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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840i x드라이브 그란쿠페와 라떼 한 잔 “아름다운 고성능”

라떼 한 잔 마시면서 옛날얘기 좀 해 볼게. “라떼는 말이야….”

‘파로공’ 이라는 전설적인 차가 있었어. BMW 850i 얘기야. 쐐기처럼 날렵한 스타일에 헤드램프는 차체 안에 숨겨놓았어. 팝업 램프를 사용한 건 멋도 멋이지만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서였어. 공기저항 계수 0.29를 맞췄어. 당시로선 대단한 수치였지.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스포츠 쿠페였던 거지.

엔진은 무려 W12기통 5.0 리터였어. 엔진룸이 터질 듯 꽉 찼지. 그런데 말이야, 최고출력이 295마력에 불과했어.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기준으론 대단한 힘이었어. 그땐 그랬어.

91년 가을에 코오롱모터스가 이 차를 국내 출시했어. BMW 코리아가 생기기 훨씬 전이지. 95년에 서울모터쇼가 처음 열리는데 850CSi를 처음 국내에 선보여. 1회 서울모터쇼에서 가장 비싼 차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 850i는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고 야심적으로 내놨지만,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지. 판매가 뒷받침되어주지 못했고, 조용히 시장에서 사라졌고 단종되고 말았지.

웬 옛날얘기냐고? 오늘 시승할 차가 8시리즈여서지. 840i 그란 쿠페야. 20년 만에 부활한 8시리즈. 옛날 생각이 안 날 수 없더라고. 20년도 훨씬 전에 스쳐 지났던 차를 다시 만나는 거야. 그땐 막내 기자라 선배 기자가 차를 몰고 나가는 모습을 부럽게 쳐다만 봤었어. 격세지감이야. 옛날얘기는 여기까지.

아직 9시리즈가 없으니 8은 BMW 라인업에서 최고 숫자야. BMW 최고의 쿠페임을 숫자가 말해주고 있어. 시승 모델은 ‘840i 그란 쿠페 M 스포츠’야. 1억 3,570만 원짜리지. 디젤엔진인 840d 그란 쿠페도 있고, 840i 쿠페도 있어. 그란 쿠페는 4도어, 쿠페는 2도어야.

BMW 역사상 가장 얇은 헤드램프라고 하지. 여기엔 레이저 라이트가 사용됐어. 500m를 비춰준다고해. 야간운전할 때에는 아주 요긴할 것 같아.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의 최고출력은 340마력이야. 엔진은 세로로 배치해서 좌우 균형까지 잘 맞추고 있어. 여기에 x 드라이브, 즉 사륜구동 시스템을 더했어. 앞뒤의 무게 균형, 구동력 배분까지 잘 맞췄다고 봐야지. 차체의 균형은 차가 움직일 때 안정감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야.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크리스털 변속레버라는 건 모두가 동의할 거야. 수작업으로 가공해 기어 변속레버를 만들어낸 거지 그 안에 숫자 8을 넣어 이 차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어. 그 옆에 i드라이브 컨트롤러도 예사롭지 않아.

스티어링휠은 2.2 회전해. 이게 조향 특성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주는 부분이야. 대체로 3회전 하는 차들이 많고, 회전수가 작을수록 조향 성능이 예민하다고 보면 되지. 회전수가 작을수록 핸들을 적게 돌려도 차는 크게 반응한다고 보면 돼. 8시리즈에는 여기에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기능이 더해졌어. 뒷바퀴도 살짝 방향을 돌려 조향 성능에 힘을 보태는 거지. 흔히 말하는 사륜 조향 시스템이지.

길이 5m를 넘고, 너비가 2m에 육박하는 큰 덩치지만 민첩하게 움직이는 비결이 바로 이 스티어링 시스템에 있다고 봐.

이 차는 또 사람 말을 알아들어. ‘인텔리전트 개인비서’ 기능이 있어서지. 메르세데스 벤츠에는 이와 유사한 MBUX가 있어. 지능형 음성인식 기능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어.

“안녕 BMW”라는 말로 불러내서 오늘 날씨, 내비게이션 목적지, 온도 조절 등등의 아주 많은 명령을 할 수 있어. 질문 혹은 명령을 하면, 비서처럼 대응하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게 인상적이야. 음성 명령 분야는 자동차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기술이 될 거야. 자동차가 움직이는 디바이스, 즉 바퀴 달린 핸드폰처럼 변화해가는데 음성인식 기술이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고 봐. 이 부분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 이유야.

‘제스처 컨트롤’은 BMW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야.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 소리가 커지고, 손바닥을 휙 넘기면 FM 채널이 변경되는 식이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좀 이상하게 보이는데, 뭐 상관할 거 있어? BMW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기능이니까 기회 있을 때마다 즐기기를 추천해.

