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10월이었다. 처음 그랜저를 만난 날. 나는 그랜저를 타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뒷좌석의 편안함은 기억에 없다. 다만 그 차를 운전해줄 친구를 찾느라 애를 태웠던 기억은 뚜렷하다. 운전깨나 한다는 주변의 수많은 운전자 중 자동변속기를 운전할 줄 아는 이가 없어서였다. 자동변속기 차가 귀했던 시절이다. 그땐 그랬다.
그랜저를 택했던 건, 최고의 차였기 때문이다. 그랜저보다 더 좋은 차는 그땐 없었다. 일생의 단 하루, 최고의 사치 혹은 허영이 허락됐던 날, 평소에 탈 수 없는, 성공한 사람이나 탈 수 있던 최고의 차를 누렸던 거다.
신형 그랜저가 곧 출시를 예고하고 있다. 6세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더 뉴 그랜저’다. 현대차는 이 차의 키워드로 ‘성공’을 내세우고 있다. ‘성공하면 사는 차’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유튜브 등을 통해 최근 시작한 CF를 통해 이를 강조하고 있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2009년 등장한 그랜저 뉴 럭셔리의 광고 카피는 이랬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그랜저=성공’임을 말하고 있다. 10년 전이나,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지금까지 ‘성공’을 앞세우는 그랜저다.
과연 그런가. 2019년 오늘, 성공한 사람들은 그랜저를 탈까.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가 따로 있기는 한걸까. 사람들은 그랜저 타는 사람을 보면서 성공했다고 인정해줄까. 지금 이 시대에 ‘성공’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시간의 흐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랜저를 보면 안다. 그랜저, 시작은 미쓰비시 데보네어의 한국판이었다. 현대차가 자존심 접고 미쓰비시의 지도를 받아가며 만들었다. 이를테면 미쓰비시가 현대차의 스승이었다.
지금 어떤가. 현대차와 미쓰비시. 그 존재감의 차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다. 시대가 바뀌었다. 그랜저의 자리는 이제 10년 전 쏘나타 정도다. 성공에 연연하지 않는 장삼이사들의 차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전계약 하루만에 1만 7,000대가 예약됐다는 소식이 이를 잘 말해준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변화를 그랜저만 모르고 있다.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성공’은 요원한 일이다. 성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그랜저가 성공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