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 벤츠 SUV 라인업에서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모델이다. GLE 450 4매틱을 통해 그 매력을 다시 느껴볼 기회를 가졌다. 2020년 1월 초에 2019년형 모델을 시승했고 그 뒤 2020년형 모델이 출시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2020년형 모델은 몇 개의 기능을 더하고 가격을 변경했다.
97년에 등장한 M클래스는 2015년에 GLE로 이름을 바꾼다. 벤츠의 새로운 네이밍 체계에 따라 이름을 바꾼 것. 이를 기점으로 벤츠의 SUV는 세포분열에 나선다. ML이 GLE로 GL이 GLS로 이름을 변경했고, 이를 전후로 GLA와 GLC가 투입된다. 최근에는 GLB가 등장하는 등 메르세데스 벤츠는 SUV에서도 촘촘한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GLE는 벤츠 특유의 디테일이 녹아있는 디자인으로 당당함을 살려냈다. 8각형 수직 그릴, 2개의 파워 돔을 배치한 보닛, 넓은 C 필러, 크롬도금 언더 가드 등으로 멋을 냈다. 어댑티브 하이빔 어시스트 기능이 있는 멀티빔 헤드램프는 84개의 LED 램프를 개별 조절해 빛의 강약을 조절하며 길을 밝혀주는 똑똑한 램프다.
중형이라고는 하지만 대형 못지않은 크기다. 차급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굳이 따진다면 준대형급으로 보는 게 맞겠다. 4,930×2,020×1,770mm 크기에 2,995mm의 휠베이스를 가졌다. 5m에 육박하는 길이에 2m를 훌쩍 넘는 너비, 그리고 3m에 바짝 다가선 휠베이스다. 주차장 한 면을 꽉 채우고, 도로에 올라서면 차선이 꽉 찬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크기다.
이처럼 큰 차지만 스티어링 휠은 2.6회전에 불과하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의 정보표시창은 각각 12.3인치 모니터로 구성했다. 와이드 스크린 콕핏이다. 계기판은 운전자의 필요와 선택에 따라 구성을 달리할 수 있다. 트랩 미터, 내비게이션, 주행 보조시스템, G포스, 구동력 배분은 물론 오프로드 주행을 고려한 차의 기울기까지 선택해서 화면에 띄울 수 있다. 운전자 맞춤 계기판을 연출할 수 있는 것.
센터페시아의 정보표시창은 스티어링휠의 버튼, 터치스크린, 터치 패드 등을 통해 조절하고 입력할 수 있다. 손글씨도 인식한다. 독일산 자동차가 한글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게 신기할 정도.
실내조명을 조절하는 앰비언트 라이트는 64개의 컬러가 준비되어 있다. 분위기에 맞게, 취향에 맞게 다양한 컬러로 연출할 수 있다.
이 차를 제대로 다루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차량 설명서를 찬찬히 정독하며 기능 하나하나를 공부해야 하는 것. 그래야 그 많은 차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1억 원 넘는 차를 두 개의 페달과 핸들만 조종하면서 타기엔 너무 아깝다.
주행모드는 인디비듀얼, 스포츠, 컴포트, 에코, 오프로드 5개 주행 모드가 설정되어 있다. 각 주행모드에 따라 차의 반응은 조금씩 달라진다. 에코와 스포츠 모드는 확연히 다르다. 에코 모드에선 가속 반응이 느슨하다. 시켜도 말 안 듣는 아이처럼, 가속페달을 툭툭 밟아도 듣는 둥 마는 둥 편안하게 움직인다. 스포츠 모드에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가속 반응이 빠르다. 오프로드 모드는 최고 속도 110km까지 제한된다.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들어가고 남는다. 공간을 논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의 넉넉함이다. 공간 그 자체가 주는 고급스러움이 최고 수준이다. 손가락 높이 정도로 센터 터널은 솟아 있지만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뒷 시트에 몸을 기대보면 뒤로 주저앉은 느낌이다. 뒷좌석을 조금 높게 만드는 극장식 시트 배열과 반대다.
MBUX는 일종의 음성명령 시스템이다.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명령하면 차가 알아듣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목적지 설정, 전화 걸기, 실내 온도 조절, 히트 켜기, 시트 열선 냉풍 작동 등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음성명령으로 조작 할 수 있다. 독일차지만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대부분 오류 없이 정확하게 반응한다. 완성도가 매우 높다. AI를 이용한 음성 인식 시스템 중에서 가장 앞선 수준이 아닌가 싶다.
‘메르세데스 Me’는 또 다른 세계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커넥티드 기능을 담아 별도의 스마트폰 어플로 만들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차와 떨어져 있어도 차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것.
파워트레인에서 주목할 부분은 EQ 부스트.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모터와 발전기를 결합한 모듈을 끼워 넣어서 EQ 부스트 시스템을 적용했다. 가속할 때 22마력, 25kgm 정도의 힘을 추가로 보태고, 48V 전기 시스템으로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효과를 낸다.
