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국내 공장 가동률이 70%에 이른다는 소식이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코로나 19 사태로 공장을 아예 닫거나 가동률이 평균 30%수준에 그치는 것과 대비된다.
현대.기아차 국내 공장의 경우 양사 모두 가동률이 해외 공장보다 높아 특근까지 하는 사례도 있으나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 안에서도 희비는 엇갈린다.
이런 와중에 지난 4월 27일 현대자동차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코로나 19로 빚어진 위기를 품질 경쟁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간의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이 때문에 노조는 품질을 높여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신 회사는 조합원의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노조는 강조했다.
반가운 얘기다. 당연한 얘기여서다. 하지만 생각해볼 부분이 남는다. 품질은 어떤 상황에서도 양보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당연히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된다.
노조의 소식지에 의하면 IMF는 코로나 19로 인해 올해 세계의 경제 성장률은 -3%, 대한민국의 성장률은 -1.2%라고 하면서 세계적 신용평가사 피치는 “현대차의 유동성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세계 노동자 33억 명중 81%인 26억 4,000만 명이 코로나 19 여파로 해고되거나 근로 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는 전문 기관의 의견을 인용했다.
지금의 유래 없는 위기 상황을 잘 아는 노조가 품질을 볼모로 사측과 협상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품질에는 광범위한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소비자가 느끼는 것이고 소비자는 못 느껴도 제작자가 세워 놓은 기준도 품질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영업 지점을 방문했을 때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 분위기, 만족감도 품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건 그야말로 제품 그 자체의 품질이다. 최근 출시된 G80과 신형 아반떼의 품질 문제가 좋은 예다.
최근 G80, 아반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품질 문제는 이종사양의 오장착 문제다. 차가 운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색상이 맞지 않는 부품을 잘못 조립하는 것이다. 도어 트림을 짙은 회색으로 장착해야 하는데 검은색을 부착하거나, 외부 판넬에 부착하는 은색 밴드를 회색으로 부착하는 식이다. 이는 지극히 단순하고 감각적인 문제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색상이 좀 다르다고 차가 운행하는데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까다롭게 굴 필요가 있는가 하고.
잠시 되돌아 본다.
2000년 초반 자동차 시장에는 루머 아닌 전망이 강력하게 회자되었다. 2010년까지 5개의 자동차 회사만 살아남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세계 유수의 기업가치 분석 기관 및 학계의 경고이자 전망이었다. IMF로 인한 충격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회사의 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입사할 때에는 생각도 못했던 실직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IMF 사태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서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을 떠나 국제적인 회사간 인수합병, 구조조정 등 나와는 관계 없을 것 같았던 일들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세계적 기관에서 2010년 내 세계 자동차 시장에 5개 회사만 남는다고 하니 현업에 근무 중인 직원 입장이 어떠했겠는가?
현재, 국내에 5개의 회사가 남아있지만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3사는 주인이 외국 회사이니 실제 남은 국내 메이커는 현대차와 기아차 뿐이다. 두 회사가 같은 그룹이니 결국 국내에는 1개 회사만 살아남은 셈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2010년 이후에는 그 흔적조차 없을 줄 알았던 회사가 세계 생산량 5위 기업으로 꿋꿋하게 존재하고 있으니.
앞서 언급한 G80과 아반떼에 발생하는 이종사양 오장착 문제는 ‘품질 문제’이기 전에 ‘마음의 문제’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고급차인 G80이건 비교적 저렴한 아반떼이건 새차를 갖는다는 건 가슴 설레이는 일이다. 그런 차를 성의 없이 만들었다면 소비자들이 과연 기분 좋게 탈 수 있을까? 품질을 느낄 수 있을까? 다음에도 다시 현대차를 선택할까?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조립하는 ‘마음의 문제’를 가진 이들에게 차를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품질 문제를 회사와 타협하려는 것은 마치 학생이 최신 스마트폰 사주면 공부 열심히 하고 안 사주면 꼴찌하겠다는 것과 같다.
국내에는 자동차 완성차 업체가 2개면 충분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자동차 생산 공장 시설이 포화 상태를 넘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마음 아프지만 지금의 국내 각사, 특히 현대.기아를 제외한 3사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국내 시장에 현대기아차만 남는다고 국내 시장이 다 현대기아차의 몫이 될까? 그 몫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품질’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내 회사에서 온전히 살아남게 해주는 열쇠이다. 품질을 볼모로 타협하기 전에 제품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를 되돌아 볼 것을 권한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