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AutoDiary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여전함, 그리고 새로움

8년 만의 풀체인지를 거쳐 올 뉴 레인지로버 이보크가 왔다.

전 세계에서 75만대가 팔린 명작이다. 한국에서만 1만 대가 팔렸다. 그만큼 한국시장이 중요해졌는데, 랜드로버에서는 ‘서울 펄 실버’라는 보디 컬러로 이에 보답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보디 컬러의 이름이다. 그만큼 한국이 중요한 시장이라는 반증이다.

매력적인 쿠페형 보디 스타일은 훨씬 더 세련되게 다듬었고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해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여전함과 새로움을 한 몸에 간직한 2세대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만났다. 시승차는 D180 퍼스트 에디션.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 기능이다. 엔진룸 아래 타이어가 있는 노면을 실제로 보는 듯 모니터에 투사해주는 이른바 ‘투명 보닛’이라 불리는 기능이다. 아쉽게도 시승차에는 적용되어 있지 않았다. 자료 화면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프로드에서는 가장 유익한 기능일 텐데 못 만나서 아쉬웠다. 런치 에디션을 택하면 만날 수 있다는 설명. 후에 상품 개선을 통해 좀 더 많은 트림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 기능이 ‘신기한 기술’이라면 디젤 모델에 적용되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능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48V 리튬 이온 배터리를 사용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구동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 시속 17km 아래로 속도가 떨어지면 시동이 미리 꺼진다. 엔진 스톱이 미리 일어나는 것. 연료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또한 회생제동을 통해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해 가속할 때 동력을 보조한다. 5% 정도 연료효율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는 게 랜드로버의 설명이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도심 정체 구간에서 효과가 크다.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재미있는 게 클리어 사이트 룸미러다. 차의 후방 시야를 카메라를 통해 룸미러에 시원한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 거울로 사용하는 룸미러가 모니터로 변한다. 사각 없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화면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숨어 있다 나오는 도어 그립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미 몇몇 다른 브랜드에서 만나본 타입이어서다. 도어 그립이 필요할 때만 드러나고 달릴 때는 차체 안으로 숨겨지는 만큼 바람 저항을 받을 일이 줄었다.

실내는 차분하고 고급스럽다. 센터패시아에 위아래로 배치한 듀얼 터치 프로 모니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깨끗하게 정돈된 센터패시아에는 두 개의 모니터 말고는 이렇다 할 게 없다. 버튼도 몇 개 없다. 엔진 스타트 버튼까지 5개가 전부. 미니멀라이즈 인테리어의 진수다. 필요한 기능은 모두 듀얼 모니터를 터치해 조작할 수 있다. 손가락 끝으로 차의 모든 기능을 찾아서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것.

레인지로버의 자랑,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은 온로드는 물론 오프로드 주행모드까지 선택할 수 있다. 에코, 컴포트, 스포츠, 잔디자갈눈길, 진흙, 모레, 오토 모드까지 다양한 주행모드를 제공한다. 운전자는 도로 상태를 보고 주행 모드를 선택하면 구동력을 알아서 최적화시켜준다. 오프로드에서도 마찬가지다. 탁월한 오프로드 주행 능력은 운전자가 아니라 이보크가 보여주는 것. 운전자는 어떤 도로에서든 편하게 차를 다루면 된다.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가 없다.

충돌방지, 차선변경 보조 긴급제동, 후측방 접근차량 모니터링 등이 담긴 주행보조 시스템을 갖췄다. 제동과 조향의 개입 강도도 조절할 수 있다. 운전을 편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보조해주는 시스템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필요한 주행 정보만 골라 깨끗하게 앞 유리창에 투사한다.

뒷좌석 시트는 몸이 파묻히는 자세가 된다. 시야를 확보하려고 시트를 높이지 않고 엉덩이가 깊숙하게 들어가 앉게 만들었다. 자연히 시트에 몸을 기대면서 편안한 자세가 되고 시선은 지붕을 향하게 된다. 글래스 루프가 차창 밖 풍경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럭셔리 컴팩트 SUV는 공간의 제약을 어떻게 푸느냐는 난제를 만날 수밖에 없다. 럭셔리와 컴팩트는 어쩌면 함께 공존하기 힘든 상극인 요소여서다. 좁은 실내가 주는 옹색함에서 고급스러움을 살려내기는 힘들다. 이보크는 영리한 패키징으로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고 있다.

휠베이스를 21mm 늘여 최소한의 공간 확장을 이루고 있고, 시트 등받이 안쪽을 파고들어 조금 더 공간을 만들어냈다. 무릎 앞으로는 주먹 두 개가 꽉 차게 들어간다. 머리 위로는 주먹 하나 겨우 들어가는 공간. 시원한 풍경을 보여주는 글래스 루프 덕에 머리 위 압박은 크지 않다.