BMW에만 있는 게 하나 더 있어. 후진 어시스트라고 부르는 건데, 자동 후진 장치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골목길 같은 곳에서 가다가 길이 막히거나 돌아 나와야 할 상황이 생기면 최대 50m까지 갔던 길 그대로를 차 스스로 후진할 수 있어. 너무 빠르지 않게 브레이크 페달만 신경 써서 밟아주면 나머지는 차가 알아서 해. 다만 중간에 핸들에 손을 대면 기능이 해제된다는 점 알아둬야 하고.

하만카돈 오디오 시스템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귀를 호강시켜주는 높은 음질을 들려주는 최고급 오디오야. 최고급 오디오가 제값을 하려면 차가 조용해야 한다는 게 관건이지. 시끄러운 차에는 그냥 적당한 수준의 오디오가 차라리 나아. 왜 그런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

이 차에는 특이한 게 있는데 에너지 이동을 모니터로 볼 수 있다는 점이야. 엔진에서 발생한 동력이 바퀴로 전달되는 것을 보여 주는데, 마치 전기차의 회생제동시스템처럼 바퀴에서 버려지는 힘을 다시 배터리로 저장하기도 해. 친환경 자동차도 아닌데 말이지. 그냥 버려지는 에너지를 다시 배터리에 저장하는 건, 일상 주행에 필요한 전기를 그렇게 보충하는 거야. 안 그러면 엔진 힘의 일부를 다시 전기로 만들어 사용해야 하니까. 결과적으로는 엔진의 효율을 높이는 결과가 되는 거야. 한 방울의 기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기술이야.

앞 좌석보다 조금 높은 뒷좌석은 좌우 개별시트로 구성됐어. 4인승이지. 5인승이 아니라는 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봐. 세단도 아니고 쿠페, 그것도 최고급 수준의 쿠페라면 5명이 구겨져 앉는 건 폼이 안 나잖아. 각자 필요한 공간을 누릴 수 있는 4인승이 최적이야. 뒷좌석도 아주 편하게 앉을 수 있어. 공간 그 자체가 주는 고급스러움은 물론이고 럭셔리한 분위기, 다양한 편의장비도 누릴 수 있어.

운전석에 처음 앉을 때 느낌이 어색해. 시트가 바닥에 붙어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아주 낮게 앉는 느낌 때문이지.

드라이빙 어시스트 프로페셔널은 완성도가 훨씬 더 높아졌어. 버튼 한 번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어. 앞차가 정지하면 따라서 멈추고 다시 출발하면 스스로 출발해. 신호대기 중에도 정지후 재출발을 스스로 하더라고. 정지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운전자가 차를 다시 조작해줘야 하는데 이 차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지.

속도를 높이면 아주 숙련된 운전자의 느낌이 드러나. 차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앙을 잘 유지하는 거지. 앞차와의 차간거리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건 물론이고. 핸들에서 손을 놓아서는 안 되겠지만, 그냥 가볍게 손을 얹어놓고 가면 아주 신통방통하게 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게 느껴져. 자율주행차가 멀지 않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지.

흔히 승차감을 좌우한다는 서스펜션은 앞에 더블위시본 뒤에는 5링크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어댑티브 서스펜션이야. 조금 딱딱한 느낌인데 정작 충격을 넘을 때에는 그렇게 강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어느 정도 노면 충격을 품어 안으면서 넘어가는 느낌인 거지. 주행 상황, 노면 상태에 따라 서스펜션이 적절하게 감쇠력을 조절하는 거야.

속도를 어느 정도 높이면 잔잔한 바람 소리가 실내로 들어오는 게 느껴져.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조금 더 신경이 쓰일지 몰라.

디자인에 멋을 내는 쿠페는 대게 프레임리스 도어를 적용해. 창틀이 없지. 이 때문에 바람 소리에 조금 취약해. 이중접합 유리를 사용하면 조금 나아지기는 하지만 창틀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좋을 수 없어. 그런데 이 차는 이중 접합 유리가 아니더군.

주행모드는 스포츠, 컴포트, 에코프로, 어댑티브 모드가 있어. 스포츠모드에서는 다시 스포츠 플러스를 택할 수 있게 했더군.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차이도 크더라고. 툭툭 가속 페달을 밟아보면 그 반응이 확연히 달라.

속도를 높이면 단단한 서스펜션이 균형을 딱 잡고 달리는 느낌이 인상적이야. 바람 소리는 조금 더 커지는 듯한데, 속도에 비하면 오히려 그 반대야. 바람 소리가 속도에 비해 크지 않다는 거지. 엔진소리는 아주 기분 좋게 들려와. BMW를 포함해서 독일차들은 엔진 소리를 아주 잘 조율해.

