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7시리즈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합류했다. BMW 745 Le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다. 부르다 지칠 만큼 긴 이름이다. 더 길게 부르면 BMW 745 Le i 퍼포먼스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많은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6세대 7시리즈 부분변경 모델이지만 풀체인지에 버금가는 변화다. 키드니 그릴은 더 커졌고 옆모습 아랫부분에 배치한 에어 브리더는 90도 각도를 이루며 길고 당당한 모습을 완성했다. 길다. 5,260mm다. 덕분에 아쉬울 게 없는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뒷좌석에 앉으면 공간 그 자체가 주는 호화로움을 만난다. 앞뒤로 분리된 선루프에는 수많은 패턴을 넣어 앰비언트 라이트와 연동하는 조명효과까지 넣었다.

실내는 4개 구역으로 정확하게 구분된다. 마사지 시트, 온도, 엔터테인먼트 등을 옆좌석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조수석에만 개별 모니터가 없다. 5인승이지만 뒷좌석 가운데 자리는 없는 셈 치고 4인승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다. 뒷좌석에서는 갤럭시 탭을 이용해 주요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차고 넘치는 공간에 최고급 소재로 인테리어를 마감했다. 플래그십 세단임을 강조하지 않아도 온몸이 호화로움을 느낀다.

직렬 6기통 3.0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에 전기 모터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한다. 엔진 286마력, 모터 113마력, 총 시스템 출력은 394마력이다. 공차중량 2,220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5.63kg이 된다. 이것저것 다 담느라 무거워졌지만 엔진과 모터가 함께 힘을 써 2.2t이 넘는 무게를 너끈히 끌고 달린다. 메이커가 밝히는 이 차의 0~100km/h 가속 시간은 5.3초. GPS 계측기를 사용해 측정해본 실제 가속 시간은 5.37초로 큰 차이가 없다.

전기 모터로는 1회 충전으로 35km까지 달린다고 인증을 받았다. 실제로는 훨씬 더 오래,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유럽에서는 1회 충전으로 50~58km까지 주행한다고 인증받았다. 한국의 인증 조건이 그만큼 더 까다롭다.

인테리어 소재만 최고급인 게 아니다. BMW는 양산차에 적용 가능한 거의 모든 기술을 이 차에 담고 있다. 셀프 레벨링 기능을 가진 에어서스펜션을 포함하는 어댑티브 서스펜션, 드라이빙 어시스트 프로, 뒷좌석에서도 가능한 터치 커맨드, 후진 어시스트 등등. 기술은 다양하고 점차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다. 제스처 컨트롤과 후진 어시스트는 BMW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기능이다.

차를 조작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음성제어, 터치 컨트롤, 제스처 컨트롤, 스티어링 휠 버튼, i 드라이브 컨트롤 등이 있다. 편한 방법으로 조작하면 된다. 차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마련해 놓은 것. 자동차가 점차 똑똑해지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지라 거칠게 내달리는 법이 없다. 조용조용 숨을 죽이고 움직이는데, 엄청 빠르고 힘이 세다. 단단한 서스펜션은 노면 충격을 만나면 부드럽게 변한다. 노면 상태에 따라 서스펜션의 미묘한 변화가 느껴진다. 충격을 맞받아치지 않고 살짝 품어 안으면 넘어가는 느낌이다.

호쾌한 가속은 조용하다. 묘한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다. 중저속에서는 물론 고속에 이르기까지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엔진 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다. 엔진과 모터는 사이좋은 형제처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서로 양보한다. 엔진은 가능하면 모터에 양보하고 뒷전에 물러앉은 느낌. 엔진은 모터 뒤에 숨어 있었다.

엔진이 가동하는 구간에서도 BMW 특유의 호쾌하고 힘 있는 엔진 사운드를 들려주지 않는다. 스포츠 모드를 택해도 엔진 사운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고속구간에서 바람 소리에 묻힐 정도의 엔진 사운드다. 주행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BMW 특유의 가속 느낌이 이 차에는 없다. “BMW 맞아?”하는 생각이 들 정도. 쏜살같이 속도를 높이는 가속감은 분명 BMW 맞는데, 엔진 사운드를 제대로 듣기 힘들다.

변화의 조짐이다. BMW는 세계시장에서 지난해에 14만대, 올해에는 50만대의 전동화 모델을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이제 많은 전동화 모델들이 이처럼 모터를 품고 엔진 숨을 죽인 채 달려갈 것이다. BMW 745 Le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효율은 놀랍다. 숫자가 말해준다.

