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가 8세대로 진화했다. 독일 현지 판매를 시작한 12월. 포르투갈에서는 글로벌 미디어를 대상으로 골프 시승회가 열렸다. 폭스바겐의 초청으로 현지를 찾아 8세대 골프를 시승했다.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2.0 TDI, 1.5 eTSI, 1.5 TSI를 모두 타볼 기회를 가졌다. 골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맛볼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디자인을 제외하고 중요한 변화를 꼽으라면,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Car2X, 알렉사 기반의 음성인식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IT 기술, IQ 드라이브와 IQ 라이트 기술 등이다.

2만 개 혹은 3만 개 부품을 기계적으로 조립한 자동차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음을 웅변하는 변화다. 폭스바겐이 소개하는 주요 변화의 대부분은 기계적, 혹은 동력 성능의 우수함을 얘기하기보다 IT 기술에 기반한 첨단 기술에 집중되고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40초마다 한 대씩 팔린다는 골프다. 폭스바겐을 대표하는 골프의 변화는 곧, 폭스바겐의 변화를 예고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골프가 달리는 방향으로 폭스바겐 군단이 달려갈 것은 자명한 일.

인테리어에서 이를 느꼈다.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충격이다. 버튼이 싹 사라졌다. 터치& 스와이프로 모든 기능을 조작한다. 헤드업 콘솔에 있는 SOS 버튼과 비상등만이 버튼 형태로 남았을 뿐이다. 테슬라라면 모를까.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골프가 이런 혁신을 이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계기판은 10인치 모니터, 내비게이션 모니터를 겸하는 센터페시아의 정보 표시창은 8.25인치 모니터를 배치하고 두 모니터를 하나로 묶었다. 그 두 개의 모니터를 통해서 완전 디지털을 지향하는 ‘이노비전 콕핏’이 구현된다. 주행모드, 주차 보조, 공조 등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별도로 꺼내 놓았지만, 이 역시 버튼이 아니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터치하면 마법처럼 작동한다.

알렉사와 협업한 음성인식 기능은 수준이 높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명령을 구분해 알아듣고 수행한다. 운전석에서 춥다 하면 운전석 온도를 높이고, 조수석에서 덥다 하면 조수석 쪽 송풍 온도를 낮춘다.

Car2X는 다소 생소한 부분이다. 폭스바겐 최초로 골프에 적용됐다. 30년 가까이 자동차 매체에 몸담은 기자 생활을 하는 기자 개인적으로도 처음 마주하는 기능이다. Car2X 통신 시스템은 같은 기능을 가진 주변 자동차 및 지능형 교통 시스템 등의 도로환경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훨씬 더 안전하게 달릴 수 있게 해준다.

당장은 크게 사용할 일이 없다. 그 기능을 가진 차들이 많아져야 하고 도로 인프라가 갖춰져야 제대로 쓸 수 있는 기능이다. 오늘보다 내일 더 쓸모있는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것도, 골프에. 영리한 판단이다. 많이 보급돼야 더 쓸모있는 기술이니, 많이 팔리는 차에 그 기능을 탑재하는 게 맞다. 그래서일 것이다. Car2X 기능은 모든 골프에 기본 적용된다.

기본적용되는 사항들을 살펴보면, 폭스바겐이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Car2X 외에도 차로 유지시스템, 보행자 예측 보호 시스템과 전방 추돌 경고 시스템을 포함하는 프런트 어시스트, 위 커넥트 및 위커넥트 플러스, 멀티 펑션 스티어링 휠, 오토 에어컨, 키리스 스타트 및 키리스 중앙잠금, 블루투스 폰, LED 헤드라이트, 15인치 스테인리스 휠이 기본이다. 기본형 모델을 흔히 깡통차라고 부르지만, 적어도 골프(새로운 트림 전략에 따라 골프의 기본 트림 이름 역시 골프다)를 그렇게 부를 수는 없겠다. 기본 트림 이름에 원래 이름인 골프를 사용하기로 한 데에서 ‘이름을 건 결기’를 본다.

아주 다양한 파워트레인 라인업은 역시 골프답다. 글로벌 시장의 모든 수요에 대응하려는 전략이다. eTSI에 포진한 3개의 마일드 하이브리드는 각각 110마력, 130마력, 150마력으로 다양화했다. 두 개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역시 204마력과 245마력 두 종류를 준비했다. 1.5 TSI 엔진은 130마력과 150마력이 있고, 1.0 TSI 엔진은 90마력과 110마력으로 준비했다.

