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급스러운 볼보를 만났다. 볼보의 플래그십 세단 S90 T8 AWD 엑셀런스다. T8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임을 의미한다. S90 최고 트림으로 볼보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럭셔리를 품은 차다. 9900만 원. 1억 주면 100만 원 돌려주는 가격은 차급에 비해 합리적이다.
폭우가 쏟아진 뒤, 햇볕이 쨍하고, 다시 흐린 뒤 가랑비가 흩날리는 8월 어느 습했던 날, 이 차를 만났다.
5085x1880x1450mm의 크기. T5보다 차 길이를 120mm 늘였는데 이 중 119mm를 휠베이스를 확대하는 데 썼다. 덕분에 실내 공간은 넓다. 아주 넓다. 공간 그 자체가 주는 고급스러움을 누리는 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스웨덴 특산품인 크리스털 샴페인 잔과 잔 받침은 스웨디시 럭셔리를 상징하는 소품이다. 변속레버도 크리스털로 만들어 남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넓은 공간을 4인승으로 구성해 쇼퍼드리븐카로 만들었다. 인테리어에 사용한 소재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스웨덴산 원목, 크리스털, 최고급 가죽 등이 넓은 공간을 채우고 있다. 베이지색 시트 덕분에 실내는 환하다. 지붕은 스웨이드 가죽으로 마감했다. 세심하고 감각 있는 인테리어다.
뒷좌석 좌우로 가죽으로 마감한 간이 테이블이 있고, 냉장고도 준비해 뒀다. 차가운 샴페인을 유리잔에 따라 마시는 넘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 고급스러움은 차고 넘친다. 더 이상 뭐가 필요할까. 완벽에 가까운 오너석이다.
조수석은 버튼을 눌러 앞으로 바짝 밀어낼 수 있다. 뒷자리 오너석을 위해서다. 오너의 자리는 등받이도 누일 수 있다. 4개의 시트는 모두 마사지 기능도 갖췄다.
8인치 모니터를 세로로 배치한 센터패시아는 이제 볼보의 상징적인 인테리어로 익숙한 모습. 19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바워스 앤 윌킨스 오디오는 환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2.0 가솔린 엔진에 터보와 슈퍼차저를 함께 적용해 318마력의 힘을 확보하고. 여기에 전기모터 87마력이 더해진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총 출력은 405마력.
차체의 앞뒤 무게 균형도 최적화했다. 배터리를 뒷 시트 아래에 배치하고 스웨덴 할덱스사의 5세대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춘 덕이다.
5m가 넘는 길이지만 스티어링 휠은 2.8회전에 그친다. 패들 시프트는 없다.
시동을 켜도 엔진은 잠에서 깨지 않는다. 대신 전기 모터가 출발 대기 상태로 전환한다. 가속페달을 살며시 밟으면 전기 모터로 첫발을 뗀다. 주행모드는 AWD, 퓨어, 하이브리드, 인디비듀얼, 파워 등 모두 5개 모드가 있다.
크리스털로 만든 변속레버는 일반적인 자동변속기 조절 레버와 약간의 이질감이 있다. D 레인지와 함께 회생제동을 조절하는 B 모드가 있어서다. 또한 R을 택하려면 레버를 위로 두 번 밀어야 한다. 패들 시프트도 없어 변속레버를 자주 만져줘야 한다.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기존 S90의 편안함에 전기모터의 조용함이 더해져 럭셔리 세단의 궁극적인 편안함을 만들어낸다. 배터리가 완충됐을 때 28km를 EV 상태로 달릴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출퇴근 거리가 그 범위 이내라면 휘발유 한 방울 소비하지 않고 전기차로 이 차를 사용할 수도 있겠다. 물론 주행 패턴이나 도로상태에 따라 그 거리는 오차가 있을 수 있다.
볼보의 또 다른 자랑, 파일럿 어시스트 2는 훨씬 더 완성도를 높인 반자율운전 시스템으로도 작동한다. 차 스스로 차로 중앙을 유지하고 차간거리도 유연하게 맞춘다. 코너에서도 차선을 밟는 일이 거의 없다. 운전자의 손을 가만히 스티어링휠에 얹어놓고 힘을 주지 않아도 조향이 일어난다. 처음 이 부분을 접한다면, 나 말고 누군가의 힘이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중접합 유리를 사용하는 등 NVH 대책을 충실히 해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을 잘 걸러준다. 노면 상태가 좋은 곳에서는 최고 수준의 실내 정숙성을 유지한다.