EQ 부스트는 연료 효율도 개선 시켜준다. 엔진스톱 범위가 넓다. 주행 중에도 엔진은 멈춘다. 엑셀 오프하고 탄력 주행을 하면 엔진이 어느 순간 정지하며 rpm이 0을 가리킨다. 시내 주행에서 앞차를 따라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출 때도 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엔진이 먼저 작동을 멈춘다. 엔진이 멈추고 나서 차가 정지하는 것. EQ 부스트의 마법이다. 효율과 성능을 모두 개선하는 양수겸장의 기술인 셈이다.
명불허전, 부메스터 오디오는 실내를 섬세한 소리로 꽉 채운다. 볼륨을 최대로 키워도 음이 찌그러지지 않는다. 스피커의 울림은 몸이 먼저 느낀다. 몸이 느끼는 울림이 색다르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6기통 3.0ℓ 트윈 터보 가솔린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로 구성했다. 367 마력 51.0kgm 토크를 가졌다. 힘도 힘이지만 직렬 6기통에 눈길이 간다. 요즘 세상에 직렬 6기통이라니. 다운사이징의 바람에 밀려 존재감이 약해진 엔진 형식인데 과감히 채택했다.
자유로에 올라섰다. 차선이 꽉 차는 느낌이다. 차체가 높아서 시야가 넓은 대신에 노면의 충격을 받을 때 차의 흔들림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 편이다. 앞에 더블위시본, 뒤에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했고 에어 서스펜션을 사용해 차체의 움직임이 편한다. 사륜구동 시스템인 4매틱 시스템도 한몫한다. 노면의 굴곡을 타고 넘을 때도 흔들림을 잘 걸러준다. 셀프 레벨링 기능이 있어 스포츠 모드에서는 차체 높이가 낮아진다.
툭툭 가속페달을 밟아 보면 주행 모드에 따라 다른 반응을 만난다. 에코 모드에선 말 안듣는 아이다. 가속페달과 rpm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살짝 밟으면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조금 속도를 높이는가 하면 얼마 가지 않아 rpm을 뚝 떨어뜨려 버린다. 스포츠 모드에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발작하듯 힘있게 반응하고 rpm도 높게 유지한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려도 속도감이 그렇게 높지 않다. 체감 속도가 느리다. 차체가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안정감 있는 주행 자세를 보인다. 차체가 높아서 휘청거리지 않을까 싶은데 안정감을 잘 유지한다. 서스펜션, 에어서스펜션, 사륜구동, 타이어 등이 차체의 안정감을 유지해주고 있는 것.
시속 100km에서 rpm은 1,400 정도다. 같은 속도에서 3단 5,200rpm까지 변한다. 3~9단으로 100km/h를 커버하는 것. 9단 변속기의 기어비는 1단에서 5.36, 6단에서 1.0을 거친 뒤 7, 8, 9단에서 오버 드라이브가 된다. 9단인 만큼 상황에 맞춰 힘을 잘게 쪼개 쓴다. 가속할 때에는 EQ 부스트가 힘을 보탠다. 공차중량 2,395kg의 무게가 가볍게 움직인다. 공기 저항계수는 0.31로 체형에 비해 우수한 수준이다.
시속 100m에서 급제동을 시도했다. 속도와 무게가 있어서 제동할 때 어느 정도 앞이 숙여 진다. 시속 100km의 속도와 2.4t의 무게를 잘 견디면서 제동을 마무리한다.
2019년형 모델은 주행 보조시스템이 약하다. 차로 유지, 차간거리 조절이 안 된다. 1억 원을 넘는 가격인데 의외다. 이런 지적을 의식했는지 2020년형 모델을 투입하며 이 부분을 보완했다. 차간거리 조절과 차로 유지 기능을 보완해 넣은 것. 선루프도 기본 장착했다. 대신 가격을 500만 원 인상했다. 99년형 1억 1,050만 원에서 2020년형 1억 1,550만 원이 된 것.
GPS 계측기를 이용해 0-100km/h 가속 시간을 10여 차례에 걸쳐 측정했다. 가장 빠른 기록은 6.14초, 가장 느린 기록이 6.34초다. 편차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른 기록을 보였다. 메이커가 밝히는 GLE 450 4매틱의 0-100km/h 가속 시간은 5.7초다.
파주-서울간 55km를 달리며 실제 연비도 체크해봤다. 주행거리 55km를 1시간 15분간 평균속도 55km를 달렸다. 실주행 연비는 13.0km/L로 측정됐다. 에코 모드로 최고의 경제 운전으로 측정한 기록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이 차의 공인 복합 연비는 8.8km/h로 5등급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터치 패드 우측 상단에 홈 버튼이 있는데, 컵홀더에 손이 왔다 갔다 할 때 본의 아니게 자꾸 누르게 된다. 그때마다 작동 중인 내비게이션이 자꾸 홈 화면으로 이동한다. 설계상의 문제다. 컵홀더 위치를 변경하거나, 터치패드의 버튼을 재배치해야 할 것 같다.
시승차인 2019년형 모델은 주행 보조시스템이 빈약했지만 2020년형 모델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이 부분은 보완이 됐다. 가격이 인상된 것은 아쉽다. 1억 원 넘는 가격이라면 그런 부분은 진작에 기본장착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