2.0 TDI 엔진은 115마력과 150마력이 있다.

끝이 아니다. GTI, GTI TCR, 골프 R에 사용할 2.0 TSI, 천연가스와 가솔린을 사용할 수 있는 1.5TGI 엔진이 출시를 예고하고 있다. 작은 해치백 모델이 그 안에서 길을 잃을 만큼 아주 큰 집을 지은 셈이다. 골프만으로도 내차 고르는 재미가 만만치 않겠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접혔다 펴지는 컴바이너 타입이 아닌 윈드실드 투사 방식이다. 포르투갈의 쨍쨍한 햇볕 아래서도 앞 유리창에 뜨는 주행정보가 선명하다.

IQ 라이트는 상하 11개씩 두 줄로 배열된 총 22개의 LED 램프가 매트릭스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두운 밤길에서 마치 빛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종이를 찢어 접듯, 빛을 쪼개 비춰야 할 곳과 비추지 말아야 할 곳을 정확하게 구분해 작동한다. 그뿐 아니다. 속도, 주행 모드에도 대응해 빠르면 상향등, 느리면 하향등, 스포츠 모드에선 좀 더 빠르고 공격적으로 빛을 비추고, 에코, 컴포트 모드에선 조금 느리게 작동한다. IQ 라이트가 벌이는 현란한 빛의 쇼를 즐기기 위해 운전자가 해야 할 일은 헤드램프를 오토모드 A를 택하는 것뿐이다.

대형 고급 세단에서 이런 기능들을 만났다면, 약간의 감동이야 있었겠지만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작은 소형 해치백에 이런 최첨단 기능들을 서슴없이 적용했다는데 경악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폭스바겐은 골프에 무슨 짓을 한 건가.

외관은 날렵해졌지만, 뿌리를 숨기지는 못한다. 두터운 C 필러를 보면, 영락없는 골프다. 특유의 소형 해치백 실루엣도 잘 살려놓았다. 대부분의 경우 풀체인지 모델은 디자인의 승리로 마무리되지만, 골프는 아니다. 엔지니어, 특히 디지털 엔지니어의 완벽한 승리다. 소형 해치백을 완벽하게 재해석한 날렵한 모습으로 완성됐지만, 기술이 주는 충격이 너무 크다. 크게 변한 디자인에 눈길이 덜 가는 이유다.

공기 저항 계수는 0.3에서 0.275로 개선했다. 공기의 흐름이 어지럽게 흩어지는 해치백이지만 공기 저항을 효과적으로 줄였다. 덕분에 주행 중 바람 소리는 확실히 줄었다. 해치백 특유의 뒷바람 소리는 느끼기 힘들고, 오히려 차창과 지붕으로 넘어가는 바람 소리가 속도에 비해서 약하게 들릴 뿐이다. 노면 잡소리도 잘 잡았다. 노면 상태가 좋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중저속 구간에서는 실내로 들어오는 잡소리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수준.

락투락 2회전 하는 스티어링 휠은 날렵한 조향을 뒷받침한다. 도로에 널브러진 나뭇가지를 피해 조향을 급하게 하는데 반응이 정확하다. 차체 길이가 짧아 회전하는 느낌이 살아있다.

골프의 오늘, 2.0 TDI

2.0 TDI 엔진은 익을 대로 익었다. 7단 DSG가 그 힘을 부드럽게 조율한다. 듀얼 클러치의 직결감을 살리기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매치시켰다. 0-100km/h 가속 테스트를 한 차례 해본 그래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래프 어느 곳에서도 변속 충격의 흔적은 없다.

골프 2.0 TDI 7단 DSG 0-100km/h 가속 테스트 그래프, 9.84초를 기록했다. 메이커 발표 기록은 8.8초.

어쩌면 다소 약해 보이는 150마력이 힘을 단단하게 드러낸다. 소음과 진동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500rpm에서 2,000rpm 구간에서 한없이 편하다. 일상 주행에서 그 이상 엔진 회전수를 올릴 필요는 없겠다.

힘을 몰아 쓸 땐 과감하게 달린다. 단단한 하체가 거침없는 고속주행을 무리 없이 받쳐준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500 정도에 머문다. 여유가 있다.

