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건. 세단과 SUV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차다. 그런데 한국에선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왜건이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하지만 수입차 시장에서라면 굳이 성공을 논할 필요는 없다. 많이 팔리지 않아도 원하는 고객들이 만족스럽게 누릴 수 있다면 나름 의미 있는 일이다. 왜건의 ‘소확행’인 셈.

푸조가 508 SW를 내놨다. 플래그십 세단인 508의 왜건 버전이다. 4,780mm, 길이를 30mm 늘려 공간을 확장하고 세단보다 훨씬 넓은 쓰임새를 갖췄다.

쿠페 라인의 디자인에 왜건을 적용하는 게 디자인 측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름다운 보디라인을 먼저 고민하는 게 쿠페다. 왜건은 다소 투박해도 다양한 활용성을 먼저 생각하게 마련이다. 결국 차의 뒷모습에서 결정되게 마련인데, 루프라인이 뒤로 갈수록 낮아지면 쿠페가 되고, 루프라인을 살려 공간을 확장하면 왜건이다. 쿠페 라인을 적용한 왜건은 어쩌면 형용모순이다.

508SW는 트릭같은 디자인으로 서로 부딪히는 요소를 잘 융합시켰다. 지붕선은 크게 낮추지 않았지만, 창틀을 경사지게 만든 것. 시각적으로 쿠페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왜건으로 만들었다.

508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역시 헤드램프와 찢어진 주간 주행등이다. 주간 주행등은 사자의 송곳니를 형상화했다는 설명. 칼자국 난 얼굴을 연상하는 건, 보는 이의 마음이 그리 단정하지 않은 탓이다. 리어 램프에는 사자 발톱이 있다.

더블 플랫 스티어링휠은 작다. 위아래를 직선으로 만들어 휠을 돌리는 느낌이 색다르다. 운전석에 앉으면 레이싱 게임을 하는 느낌을 받는 이유다.

운전자의 선택에 따라 바뀌는 계기판은 그래픽이 현란하다. 계기판은 위로, 스티어링 휠은 아래로 배치했다. 이른바 헤드업 인스트루먼트 패널을 적용한 i콕핏 디자인. 자연스럽게 앞을 볼 때 시선이 머무는 자리 아래로 계기판을 배치해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필요 없게 만든 것.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오랜 고민의 산물일 터. 푸조는 늘 어딘가에 남다른 아이디어를 드러내는 브랜드다.

센터패시아에는 피아노 건반 같은 토글스위치로 필요한 기능을 선택하게 했다. 내비게이션을 탑재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을 USB 포트에 연결하면 안드로이드 오토나 애플 카플레이가 바로 작동한다. 센터패시아 안쪽 숨은 공간에는 스마트폰 무선충전장치도 만들어놨다.

안마 기능이 있는 나파 가죽 시트에 탄소섬유 패턴을 넣은 대시보드는 너무 무겁지 않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2.0 블루 HDi엔진은 177마력의 힘을 낸다. 공차중량 1,694kg, 마력당 무게비는 9.57kg. GPS 계측기를 이용해 7차례 측정해본 이 차의 0-100km/h 가속 시간은 10.71초가 가장 빨랐다. 가장 느린 기록은 11.03초.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힘이다. 가속을 이어가면 꾸준히 힘을 낸다. 중형 세단 508에서 만나는 무난한 성능이 왜건에도 그대로 이식됐다. 시승차에는 루프 캐리어가 있어서 100km/h를 넘어서면 바람소리가 커졌다. 공기의 저항이 실제 이상으로 커지는 것. 바람소리가 모든 소리를 덮어버릴 정도다.

차의 흔들림은 크지 않았다. 아주 빠른 속도에서도, 앞바퀴굴림 차로서는 우수한 안정감을 유지했다. 푸조 특유의 조향감은 작은 스티어링휠 덕분에 조금 더 강하게 다가온다. 조금만 움직여도 반응이 크게 오는 것. 멀티 테스킹을 하듯 강한 제동과 큰 조향을 함께 시도해도 거뜬히 받아낸다.

파주를 출발해 서울까지 55km를 달리며 실주행 연비를 살펴봤다. 결과는 19.6km/L. 공인복합 연비는 13.3km/L다. 배기가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유로6보다 훨씬 더 가혹한 WLTP 기준을 너끈히 통과한다고 푸조는 밝히고 있다. 선택적 환원 촉매 시스템(SCR)과 디젤미립자 필터(DPF)로 배기가스를 처리하고 있다. 하지만 디젤 엔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예전 같지 않다. 디젤 엔진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닐까. 푸조로서는 안타깝겠지만 시대의 흐름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왜건이 멋있는 건, 차를 세워놓았을 때다. 그곳이 경치가 좋은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차를 멈추고(여행 전문가 이화득씨가 쓴 책 이름이기도 하다) 트렁크에 걸터앉아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왜건이 제격이다. 세단은 걸터앉기 힘들고 SUV는 걸터앉기에 너무 높다. 때로 뒷좌석을 풀플랫으로 접어 한숨 늘어지게 잠을 자기에도 왜건이 제격이다. 멈췄을 때 더 멋진 이유다.

여행을 간다면 즐겁겠으나, 차를 시승하는 것이 기자에겐 업무의 연속이다. 게다가 외부 온도 37도를 넘나드는 폭염이니 여간 고역은 아니었다. 시승하는 내내 트렁크에서 단잠을 자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하필 왜건이어서 말이다. 그만큼 쓰임새가 많은 차라는 의미다.

한불모터스는 푸조 508SW를 GT라인 단일 트림으로 판매한다. 판매가격 5,131만 원.



오종훈의 단도직입
프레임리스 도어를 적용했다. 멋을 내기엔 좋지만 안전에는 도움이 안 된다. 도어를 열면 날카로운 예각이 드러난다. 위험한 부분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눈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다.
수입 중형차인데 내비게이션이 없는 건 아쉽다. 스마트폰을 연결해 대응할 수는 있지만 번거롭다. 소형차이면 모르겠지만 중형차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