공차중량 2,185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5.3kg이 된다. 메이커가 밝히는 0-100km/h 가속 시간은 4.9초. GPS 계측기를 이용해 측정해본 결과는 6.03초가 가장 빨랐다.
시속 100km에서 엔진 rpm은 1,600 근처에 머문다. 수동 변속은 변속레버의 B 레인지를 이용해 시프트다운만 가능하다. 레버를 아래로 툭툭 밀면 시프트다운이 일어나는 것. 시프트업을 하려고 레버를 위로 밀면 D 레인지로 가버린다. 시프트업 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엔진 사운드는 극한 속도에서도 편하다. 편안하게 숨을 쉬면서 100m 달리기를 하는 느낌. 있는 힘 다 쏟으며 달리지만 힘들어하지 않는다. 고속에서도 안정적이다. 바람 소리도 크지 않아서 고속인데 조용하고 흔들림은 적다.
리어 서스펜션은 멀티링크를 사용하고 다시 리프 스프링을 더했다. 흔들림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효과적인 지오메트리를 확보했다. 앞에는 더블 위시본을 쓴다. 또한 4바퀴 모두에 에어서스펜션이 적용됐다. 여기에 245/40R20 사이즈의 피렐리타이어, 할덱스의 5세대 AWD가 궁합을 맞추며 차의 흔들림을 제어하고 구동력을 유지한다. 빨리 달리는 데 전혀 불안하지 않은 묘한 상황을 즐기게 되는 요인들이다. 덕분에 코너에서도 안정감 있게 달린다. 부드러운 듯 조금 기우는 느낌이 있지만 조향은 중립을 유지하며 운전자의 요구를 너끈히 받아낸다.
브레이크는 느낌이 색다르다. 다 밟혔나 싶어 발을 뗄 즈음 한 번 더 꾹 밟으면 더 깊게 밟힌다. 급제동하면 브레이크 페달이 한없이 깊게 밟히는 기분이다. 아주 강한 제동을 걸어도 속도에 지지 않고 잘 버티며 속도를 줄인다. 유연하고 정확한 제동이다.
쇼퍼 드리븐카라는 것도 잊은 채 정신줄 놓고 신나게 달렸다. 쇼퍼 드리븐카지만 강하게 몰아붙이는 스포츠 드라이빙도 훌륭하게 소화한다.
최고 수준의 럭셔리 세단으로 품위 있게 움직이다가도 운전자가 다그치면 스포츠카를 따돌릴 기세로 거침없이 내닫는다. 럭셔리 세단을 원하든, 스포츠카를 원하든 운전자가 원하는 반응 그 이상을 보여준다.
연비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효율을 무시해선 안 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여서다. 파주를 출발해 서울까지 55km를 경제 운전으로 달리며 측정해본 이 차의 실 주행연비는 14.3km/L 수준. 2.2t의 무게를 끌고 이처럼 우수한 연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주행의 상당 구간을 배터리 동력으로만 움직였기 때문이다. 엑셀 오프하면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무동력 요트처럼 엔진도 배터리도 쉬게 하고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동력의 흐름을 보며 엔진과 배터리 사이에서 줄을 타듯 움직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연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패들시프트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 수동 변속으로 시프트 업을 할 방법이 없어서다. 변속레버로는 시프트다운만 가능하다. 회생 제동 시스템을 정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도 패들 시프트가 훨씬 효과적이다. 스티어링 휠에는 음성명령 버튼이 있지만 작동되지 않는다. 있다면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사용할 수 없다면 버튼도 없애는 게 맞다. 있는데 쓰지 못하면 오너 입장에선 기분 좋을 리가 없다. 실내에 냉장고를 넣다 보니 트렁크 한가운데가 불쑥 나와 있다. 공간이 좁아질 뿐 아니라 효율도 낮아진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