흔히 고속주행 안정감이라고 하는데, 아주 빠른 속도에서도 차가 흔들림이 적다는 거야. 사륜구동시스템, 앞뒤의 무게 균형에 더해 직렬 6기통 엔진을 세로 배치해 좌우 균형까지 잘 맞춰놓은 결과지. 몸이 느끼는 속도가 실제 속도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그 우수성을 실감할 수 있어.

시속 100km에서 엔진 회전수는 1,400rpm을 보여. 배기량과 힘이 여유가 있어서 엔진 회전수를 많이 끌어 올리지 않아도 100km/h를 커버한다는 얘기지.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이 8단 자동변속기의 조율을 거쳐 340마력의 힘을 보여 주는 부분이야.

같은 속도에서 급제동을 해 봤어. 오른발에 체중을 실어서 브레이크를 밟았어.

급제동을 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더라고. 차가 앞으로 숙여지는 느낌이 오는가 했더니 이내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멈춰 섰어.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되게 차를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어서일까. 안전띠를 미리 조여주는 반응은 없었어. 안전벨트 프리텐셔너라는 기능인데, 급제동하거나 차의 안정성이 흐트러질 때 사고를 대비해 안전띠가 미리 몸을 잡아주는 기능인데 작동하지 않더라고. 원래 없는 것인지, 사고 위험이 없다고 판단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

달리던 속도 그대로 코너에 접어들었어. 조금 빠르다 싶은 속도였어. 앞서 얘기한 인테크럴 액티브 스티어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지. 뒷바퀴도 방향을 틀면서 빠르고 정확하게 조향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야. 낮은 속도에서는 앞뒤 바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빠른 속도에서는 앞뒤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방향을 바꿔. 길이가 5,075mm인데 지름 12.6m의 공간이 있으면 유턴을 할 수 있을 정도야.

0-100km/h 가속 테스트를 해봤어. GPS 계측기를 이용해서 가속 시간과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라 그냥 초시계로 측정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신뢰성이 있다고 봐. 메이커가 밝히는 공식 기록은 4.9초야.

결과는 놀랍게도 메이커 기록을 능가하는 기록이 나와. 모두 9차례 테스트했는데 최고 기록이 4.69초가 나온 거야. 4.74초, 4.84초도 있어. 한두 번도 아니고 세 차례나 메이커 기록을 능가하는 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일이지. 9차례 테스트 평균 기록은 5.15초니까 메이커 발표치와 크게 차이가 안 나는 점도 무척 인상적인 부분이지. 많은 차를 시승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나도 좀 놀랐어. 분명한 것은 차의 성능이 큰 편차 없이 고르게 발휘된다는 사실이야. 같은 차지만 2초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거든. 어쨌든 가장 인상적인 제로백 테스트였어.

재미있는 것은 가속 그래프야. 시속 40km에서 60km 구간에서 마치 계단을 뛰어오르듯 갑자기 속도가 높아지는 구간이 있는 거지. 변속이 일어나면서 속도 변화가 크게 드러나는 것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특이한 가속 반응이지.

시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약 55km를 달리며 연비 테스트를 해봤어. 파주 헤이리마을에서 서울 교대역까지야. 공인복합 연비는 9.4km/L로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는 연비인데 실주행 연비는 14.7km/L를 기록했어. 물론 에코 프로모드로 경제운전을 하면서 기록한 연비여서 늘 이런 연비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정하고 연비 운전을 하면 이렇게 연비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어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91년의 850i로 마무리할까 해. 선배 기자가 몰고 간 차는 당시 유명한 셀럽이 시승했는데, 남한산성에서 빙판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나고 말았지. 차는 부서졌지만, 다행히 사람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지.

고성능차를 타는 건 늘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해. 재미있다는 것, 위험하다는 말이기도 하지. 특히나 고성능차는 더욱더 안전을 염두에 두고 차를 다뤄야 해. 이 차를 타는 모든 이가 명심해야 할 말이야.

오종훈의 단도직입
칭찬만 할 수는 없지. 단점 혹은 불편한 점이 없을 수 없거든.

먼저 눈에 띄이는 부분은 프레임리스 도어의 약점이야. 날카로운 예각이 드러나는 도어를 봐. 예쁘게 만들다 보니 프레임리스 도어를 쓰는데, 프레임이 없다 보니 이렇게 도어 예각이 드러나는 거야. 문을 여는데 옆에서 누가 와서 도어에 부딪힌다면 많이 다칠 거야.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무척 위험하겠지. 아름다운 디자인이 안전을 해치는 결과를 부르고 있어. 생각해볼 부분이야.

트렁크에는 윗부분에 멘 철판이 드러나 있어. 1억 원을 훌쩍 넘는 차에 너무 원가 절감한 티가 나는 거지. 이걸 보는 소비자는 무슨 마음이 들까. 철판 가리는데 얼마나 든다고 이걸 막아놓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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