요소수를 이중 분사하는 트윈 도징 SCR 시스템을 적용해 질소산화물 배출을 이전 세대보다 80%가량 줄였다는 설명이다. 아직 시장은 폭스바겐에, 특히 디젤에 호의적이지 않다. 이를 모를 리 없는 폭스바겐이지만 디젤엔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제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이 남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숙제다. TDI가 골프의 오늘인 이유다.

폭스바겐의 내일, 1.5 eTSI

1.5 eTSI에 올랐다. 150마력의 힘을 내는 모델이다. eTSI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핵심. 48V 시스템과 1.5 TSI 엔진, 7단 DSG 조합으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한다. 48V 벨트 스타터 제너레이터, 48V 리튬이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계기판을 통해서는 특징을 찾기 힘들다. 마일드 하이브리드임을 드러내는 부분이 없는 것. 다만 주행 중 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때, 주행 상황이 허락하면 rpm이 0으로 떨어진다. 엔진이 작동을 멈추는 것. 차가 달리는 중에도 엔진스톱이 일어난다. 이를 통해 주행 효율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엔진 재시동도 훨씬 부드럽고 조용하다.

얌전한 발걸음이지만,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제법 야무진 가속을 보인다. 전기 부스트 효과 덕이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을 사용하면서 효율과 성능을 개선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폭스바겐의 전동화 전략의 단초를 보여준다. 앞으로 더 많은 모델들이 이 시스템을 적용하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 1.5 eTSI가 폭스바겐의 내일인 이유다.

또 다른 재미, 1.5 TSI

1.5 TSI에는 새로 개발한 신형 6단 수동 변속기가 매칭된다. 한국 시장에 들어올 리가 없는 이유다. 그래서 더 타보고 싶었다. 수동변속기의 옛 느낌이 그리워서다.

옛 애인을 만난 듯. 아주 잠깐 손발을 맞춰본 뒤에는 곧 익숙하다. 그 사이 많이 관대해 졌다. 클러치를 밟을 타이밍을 놓쳐 시동이 꺼질 위기를 몇 차례 겪었지만, 시동이 꺼지는 일은 없었다. 한 박자 늦게 클러치 페달을 밟아도 꺼질 듯 잦아들던 엔진이 되살아난다. 아주 무딘 운전자가 아니라면, 시동 꺼트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시속 100km에서 2,000rpm을 마크한다. 엔진 배기량이 작은 만큼 회전수를 올려야 그 속도를 맞출 수 있는 것. 2단으로 시속 110km를 넘기는 놀라운 반응도 만날 수 있다.

오늘과 내일로 구분하는 만큼 굳이 이 차를 얘기하자면, 어제에 가깝다. 수동변속기의 손맛이 아련하게 떠올라서다. 다른 모델들은 시동 버튼을 직사각형으로 멋을 냈지만 이 녀석은 원형으로 이전 형태이고 변속레버 주변도 이전 모습에 가깝다.

그래도 재미는 더 있다. 수동변속의 재미가 크다. 또한 1.5 TSI에서는 견인 후크가 있다. 트렁크에 버튼을 누르면 범퍼 아래에 숨어있던 트레일러 견인용 후크가 튀어나온다. 이 작은 녀석이 트레일러를 끌고 달릴 수 있다는 것.

범퍼 안쪽에 숨어있는 게 하나 더 있다. TSI 뿐 아니라 TDI, eTSI에도 배기구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 범퍼 안쪽에 숨겨 놓았다.

12월, 독일 시장에서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보나 마나 전 세계에서 주문이 몰릴 터. 한국 시장에는 일러야 내년 하반기, 어쩌면 내후년에야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서 이 녀석을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학수고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알렉사를 이용한 음성인식 기술과 구글 맵을 이용한 정교한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완성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걱정이다. 유럽에서와 같은 수준의 높은 완성도를 한국 시장에서 구현하기는 쉽지 않아 보여서다. 알렉사는 한글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구글 맵은 한국에서는 정밀도가 떨어진다. 두고 볼 일이지만, 미리 걱정이 앞선다.

차로 유지시스템은 210km/h까지 커버한다고는 하지만 가끔씩 차로를 이탈하거나 차선을 밟는 일이 생겼다. 커버하는 속도 영역을 조금 낮추더라고 정밀도를 높이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후진하면 뒤를 비추는 카메라가 돌출되는데, 다시 들어갈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트렁크를 열려면 그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트렁크 앞에서 카메라가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카메라가 수납되는 부분에 트렁크 버튼도 있기 때문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