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씬하게 빠진 몸매는 언제봐도 매혹적이다. 포르쉐 파나메라. 여기에 GTS 배지를 붙였다. GTS는 63년 911 카레라 904에 처음 도입된 포르쉐의 고성능 버전이다. 파나메라보다 더 오래된 역사가 녹아있는 배지다. 지난 7월 신형 모델로 교체돼 국내 출시한 포르쉐 파나메라 GTS를 만났다.
911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즐기는 스포츠카라면, 파나메라는 아주 편하게 누리는 스포츠카다. 그중에서도 파나메라 GTS는 파나메라 터보와 더불어 궁극적인 고성능을 즐길 수 있다. 보통의 대형세단에서 맛보기 힘든 고성능을 안정된 자세로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차다.
편안함은 넓은 공간에서 시작된다. 길이가 5m를 넘는다. 5,050mm. 너비는 2m에 육박하는 1,935mm. 높이 1,425mm다. 휠베이스가 2,950mm로 3m에 가깝다. 실내는 따로 재볼 필요도 없이 넓다. 뒷좌석은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여유 있게 드나든다. 센터 터널이 아니라 벽을 세워 좌우를 분리하고 4인승으로 만들었다. 탑승 인원을 줄이는 대신 훨씬 더 고급스럽게 공간을 연출했다.
큰 덩치는 때로 의도하지 않은 불편함도 부른다. 좁은 공간을 만날 때다. 차와 사람이 뒤엉키는 좁은 골목, 협소한 주차장에서 그렇다.
V8 4.0ℓ 가솔린 엔진을 품은 엔진룸은 단정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차체의 비틀림 강성을 높여주는 롤바 3개로 엔진룸을 감쌌다. 내경과 행정이 86.0mm로 똑같은 ‘스퀘어 엔진’이 들어가 있다.
인테리어는 블랙 컬러를 바탕으로 곳곳에 빨간 포인트를 주고 있다. 12.3에 이르는 큰 모니터를 돌출시키지 않고 대시보드에 매립했다. 대시보드에 돌출되는 부분이 없게 하는 인테리어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게 정석이다. 안전을 해치지 않는 디자인의 모범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앞에 275/35 ZR21 뒤에 315/30 ZR21 사이즈의 피렐리 타이어를 사용했다. 브레이크는 앞에 6 피스톤 알루미늄 모노 블록, 뒤에는 4 피스톤을 적용했다. 디스크 직경은 앞 390mm, 뒤 365mm를 사용했다.
트렁크 적재공간은 500ℓ로, 뒷좌석을 접으면 1,340ℓ까지 확장된다. 뒷좌석은 3개 좌석 모두 각각 접을 수 있다.
운전석 스티어링휠 2.5회전. 5m 넘는 큰 덩치를 가졌지만, 스포츠카임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티어링 휠에 붙어있는 작은 휠로 주행모드를 택할 수 있다. 주행모드는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노멀, 인디비듀얼 등이 준비되어 있다.
3챔버 에어서스펜션이 차체 높이를 조절해 준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택하면 차 높이가 10mm 낮아진다.
센터패시아에 자리한 터치스크린 방식의 12.3인치 모니터로 차의 주요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 터치 반응이 빠를 뿐 아니라,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가면 터치가 이뤄지기 전에 필요한 부분들이 미리 활성화된다. 직관적으로 빠르게 사용할 수 있다.
스포츠 버킷 시트는 몸에 착 달라붙는다. 18개 방향으로 조절 가능한 시트는 알칸타라 가죽을 사용했다.
포르쉐니까 시동 스위치는 왼쪽에 있다. 엔진 사운드는 힘이 느껴지지만 절제된 느낌이 크다. 마음껏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다. 낮은 울림으로 차의 성능을 암시하지만 듣기 좋은 정도에서 적절하게 제어하고 있다.
숨죽이고 얌전하게 움직일 땐, 보통의 고급 대형세단과 다르지 않다. 차분하고 편안했다. 다만 서스펜션은 숨길 수 없다. 패인 길, 홈, 과속방지턱 등에서 서스펜션의 단단한 특성이 드러난다. 충격을 받아 안을 생각 없이 무시하듯 그냥 밟고 지난다.
V8 4.0 엔진은 8단 PDK의 조율을 거쳐 460마력의 힘을 드러낸다.
차선이탈 방지는 차선 유지까지 부드럽게 구현한다. 차선을 이리저리 밟는 일 없이 차로 중앙을 꾸준히 유지한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넘으면 스피커를 통해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낸다. 주의를 촉구하는 것. 크루즈컨트롤은 차간 거리 조절을 해주지 않는다. 그냥 정해진 속도로 달릴 줄만 안다. 어댑티브 크루즈가 아닌 것.