여기에 최고급 소재들을 사용해 럭셔리함을 더했다. 고급스러움의 마침표를 찍는 요소로 메르디앙 오디오를 꼽을만하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귀를 호강시킨다. 볼륨을 적당히 올리면 스피커의 울림이 몸으로 전해진다.

앞에 맥퍼슨, 뒤에 인테그럴 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은 적당한 쿠션으로 차체를 받쳐준다. 도로 굴곡을 타고 넘는 움직임이 딱딱하지도 물렁하지도 않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잘 살려주는 세심한 세팅이다.

최저지상고 150mm, 차체 높이는 1,649mm로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시트 포지션은 높은 편이다. 도로를 내려다보며 달리는 느낌이다. 차창의 아랫부분이 어깨보다 많이 내려와 있다. 탁 트인 개방감이 시원하다.

시속 100km에서 rpm은 1,500을 마크한다. ZF의 9단 변속기다. 잘게 쪼개서 변속하는 스타일이다. 효율과 성능에 모두 유리한 다단변속기다. 100km/h를 유지하며 5단까지 수동 변속을 할 수 있다. 5단에서 rpm은 3,200.

여유 있게 가속을 이어간다. 변속은 부드럽다. 속도를 올려도 바람 소리는 크지 않고 엔진 소리도 낮게 깔리는 정도로 들린다. 시끄럽지 않다.

고속주행에서 차체의 흔들림은 속도를 감안하면 안정적이다. 차체 높이가 있는 SUV지만 속도를 높여도 진동이 증폭되는 느낌이 아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하고 있다. 편안함을 잃지 않는다. 체감속도와 실제 속도 간 괴리가 크다. 차의 안정감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작지만 럭셔리 SUV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시승 도중 간간이 소나기를 만났다. 젖은 노면이지만 사륜구동 시스템에 힘입어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180마력, 1,985kg의 공차중량, 마력당 무게비는 11kg으로 힘의 효율이 우수한 편은 아니다. 무한 질주로 이어지는 고성능일 수 없는 힘. 꾸준히 속도를 올려 안정적인 고속주행을 이어간다. 경제력 있는 젊은 소비자가 편하게 탈 수 있는 충분히 고급스러운 SUV다. 고급스럽고 편하다. 그리고 쾌적하다.

급제동을 시도했다. 충격을 넘을 땐 부드럽기까지 한 서스펜션이 강한 제동에서는 단단하게 버텨준다. 앞부분이 버티며 어느 정도의 노즈다이브로 제동을 마감한다. 속도에 지지 않는 제동력을 갖춘 것.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아나갈 땐 차체가 기우는 느낌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차체의 높이가 있어서다. 하지만 서스펜션이 잘 버텨주면서 코너링 도중에 가속을 시도할 수도 있었다. 사륜구동과 잘 조율된 서스펜션, 그리고 타이어가 합을 맞추며 정확한 코너링을 구사한다.

GPS 계측기를 이용해 0~100km/h 가속 테스트를 시도했다. 강한 출발에 트랙션 컨트롤이 개입한다. 멈칫거리며 한 박자 쉬고 가속하는 것. 이후 꾸준히 가속을 이어갔다. 큰 힘을 한꺼번에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차근차근 속도를 올려간다. 10.98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했다.

파주에서 출발해 서울 교대역까지 55km를 달리며 측정해본 연비는 13.5km/L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의 지원에 힘입어 공인복합연비 11.9km/L보다 우수한 기록을 보였다. 체증구간이 많아 기대보다는 못한 연비였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성질 급한 오토스탑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속도가 시속 17km 아래로 내려가면 스르르 시동이 먼저 꺼진다. 차가 멈추기도 전에 시동이 꺼지는 반응이 재미있다. 당연히 연료효율에도 도움이 된다.

시승차인 D180 퍼스트 에디션은 이보크 라인업 중 가장 비싸다. 기준 가격은 8,200만 원으로 올해 말까지 유지되는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을 반영하면 8,090만 원. 가장 낮은 가격은 D150s 6,800만 원으로 개소세 인하분을 반영하면 6,710만 원이다. 가격면에서 어느 정도 선택의 폭을 갖춘 셈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주행보조장치는 완성도를 조금 더 높여야겠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차선이탈방지장치를 활성화해 반자율운전을 시도하면 차선을 밟는 경향이 있다. 차선 중앙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하는 것. 좌우측 차선 안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드라이브 어시스트, 즉 운전보조 장치라는 본래의 취지를 만족시키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센터패시아에 자리한 두 개의 정보 표시 모니터인 터치 프로 듀오는 표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지문과 먼지에 약하다. 한나절 시승하는 동안 만진 지문이 모니터 표면에 어지럽게 남아 있다. 어쩔 수 없지만 아쉽다. 자주 닦아주는 수밖에 없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