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이 한국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느 때와 다르다. 일본 본사가 고민하고 있어서다. 관련 보도도 외신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동안의 한국 시장 철수설은 근원지가 한국으로 찻잔 속 태풍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사태는 심각해 보인다. 일본 본사도, 한국 지사도 이와 관련해 가타부타 의견 표명도 없다. 실제 철수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
닛산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한일갈등의 국면에서 철수를 단행하는 것이어서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크다. 판매 부진을 명분으로 철수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어서다. 한일문제에 유난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한국 소비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지금 가면 다시 오기 힘든 이유다. 닛산은 이를 모를까.
일시적인 이유로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긴 호흡으로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의 실적 부진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한국 시장 철수도 그런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 지사도 이에 준하는 구조조정을 하면 된다.
아무리 흉년이라도 씨감자를 먹어버리면 안 된다. 힘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면 씨감자를 뿌려야 다시 수확할 수 있다. 씨감자가 없으면 다시 오는 봄이 의미가 없다. 구조조정을 핑계로 한국 시장에서 ‘완전 철수’는 흉년을 핑계로 씨감자를 먹어버리는 일이다. 돌아올 수 없는 바다를 건너가 버리는 것.
닛산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2004년, 인피니티 브래드를 앞세워서다. 닛산 브랜드는 2008년 한국땅을 밟았다. 다른 수입차 브랜드에 비해 비교적 늦었다. 수입차 개방의 바람을 타고 한국 수입차 시장이 활황일 때 한국을 찾은 닛산이 잠시 위기가 왔다고 냉큼 철수해 버리는 것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행태에 다름 아니다. 닛산의 실적 부진이 그런 태도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까. 1997년 IMF 사태 이후 수입차는 ‘외세의 상징’으로 지탄의 대상이었다. 98년 1월 벤츠의 판매량은 5대였다. 서울 강남에서조차 수입차에 주유를 거부하는 주유소가 있을 정도였다. 많은 수입차 브랜드들이 판매를 중단하고, 가격을 올리는 와중에 한국의 시장 회복을 예견하고 투자를 늘려 선제적으로 대응한 브랜드도 있었다.
투자를 늘리는 선제적 대응까지 기대하기는 힘들다 해도, 시장이 얼어붙을 때에는 상황이 나아질 때를 대비해 다음 단계를 차분히 준비하는 게 스스로를 위해서도,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서도 올바른 일이다.
입바른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흔히 한국 수입차 시장은 가장 까다로운 시장 중 하나라고 수입차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한국 시장에서 실패한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실적이 부진한 브랜드들은 수시로 철수설에 시달려왔지만 실제 철수를 단행한 예는 거의 없다. 피아트, 크라이슬러가 판매를 접었지만 같은 계열의 지프가 남아 있어 재진출의 발판은 남겨 놓고 있다. IMF 때 란치아가 철수했고, 사브는 스웨덴 본사가 파산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사업이 정리됐다. 2008년 한국에 온 미쓰비시는 2013년 철수했고, 3년간의 한국 사업을 2012년에 정리한 스바루가 있다. 그 정도다. 공교롭게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브랜드중 상당수가 일본 브랜드다.
닛산이 여기에 이름을 올릴지 두고 볼 일이다. 힘든 시기를 함께 지낸 오랜 친구로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