시속 100km에서 rpm은 8단 1,300에서 3단 5,000 사이를 커버한다. 8단에서 한없이 여유롭고, 3단에선 전력 질주에 나선 스포츠카의 뜨거운 피가 느껴진다. 더블 클러치의 직결감 있는 변속 반응도 재미있다.
어댑티브 에어서스펜션은 이 차를 더욱 기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최저지상고는 128mm지만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10mm를 더 낮춘다. 노면에 밀착하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도로에 달라붙어 달리는 것. 여기에 접혀있던 리어 스포일러가 펴지면서 안정감 있는 주행감을 만들어낸다.
시승차에는 보스 오디오가 적용됐다. 울림이 좋다. 모두 14개의 스피커를 통해 질감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좋은 오디오는 스포츠카와 궁합이 잘 맞는다.
가속페달에 킥다운 버튼은 없다. 페달을 밟으면 순식간에 고속 주행에 접어든다. 가속 시간이 빠르다. 순간 가속에 강한 스퀘어 엔진이 460마력의 힘을 받아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짧은 시간에 있는 힘을 다 쏟아낸다.
고속 주행 중에도 엔진 소리는 절제돼 있다. 마구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특유의 울림이 낮게 깔리는 특색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공간만 열리면 자꾸 달리게 된다. 바람 소리도 큰 편은 아니다. 체감속도가 낮은 이유다. 큰 덩치를 가졌지만, 스포츠카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잘 달린다. 고속주행안정감이 탁월해 고속에서도 불안감이 크지 않다. 빨리 달릴 땐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큰 도움이 된다. 앞만 보면 된다.
즉각 반응하는 조향의 느낌도 스포츠카답다. 덩치 큰 럭셔리 세단이 아니라 운전자와 한 몸을 이루는 스포츠카의 조향 성능을 그대로 담아냈다. 5.5m 길이가 느껴지지 않는 아주 빠릿빠릿한 조향감을 보인다.
코너에서 그 느낌은 절정을 이룬다. 사륜구동, 낮은 무게중심, 21인치 타이어, 단단한 서스펜션이 어우러져서 최고 수준의 코너링을 구현한다. 무엇보다 운전자가 큰 부담 없이 다룰 수 있다. 다루기 편안한 스포츠카인 것. 코너링을 끝낸 뒤에는 좀 더 강하게 돌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킷에서 탄다면 훨씬 더 재미있겠다.
시속 100km에서 강한 제동을 시도했다. 비상등이 스스로 켜지고 브레이크 페달을 통해서는 ABS가 작동하는 느낌이 온다. 브레이크가 큰 부담 없이 속도와 무게를 이겨낸다. 스포츠카의 기본, 강한 제동성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GPS 계측기를 장착하고 0-100km/h 가속 테스트를 시도했다. 론치콘트롤을 이용해 초반부터 강한 가속을 끌어낼 수 있다. 측정 결과 베스트 기록은 4.57초. 64.79m를 달려 100km/h를 주파했다. 메이커 공식 기록은 4.1초다.
파주를 출발해 서울 강남까지 55km를 달리며 측정해본 연비는 10.7km/L였다. 에어컨을 21도, 풍량 2단계로 켜고 운행한 결과다. 공인복합 연비 7.1km/L보다 리터당 3.6km를 더 달린 것. 두 자릿수 연비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록이다. 파나메라 GTS도 이런 연비를 보일 수 있음을 확인한 것. 물론 연비 생각하며 달릴 거라면 이 차를 탈 이유가 없다. 하지만 스포츠카를 탄다고 항상 스포츠 주행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차분하게 달리면 연비가 생각보다는 괜찮다.
판매가격은 2억 480만 원. (개별소비세율 3.5% 적용 시)
오종훈의 단도직입
2억 원을 넘는 가격이지만 편의 장비가 박하다. 일단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아니다. 차간 거리 조절은 운전자가 해야 한다. 반자율 운전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인 것. 키를 몸에 지니고 있어도 잠긴 문은 열리지 않는다. 리모컨 키로 도어 열림을 눌러줘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트에 통풍 기능도 없다. 열선 시트만 적용됐다. 오토스탑 기능이 작동해 엔진이 멈춘 상태가 되면 스티어릴휠도 잠긴다. 힘을 줘 돌리면 시동이 걸려버린다. 2억 원을 호가하는 자동차의 편의 장비로는 너무 박한 게 아닌가.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