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자동차 산업계에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스나 메르스때에도 전 세계의 국가들이 입출국을 금지하고 공장이나 회사가 아예 문을 닫고 사람들의 통행을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한 기억은 없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어려움이 국내에 국한된 것이라면 전체판매의 85%가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그 충격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북미 등 규모가 큰 시장이 문제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어려움이 계속될 경우 자동차 메이커들은 어떻게 살아갈 방법을 찾을 것인가.
1997년 IMF 사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상황이 기억난다. 판매가 급감하고 재고는 쌓여가고 회사 내 각 부문이 어려워진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이때도 국내 문제가 아니었고 거의 전 세계가 연관된 어려움이었으므로 지금의 코로나 19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위기가 오면 항상 회사에서 추진하는 대책 중 하나가 원가절감, 수익성 개선이다.
자동차의 수익성 개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수익성 개선이란 회사 내의 수많은 부문들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소비자가 가장 밀접하게 접하는 가격표에 표시되는 기준으로 본다면
첫 번째는 기존 차의 변동 없이 가격만 인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격변동 없이 일부 사양을 삭제하거나 다운 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재료비는 줄지만 가격은 그대로니 수익성은 좋아진다.
세 번째는 일부 사양은 삭제하거나 적용 방법을 바꾸면서 판매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새차같은 느낌을 줘 불만의 여지를 줄이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그야말로 가격표만 수정하면 되겠지만 바로 욕을 얻어먹을 대책이다.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방법을 절충한 수익성 개선안을 내게 된다.
이제부터 회사 내에서는 사양을 빼라는 쪽과 상품성이 악화되니 못 뺀다는 쪽, 또 가격을 많이 올리라는 쪽과 보여줄 것도 없는데 어떻게 가격을 많이 올리느냐고 반대하는 쪽의 논쟁이 시작된다.
이런 시절에는 과감하게 사양을 삭제하고 가격을 인상하자고 제의하는 쪽이 회사의 환영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영업 현장에서는 대응책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기존 재고의 처리가 더 큰 문제다. 크던 작던 변화가 있으면 재고는 구형이 된다.
영업 현장에서 상품개선을 요구하는 이유는 사실 기존에 쌓여있는 차를 처분할 대책을 얻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차가 어떻게 바뀌는지는 두 번째 관심사다.
시장이 어려워져 판매가 줄어들면 재고가 쌓인다. 생산을 줄이면 된다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생산을 줄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국내 소비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재고가 계속 쌓이면 더 이상 차를 쌓아둘 곳이 없을 지경에 이른다. 이쯤되면 회사는 재고를 대폭 줄일 방법과 함께 올해 판매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결국 앞에 언급한 사양과 가격을 조정한 새 모델을 내놓는 것과 함께 기존 재고를 생산시기별로 분류하고 오래된 재고 순으로 할인금액을 정해 할인 판매에 나선다. 물론 신형모델도 함께 판매한다. 소비자는 어떤 차를 선택할까?
본부에서도 새 차는 안 팔고 왜 재고만 파냐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왜냐고? 장기 재고차로 소비자를 공략하는 게 원래의 목적이었으니까.
수익성 개선은 원가절감과 직결되는 문제다. 사양을 삭제해서 재료비를 낮추는 것도 원가절감이지만 궁극의 원가절감은 현재의 상태에서 제작단가를 낮추는 것이고 이는 결국 납품가를 낮추는 문제로 귀결된다. 협력업체로 불똥이 튄다. 현대차가 원가 절감을 위해 살을 에는 노력을 했다면 현대차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는 팔을 자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같이 입사했던 동기 중에서 현대차 퇴사 후에 관련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친구가 몇 명 있는데 지금도 만나면 현대차의 원가절감 만행(?)을 얘기하곤 한다. 앞에서 듣기 민망할 정도다. 결국 동기가 허리를 졸라매 절감한 돈으로 내가 꼬박꼬박 월급과 보너스를 받고 있었나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나 자신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살아남기 위한 회사의 자구책이 반영된 차를 타면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연구소에 다녀오다 내차의 인터쿨러와 관련된 문제로 수원 인근에서 연이어서 몇 곳의 AS센터를 들러야 했다. 할 말이 없었다.
현대차가 2000년 이후 정몽구 회장이 그룹을 이끌면서 현재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해온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서는 여러 가지 성공 요인이 있겠지만 내가 꼽고 싶은 것은 품질의 비약적인 향상이다. 물론 나의 이런 의견에 당장 반론을 들고 나오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오늘 AS가서 열 받고 오신 분은 이 글을 보지 마시기를)
정몽구 회장의 키워드는 ‘품질’이었다. 그가 얼마나 품질을 중요시하며 직원들에게 품질개선을 강조했는지는 언론에도 수없이 많이 등장했던 일화들을 보면 안다.
매월 초 정몽구 회장이 주관하는 품질 회의는 현대차의 경영진 회의 중 가장 숨 막히는 그야말로 공포의 회의였다. 양재동 본사 1층에 마련된 품질회의실 바로 옆방에 실차와 부품을 갖다놓고 바로 실물을 보면서 회의가 진행됐다.
월초만 되면 품질회의 준비를 위해 연구소, 개발, 정비 그리고 물론 품질부문의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회의 준비부터 털끝만큼의 실수나 미흡함이 있어서는 안됐다. 어떤 돌발 질문에도 바로 대답해야 했다. 이를 위해 각 부문에서 만들고 취합한 예상 문제집은 또 얼마나 두꺼웠는지. 그 문제집을 가지고 중역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예행 연습을 했을지. 품질에 집중했던 그런 노력과 마음 졸임 하나하나가 모여 오늘의 현대차가 된 것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위해 아쉽지만 많은 것들을 뒤로 미루고 포기하고 덜어내야 한다고 해도 품질과 연관된 것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거대한 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틈 때문에 무너진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를 떠올리며, 다시 위기에 맞닥트린 현대차에 드리고 싶은 말은 이렇다. 다른 건 몰라도 품질은 양보하지 말라고. 품질이 현대차를 살렸듯이 품질이 현대차를 죽일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유재형 [자동차 칼럼니스트]
필자 유재형은 1985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중대형 승용차 상품기획을 맡았으며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에서 갤로퍼, 싼타모 등의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현대자동차로 옮겨 싼타페, 투싼 등 SUV 상품개발과 마케팅을 거쳐 현대자동차 국내상품팀장을 끝으로 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