연비 체크를 위해 하이브리드 모드 위주로 파주를 출발해 서울 교대역까지 55km를 경제 운전으로 달렸다. 출발할 때 배터리 잔량은 약 50%. 드라이브 e 모드, 그러니까 배터리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는 14km였다. 실제로는 22km를 달린 뒤에 엔진 가동을 시작했다. 드라이브 e 모드는 시속 140km까지 커버한다. 배터리 잔량이 있으면 시속 140km 구간 안에서 모터가 거의 100% 작동한다. 엔진이 끼어들 틈이 없다.

주행 데이터를 보면 55.4km 구간에서 전기 모터가 커버한 거리가 31km에 달했다. 출발 당시 배터리 잔량으로 22km를 달렸고, 그 이후에도 회생제동 시스템을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해가며 9km 정도를 더 전기 모터가 커버했다. 배터리를 완충하고 나섰더라면 엔진이 끼어들 틈은 거의 없었겠다. 활동반경이 30~40km 구간이라면 기름을 쓰지 않고 전기 모터로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효율이다. 전기차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배터리 컨트롤을 활성화하면 배터리 잔량을 지정해서 관리할 수 있다. 배터리 잔량 50%로 지정하면 그 수준을 이하에서는 엔진이 개입해 배터리를 충전해 두는 것. 좀 더 영리하게 배터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배터리는 기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봄가을에 최고 성능을 보이고 혹한 혹서기때에는 배터리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다. 이를 감안해야 한다.

파주-서울 55km 구간을 달린 최종 연비는 20.4km/L였다. 모터와 엔진을 합산한 연비여서 판단하기가 다소 복잡하지만, 어쨌든 BMW의 플래그십 세단인, 2.2t이 넘는 무게를 가진 7시리즈가 이런 연비를 보인다는 것, 믿기 힘든 일이다. 공인 복합연비는 엔진이 10km/L, 모터가 2.9km/kWh다.

그동안 느꼈던 BMW의 주행 질감과는 확연히 다르다. 적당한 엔진 사운드를 즐기며 호쾌한 주행을 즐기는 게 지금까지의 BMW였다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한 이 차는 엔진 사운드를 묻어버리고, 조용히 질주한다. 조용한 쾌속 질주의 느낌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듯. 직렬 6기통 엔진을 세로로 놓고 뒷좌석 아래에 고전압 배터리를 배치해 전후좌우의 균형을 잘 맞췄다. 차의 거동이 안정된 이유다. 3m를 훌쩍 넘어 3,210mm에 달하는 휠베이스도 차의 안정감을 확보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신형 7시리즈는 모델 라인업이 화려하다. 디젤과 가솔린 엔진, 하이브리드, 롱 보디와 쇼트 보디, X 드라이브와 S 드라이브, M 스포츠 패키지와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 등의 요소를 조합해 아주 많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아주 촘촘하게 그물을 짰다. 1억 3,700만 원인 730d부터 2억 3,220만 원인 M760 Li X 드라이브까지 라인업을 펼쳤다. 시승차인 BMW 745 Le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는 1억 6,210만 원.

사족.

긴 이름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다. 745에서 의미 있는 숫자는 7뿐이다. 원래는 배기량을 의미했으나 다운사이징 흐름이 시작되면서 나머지 두 자리 숫자는 의미를 잃고 허공에 떠돌고 있다. 배기량도 출력도 아닌 대강 어림잡는 숫자 정도의 의미로 다가올 뿐이다. ‘Le 디자인 퓨어 엑셀런스’는 나름 의미를 담고 있지만 너무 길다. 숫자를 앞세워 단순명쾌했던 이름 체계가 원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너무 복잡하고 길어졌다. 다시 처음을 되돌아볼 때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트렁크가 좁다. 고전압 배터리가 공간을 차지하면서 트렁크의 바닥이 높게 올라온 탓이다. 트렁크를 열면 깊이가 없는 평평한 바닥을 마주한다. 4명이 함께 이 차 타고 골프장 가기는 힘들겠다. 차급에 비해선 아쉬운 부분이다.

패들 시프트를 뺐다. 다이내믹한 주행의 즐거움을 원천차단 했다. 회생제동 시스템의 강도를 조절하는데에도 패들 시프트가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이 또한 불가능하다. 친환경 자동차라는 성격에 맞춰 패들 시프트를 적용하지 않았겠다고 짐작은 해보지만, 그래도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