러들과 자동차 전문가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계속 요구했다고 한다. 북미에서 빅 딜러는 그 자동차 회사의 회장에게도 당당히 요구할 만큼 영향력을 가진 그 동네 재력가이면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SUV 라인업도 없이 차 많이 팔아달라는 현대차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입장이었을 것이다.

정몽구 회장은 당시 현대차의 회장이 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그동안 품질 문제와 판매 부진으로 고전해왔던 북미 시장에 야심작인 EF쏘나타를 내놓으면서 현대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딜러들과 시장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HCD-4는 양산을 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SM”이라는 프로젝트명도 정해졌다.
디트로이트에 전시했던 HCD-4를 국내로 들여와 1999년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서울국제모터쇼에 전시하기도 했다.

양산 일정이 2000년 6월로 정해졌고, 하나하나 양산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었는데 엔진 문제가 불거졌다.

SM의 엔진은 2.0 가솔린, 2.0 커먼레일 디젤, 2.7 V6 가솔린이었는데 가장 핵심인 디젤엔진이 빨라야 2000년 연말에나 양산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경영층에서는 현대정신(?)으로 6월 양산 일정에 맞추라고 했지만 커먼레일 디젤엔진은 현대에서 처음 적용해보는 엔진으로 기존의 디젤엔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초고압의 연료펌프와 정밀을 요하는 부품들이 적용되다 보니 쉽게 일정을 단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양산 시점을 연말이나 해를 넘겨 연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목이 날아가는 상황을 각오하고) 그러나 국내양산을 늦추게 되면 결국 북미 등 수출 일정도 그만큼 늦어지게 되고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북미 딜러들의 출시 일정도 불투명해진다.

여러 차례 논의가 계속되었고 일단 가솔린 엔진만으로 발매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상식적인 대안이었지만 시장을 고려한다면 무의미한 전략이었다. 당시 국내 SUV 시장에서 가솔린 엔진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솔린 엔진만으로 출시한다는 것은 신차 출시와 동시에 개점 휴업을 하자는 말과 다름없었다. 심지어 어떤 메이커는 가솔린 SUV 모델을 운영하다가 가격표에서 삭제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신차를 발매하게 되면 전국적인 판매, A/S 준비를 비롯해서 광고, 마케팅 등 천문학적인 비용과 노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새 모델을 내놓고 바로 개점 휴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와중에 LPG 엔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정공 시절 싼타모와 갤로퍼 9인승에 LPG 엔진을 적용해 거의 무너져가던 차량 사업을 회생시킨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강력한 토크와 오프로드 주행성능을 SUV의 특성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LPG 엔진이라니. SUV 택시를 만들자는 이야기인가?

문제는 또 있었다. LPG 엔진이야 그 당시 얼마 전에 출시한 MPV인 트라제에도 적용 중이니 엔진이나 LPG 시스템 기술이야 그렇다 쳐도 자동차 관리법상 LPG 엔진을 적용하려면 7인승 이상의 승합차여야 했는데 싼타페는 당연히 5인승이었다. 2열까지만 있는 차에 3열을 만들어서 2명이 더 타게 해야 7인승이 된다.
LPG 봄베도 탑재해야 하고, 봄베가 간섭이 되어 후륜으로 동력을 전달 못 하니 사륜구동은 포기하고…….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니 생산을 총괄한 본부장은 안 된다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되는 이야기만 하라고 할 정도였다.

7인승 승합을 만들어 자동차세 등 세금혜택을 노린 무쏘 7인승의 3열 시트를 참고해 뒤를 보고 앉아서 가는 시트를 적용했다. 스페어타이어는 템퍼러리를 적용해 차체 하부에 매달았다. (무쏘는 풀사이즈 스페어타이어를 실내에 3열 시트 측면에 장착했다. 사람 두 명하고 타이어 하나까지 셋이 나란히 앉아서 갔다.)
이 멀미 나는 황당한 3열 시트는 2세대인 CM 싼타페부터 비로소 앞을 보고 앉게 되었다.

긴급히 울산연구소에서 시작차를 만들어 검토에 들어갔다. 그렇게 2000년 6월에 발매했고 SUV 시장을 흔들었다. 국내의 경우 발매 이후 4년 연속 국내 SUV 판매 1위. 2004년에는 국내 전차종 중에서 판매 대수가 가장 많은 차였다. 69,000대!
지금 이야기가 아니다. 16년 전의 이야기다.

발매를 얼마 앞두고 고위층에 신차 진행보고를 하러 갔다. 제원, 사양, 파워트레인, 성능, 목표 판매가격 등을 설명 드리고 나오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아무래도 가솔린이 조용하고 힘이 있어서 많이 팔리겠죠?”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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