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지?
연비테스트를 마무리하며 당황스러웠다. 엔진 연비 32.2 km/L, 모터 연비 10.1km/kWh였다. 엔진 공인 복합 연비 10.3km/L보다 3배, 모터 공인 복합 연비 2.5km/kWh보다는 네 배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연비다.
파주-서울을 달린 전체 주행 거리 55km, 배터리 기반의 모터 구동이 37km임을 계기판이 말해주고 있었다. 출발할 때 체크한 배터리 잔량은 60%였다.
1회 충전 주행 거리 31km로 인증받았다. 유럽 인증은 50km다. 잔량 60%의 배터리라면 18km가량 달릴 수 있을 뿐인데 37km나 달렸다. 18km를 달린 지점에서 배터리는 25%나 남아 있었다. 35%로 18km를 달린 셈이다. 물론 주행 도중 회생 제동, 엔진을 통한 충전 등도 감안해야 하지만 기대 이상의 효율이다. 계기판의 숫자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지만 보고 있어도, 믿기 힘든 연비였다.
벤츠 더 뉴 300e 익스클루시브 얘기다.
친환경 자동차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더 뉴 300e 익스클루시브는 벤츠 E 클래스의 첫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이다. 벤츠 3세대 PHEV 시스템을 적용한 친환경 자동차다.
보닛 위의 별, 크롬 라인을 가로로 구성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익스클루시브 트림의 특징이다. 점잖고 고전적인 멋을 풍긴다.
그 안에는 2.0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 그리고 리튬이온 배터리로 구성된 파워 트레인이 있다. 엔진은 211마력, 모터는 120마력, 총 시스템 출력은 320마력의 힘을 낸다. 13.5kWh 리튬이온 배터리, 90kW의 모터를 갖췄다. E모드로 시속 130km까지 달릴 수 있다.
연비는 엔진 연비와 모터 연비를 따로 표기했다. 엔진은 10.3km/L, 모터는 2.5km/kWh다.
시승차는 2019년 11월에 출시한 더 뉴 300e 익스클루시브로 판매가격은 7,850만 원이다. 이후 출시한 2020년형 모델은 일부 옵션을 보강해 8,410만 원이다.
실내가 환하다. 베이지 컬러의 나파 가죽시트에 짙은 청색 가죽으로 대시보드를 마감했다. 푸른 빛이 도는 인테리어 컬러가 독특하다. 가죽과 원목, 금속 재질로 충분히 고급스러운 실내는 연출하고 있다.
근거리 무선통신(NFC)을 이용해 스마트폰과 연결한다. 가볍게 터치하면 기기를 인식해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연결된다. 부메스터 오디오는 입체감 있는 소리로 실내를 꽉 채운다. 스피커의 울림을 몸이 느낀다.
스티어링 휠은 2.2 회전, 약간의 유격을 무시하면 2회전 한다. 길이 4,925mm, 너비 1,850mm, 높이 1,460mm의 덩치를 비교적 타이트한 조향비로 커버한다.
시동 걸릴 때 안전띠가 몸을 한번 잡았다 놓아준다. 차와의 교감, 가벼운 포옹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주행모드와 별도로 파워트레인의 구동 모드를 택해야 한다. 하이브리드, E모드, E 세이브, 충전 모드다. 하이브리드는 엔진과 모터를 함께 사용한다. E모드는 전기모터로 움직인다. E 세이브는 전기 절약 모드로 배터리 사용을 제한하고 엔진으로 주행한다. 충전 모드는 전기모터 사용을 제한하고 엔진을 돌려 배터리를 충전한다.
여기에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에코, 컴포트, 인디비듀얼 등의 주행 모드를 택해 주행하게 된다.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선 E-모드와 E 세이브 모드를 선택할 수 없다.
주행 모드와 구동 모드가 어떻게 조합되느냐, 경우의 수가 아주 많다. 하이브리드의 복잡한 구조를 어떻게 다룰지 복잡한 판단을 요구하는 셈이다. 운전자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고속도로와 도심, 운전 시작과 마무리, 다음 주행까지 염두에 두고 어느 시점에 엔진을 사용할지, 모터를 사용할지, 배터리 잔량을 어떻게 관리할지 판단해야 하는 것.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차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단순명쾌함을 좋아하는 운전자에겐 골치 아픈 복잡다단한 차다. 복잡한 대신 높은 효율로 보답한다.
주행은 아주 편안하다. 툭툭 가속페달 톡톡 밟아 보는 데 에코 모드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 반응이다. 서스펜션은 노면 충격의 상당 부분을 걸러내 준다.
간간이 비가 내려 노면이 젖은 상태였다. 시속 90km 정도의 속도에서 대체로 조용했다. 엔진 사운드. 바람 소리, 노면 소리 등이 거의 들리지 않는 잔잔함을 만난다. 공기저항 계수 0.27로 바람을 헤쳐가는 느낌이다. 9단 변속기가 2.0 엔진을 조율한다. 앞에 245/45R18, 뒤에 275/40R18 사이즈의 런플랫 타이어는 젖은 노면에서도 그립을 잘 유지하고 있다.
배터리 기반으로 움직이는 E 모드에서도 속도를 끌어 올리면 엔진이 개입한다. 강한 힘이 필요할 때는 운행 모드에 상관없이 엔진 개입을 만난다.
작정하고 가속하면 모터가 더하는 힘까지 340마력의 힘이 드러난다. 공차중량 2,035kg으로 마력당 무게비가 6.35kg에 불과하다. 스포츠카 저리 가라 할 강한 힘을 만난다.
후륜구동. 뒤에서 밀고 가는 힘이 시트를 통해 느껴진다.
한없이 부드러운 친환경차에서 스포츠카 따라잡을 정도의 강한 힘, 빠른 가속감을 보여준다. 필요하다면 충분히 강한 힘을 누릴 수 있다.
고속 주행에서 어쩔 수 없이 커지는 바람 소리를 제외한다면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를 만날 수가 없다.
시속 100km에서 강한 제동을 시도했다. 잘 버텨 준다. 앞으로 잠깐 숙여지는가 싶더니 견고하게 버티며 제동을 마무리한다. 거칠지만 분명한 반응이 초반에 드러나고 이후 자세를 유지하며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PHEV용 리튬이온 배터리가 뒤쪽에 배치되어 있고 후륜구동이어서 차의 뒷부분이 제법 높은 안정감을 보인다. 코너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요인이다. 조금 빠른 코너링, 뒤에서 밀고 앞이 조향하는 구동 느낌이 수준급이다.
0-100km/h 가속 테스트를 했다. 메이커가 밝힌 100km/h 가속 시간은 5.7초. 직접 측정한 결과는 6.3초가 가장 빨랐다. 7차례 측정한 평균 기록은 6.6초. 가속 거리는 최고기록 87.49m, 평균 94.45m였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주행 보조 시스템은 아쉽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없다. 정해진 속도로만 달리는 크루즈 컨트롤이다. 차선이탈 경고 장치까지만 있다. 차선 이탈방지, 차선유지 장치는 없어서 반자율 운전이 불가능했다. 2019년형 모델에는 이런 기능들이 빠져 있다. 다행히 2020년형 모델에는 4매틱과 함께 드라이브 어시스턴트 패키지를 추가해 반자율 운전이 가능해졌다. 대신 가격이 7,850만 원에서 8,400만 원으로 인상됐다.
좁은 트렁크도 아쉽다. 트렁크 용량이 370ℓ에 불과하다. 트렁크 안쪽으로 하이브리드 전용 배터리가 배치됐기 때문에 공간이 좁아졌다. 4명이 함께 타고 골프장 가기는 불가능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