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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럭셔리, 더 뉴 그랜저

더 뉴 그랜저. 6세대 그랜저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다.

얼굴을 바꾼다는 페이스 리프트의 말처럼, 화끈하게 바꿨다. 풀체인지급 변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디자인 변화다.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라디에이터 그릴. 파라매트릭 쥬얼 패턴으로 화려한 모습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그릴 패턴에 맞춰 헤드램프도 마름모꼴로 디자인했다. 강렬한 인상을 전하기에 충분한, 잔뜩 힘을 준 디자인이다.

얼굴에 힘을 세게 줬다면 뒤태는 순하다. 좌우 리어램프를 이어주는 라인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차분하게 마무리했다.

인테리어는 몇 개의 컬러 옵션이 있다. 네이비, 블랙, 카키, 브라운 등은 하나의 컬러로 통일해 차분하고 진중한 분위기를 내는 반면, 베이지 컬러는 밝은 갈색 계열을 더한 투톤 컬러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다.

3.3 가솔린 캘리그래피 트림 풀옵션 모델을 탔다. 베이지 컬러의 환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든다. 큰 차지만 밝고 경쾌한 실내가 의외로 어울린다.

12.3인치 모니터 두 개를 이어붙여 계기판과 정보표시창을 구성하고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만물상의 창고다. 없는 게 없다.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쓸어 담아 놓은 만물상 창고처럼, 버튼을 누를 때마다 신박한 기능들이 튀어나온다. 내비게이션, 전화, 오디오, 자연의 소리 등은 물론이고 차량의 세부 기능을 조절하고 확인할 수 있다. 시트에 앉아 이것저것 누르며 살펴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주행모드에 따라 계기판은 화려한 그래픽을 선보이며 변한다. 1,920×720픽셀의 해상도로 깔끔하고 선명하게 정보를 전한다. 시선을 올리면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반긴다. 어디에 시선을 두든 필요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겠다.

센터페시아 아래에는 공조 기능을 담당하는 또 하나의 작은 흑백 모니터를 배치했다. 모니터를 통해 몇 단계를 거쳐야 필요한 기능에 도달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별도 버튼으로 따로 빼놓았다. 원샷원킬로 필요한 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는 것. 철저하게 운전자 편의를 중심으로 완성한 인테리어다. 버튼을 없애는 추세는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

원격 스마트 주차보조 시스템은 운전자가 차에서 내린 채로 차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다. 좁은 주차공간에 차를 넣고 뺄 수 있는 신박한 아이템. 운전석에 사람이 없어도 차가 움직일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준다. 이런 차 많지 않다.

12개의 스피커를 가진 JBL 오디오는 실내를 소리로 꽉 채운다. 볼륨을 올리면 스피커의 울림이 몸으로 직접 전해진다. 소리가 좋다.

3.3 가솔린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290마력, 35.0kgm의 힘을 만든다. 공차중량은 1,670kg. 힘은 세고 몸은 가볍다. 마력당 무게비는 5.75kg. 경쾌한 가속을 기대할 수 있는 파워 밸런스다.

2.5 회전하는 스티어링은 가볍다. 노면 굴곡을 따라 달리면서 부드럽게 쇼크를 걸러준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느낌도 잔진동 없이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마지막까지 저항 없이 밟힌다. 제법 힘을 쓴다. 가볍고 거침없이 달린다.

시속 100km에서 1,500rpm이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변속기를 내리면 3단 4,800rpm까지 변화한다. 5,000rpm 직전까지 오르는 3단, 100km/h에서도 차체는 차분한 편이다. 엔진 회전수를 올리면 바리톤 음색의 엔진 사운드가 굵게 드러난다. 그랜저에서 이런 엔진 소리를 들을 줄이야. 본격적인 엔진 사운드를 듣는 순간, 짧은 감탄사가 터졌다.

주행보조 시스템은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차로 중앙을 유지하고, 차간 거리 조절도 유연하게 해낸다. 터널 진입과 탈출 시 빛의 변화가 큰데도 차선을 놓치지 않고 편안한 주행을 이어간다. 현대차의 주행보조 시스템 완성도는 최상급이다. 수입차에 견줘도 우수한 편이다. 덕분에 운전이 무척 편하다. 안전은 기본, 편한 운전은 덤이다.

고속도로 주행보조 시스템은 내비게이션과 연동해 안전구간 감속, 곡선 구간 감속 등의 기능을 더해준다. 고속도로에 더해 자동차전용도로에서도 이 기능이 활성화된다. 전국적으로 6,000km 이상의 도로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팡팡 터지는 강한 힘이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빠르게 고속주행에 진입한다. 전륜구동 방식이어서 고속주행에서는 약간의 불안감이 있고 체감속도와 실체속도 간 큰 차이는 없다.

서스펜션은 딱딱하지도, 말랑하지도 않은 중간점을 잡았다. 편안한 승차감을 유지하면서 고속주행에서도 적당한 수준의 안정감을 확보했다.

엔진소리와 바람 소리는 대체로 섞여 들린다. rpm을 올리며 고속주행을 하면 바람 소리가 점점 세지지만, 엔진소리도 지지 않고 살아있다. 극한적인 속도에선 고속에서 바람 소리가 엔진 소리를 덮어버리게 마련인데 엔진 소리가 살아있다.

그랜저는 성공에 집착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임을 주장하는 것. 과거엔 그랬다. 80~90년대에 그랜저는 그야말로 성공의 상징이었다.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차가 많지 않았던, 단순한 사회였다. 쏘나타는 중산층의 차, 그랜저는 상류층의 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

2019년 오늘, 그랜저는 과거 쏘나타 정도의 차다. 굳이 성공과 관련해 의미 부여를 하자면 ’성공하고 싶어 열심히 오늘을 사는 중산층의 차 정도로 얘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랜저는 B급 럭셔리다. A급이 아니라 B급인 이유는 제네시스가 있어서다. 그랜저를 낮춰봐서가 아니다. 디자인 역시 최고 수준의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디자이너의 의욕을 한껏 과시한, 그래서 화려해 보이는 모습도 걸린다. 드러날 듯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아름다움에서 오히려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그랜저는 절제하기보다 과시하는 모습이다. B급 정서다. 나쁘지 않다. 대중 브랜드의 럭셔리로 본다면, 괜찮은 시도다.

화려한 디자인, 경쾌한 주행, 넉넉한 공간을 갖추고 알찬 기능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준대형 세단이다.

제일 아래 트림인 2.5 프리미엄이 3,294만 원. 최상위 트림인 3.3 캘리그래피는 4,349만 원이다. 옵션을 다 넣으면 4,663만 원이 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방향지시등 램프가 진행 방향의 역방향으로 화살표를 표시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마름모꼴 패턴을 이용해 방향지시등을 만들다 보니 왼쪽으로 가는데 램프는 오른쪽을 가리키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 직관에 반한다. 기능을 무시한 디자인이다.

트렁크를 열면 리어램프가 툭 튀어나와 위험해 보인다. 멋진 램프지만 안전하지는 않다. 안전을 무시한 디자인이다.

인테리어에서 12.3인치 모니터 두 개를 이어붙였는데 이음새 마무리가 아쉽다. 베젤은 거칠고 연결부위가 거칠게 드러나 있다.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테리어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결정적으로 깎아내리고 있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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