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 이보크를 다시 만났다. 디젤 엔진에 더해 새로 추가된 가솔린 엔진 모델, P250 SE다.
시승차의 보디 컬러는 ‘서울 펄 실버’. 보디 컬러의 공식 이름이다. 한국 시장이 그만큼 의미가 크다는 반증이다. 영국 식당에서 한식 메뉴를 만난 듯 뿌듯하다. 한국의 위상이 과거와 다름을 말해주는 아주 사소한 증거다.
레인지로버의 막내로 컴팩트 SUV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작지 않다. 4,371×1,904×1,649mm의 크기다. 휠베이스는 2,681mm, 최저지상고는 210mm다.
인테리어에는 브리티시 프리미엄이 가득 담겼다. 시트는 물론이고 대시보드도 가죽으로 마감했다. 금속 재질을 더해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실내를 완성했다.
센터페시아의 인 컨트롤 터치 듀오는 10인치 모니터 두 개를 상하로 배치해 많은 기능을 조작하게 했다. 오버헤드 콘솔에는 SOS 버튼이 있다. 비상시에 버튼 하나로 콜센터와 연결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핫라인이다. 있는 것만으로 마음 든든한 버튼이다.
메르디앙 스피커가 곳곳에 자리 잡았다. 볼륨을 올리면 소리보다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온다. 실내를 꽉 채우는 소리가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강하게 귀를 호강시킨다.
스티어링휠은 2.2회전 한다. 작은 차에 어울리는 락투락 조향비다. 뒷좌석은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들어가는 공간을 가졌다. 머리 위로도 공간이 넉넉하다. 엉덩이가 뒤로 가라앉고 무릎은 세워 앉는 자세가 된다. 머리 위 공간이 여유가 있는 만큼 뒷 시트를 조금 더 높게 배치하면 어떨까.
가솔린 엔진답게 첫 움직임이 상당히 경쾌하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툭 밟았는데 생각보다 좀 더 강한 힘으로 첫발을 뗀다. 골목길, 과속방지턱을 두툼하게 넘는다. 충격이라기보다는 품어 안는 느낌이다. 프리미엄 SUV답게 충격을 잘 걸러내고 있다.
디젤 엔진이 매우 조용해지고 진동도 없다고는 하지만 가솔린 엔진을 타보면 확실한 차이를 느낀다. 좀 더 조용하고 편안하다. 엔진 소리도 다르다. 음폭이 좁고 조용하다.
앞에 맥퍼슨 스트럿, 뒤에 인테그랄 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에 235/50R 20 사이즈의 타이어를 적용했다.
주행보조시스템은 버튼 한번 눌러서 활성화된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에 차선이탈방지장치가 적용돼 잠깐 스티어링휠을 놓고 있어도 스스로 조향하며 움직인다. 가끔 차선을 밟기는 했지만, 조향이 적극 개입하며 차선 이탈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차선을 밟으면 안으로 강하게 밀어 넣는다.
9단 변속기는 촘촘하게 구간을 쪼개 변속한다. 3~9단에서 시속 100km를 커버한다. 9단 변속기는 성능과 효율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카드다. 강하게 밀어붙일 수도, 한 호흡 늦고 편안하게 움직일 수도 있다.
속도를 높여 고속 주행 구간에 접어들었다. 차체가 높아 노면 굴곡을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은 있지만 대체로 편안한 거동으로 움직인다. 흔들리는 느낌조차 거칠지 않고 편안하다. 주행 질감이 우수하다. 바람 소리는 속도에 따라 점차 증가하지만, 덩치에 비해서는 크지 않은 편이다. 가솔린차 특유의 경쾌한 발놀림이 인상적이다.
클리어 사이트 룸미러는 후방 시야를 시원하고 선명하게 사각 없이 보여준다. 룸미러가 모니터로 변하며 카메라가 비추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광각으로 넓은 화면을 보여주는 대신 실제보다 조금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운전하는 입장에선 사각 없이 볼 수 있어 좋았다.
시속 100km에서 오른발에 체중을 실어 강한 제동을 시도했다. 2톤에 가까운 무게와 시속 100km의 속도, 1.7m에 이르는 차체의 높이 등을 보면 상당히 거친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무리 없이 속도를 줄이며 정지했다. 앞이 어느 정도 숙여지기는 했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는다. 앞이 숙여지면서 동시에 자세를 살짝 낮추는 느낌이다.
코너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돌아 나가는데 가속 페달에 여유가 있고 조향도 무리가 없다. 속도를 조금 더 내도 좋겠다 싶을 정도다. 사륜구동 시스템이 구동력을 잘 확보했고 차체의 안정감도 제대로 유지했다. 거기에 더해 서스펜션과 타이어가 불안정한 움직임을 잘 받아낸 결과다.
전 모델 기본 사양으로 적용되는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2와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은 오프로드에서 강력한 주행성능을 보여준다. 이 시스템은 정교한 ‘인텔리전트’ 시스템을 사용해 현재 주행 조건을 분석하고 가장 적합한 지형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선택한다. 다이내믹, 에코, 컴포트, 잔디밭/자갈길/눈길, 진흙 및 요철, 모래, 암반 저속주행 등 7가지 모드 중 선택할 수 있으며 자동 설정도 가능하다. 이외에도 서스펜션의 높이, 엔진반응, 트랙션 컨트롤 개입 등을 조정할 수 있다. 도강 능력은 기존보다 100mm가 높아진 최대 600mm까지 가능하다.
GPS 계측기로 0~100km/h 가속성능을 측정했다. 249마력 1,930kg로 마력당 무게비는 7.75kg이 된다. 메이커가 밝히는 제원표상의 기록은 7.5초. 가속감이 그렇게 빠르지 않다. 시종일관 여유 있게 달리는 느낌. 트랙션 컨트롤이 잘 이뤄저 타이어 슬립을 막고 있다. GPS 계측기로 측정한 기록은 8.98초다. 주행거리 기준으로는 143.95m가 가장 짧았다.
서울-파주간 55km를 주행하며 연비 테스트를 진행했다. 공인 복합 연비는 8.9km/L. 계기판이 알려준 실주행 연비는 12.8km/L였다.
올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 가솔린 모델은 세 가지 트림으로 판매된다. 가격은 P250 SE 7,290만원, P250론치 에디션 7,110만원, P250 퍼스트 에디션 7,800만원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주행 보조시스템의 차선이탈방지 장치가 조금 아쉽다. 차선을 밟은 뒤 조향이 개입해 차선 안으로 집어넣는다. 때로는 조향 개입이 거칠 때도 있다. 무심코 운전하다가 깜짝 놀라기도 한다. 차선을 밟지 말고 차로의 중앙을 계속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개선하는 게 프리미엄 브랜드에 어울린다. 소비자의 눈높이보다 조금 더 높은 시스템을 적용해야 하는 게 프리미엄 브랜드다.
두 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인 컨트롤 터치 프로는 편하게 작동하고 선명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지만 손때가 잘 묻는다. 터치할 때마다 지문이 남는다. 햇볕에 반사될 때에는 먼지와 손때가 유난히 잘 보여 거슬린다. 수시로 닦아주지 않으면 지저분해 보인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