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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글러 루비콘 2도어, 오프로드의 미식가

랭글러 루비콘을 만났다. 성격 뚜렷한 차다. FCA코리아가 지프 브랜드로 집중키로 하고 라인업을 일신해 신형 모델들을 대거 선보인 건 지난 4월. 오버랜드, 루비콘, 스포츠, 2도어, 4도어 조합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한국에선 디젤과 3.6 가솔린은 빼고 2.0 가솔린 엔진으로 파워트레인은 하나로 묶었다. 그중 하나를 시승차로 선택해야 했다. 당연히 루비콘 2도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랭글러는 오프로더다. 그중 최고의 오프로더가 루비콘 2도어. 하드코어 오프로더다.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을 강조하고 공기저항 계수를 따지는 첨단 자동차들 틈에서 이 녀석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자를 대고 그린 듯 직선이 살아있는 모습은 시대 흐름과 상관없이 마이웨이를 달리는 고집쟁이임을 말하고 있다. 프런트윈드실드의 각도를 조금 누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수직으로 곧추서 있고, 7슬럿 그릴과 원형 램프, 발톱을 세운 타이어 등 지프의 DNA를 오롯이 품고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지프의 맏이다.

2도어, 즉 쇼트 보디다. 짧은 휠베이스는 오프로드를 타고 넘는 최고의 무기가 된다. 4도어처럼 휠베이스가 길면 차체 하부가 바닥에 닿아 옴짝달싹 못 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휠베이스가 짧으면 이런 경우에서 좀 더 자유로워 운신의 폭이 넓다. 오프로드에선 쇼트 보디가 더 유리한 것. 루비콘 2도어가 못 가는 길은 다른 어떤 차도 넘을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모든 게 오프로드에 맞춰졌다. 4,330mm의 길이에 휠베이스는 2,460mm. 255/75R17 사이즈의 타이어를 끼웠다. 17인치 타이어지만 편평비가 75로 차체를 제법 높게 들어 올린다. 락 트랙 4WD는 오로지 오프로드 주행에 맞춰진 사륜구동 시스템이다. 여기에 앞뒤 차축을 일체화시키는 액슬 로크, 서스펜션의 폭을 크게 늘려주는 스웨이바 해제 기능 등이 더해졌다. SUV라고 다 같은 SUV가 아님을 말해주는 장치들이다.

시동을 걸고 서울 근교의 오프로드로 향했다. 온로드 주행은 오프로드로 가는 과정일 뿐, 이 차에겐 큰 의미가 없다. 2.0 가솔린 엔진이 뿜어내는 힘은 272마력, 40.8kgm. 하지만 이 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150km 정도에서 제한된다. 그 속도 이내에서 힘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높은 시트 포지션, 발톱을 세운 타이어, 150km에서 제한된 속도 등으로 온로드 성능은 다른 SUV의 90%에 못 미치는 느낌이다. 윈드실드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 흔들리는 차체는 자칫 피로감을 줄 수도 있는 부분.

지붕을 벗고 오픈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는 건 큰 매력이다. 마음이 내키면 좌우 도어도 벗어버릴 수 있다. 쾌청한 날씨에는 벗고 달리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다. 부족한 건 용기일 뿐, 루비콘은 언제든 벗고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

오프로드에 올라서면 기가 막힌 반전이 펼쳐진다.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탁월한 성능을 뽐내는 것. 훨훨 날아간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락 트랙 4WD 시스템을 가진 루비콘은 입맛 까다로운 미식가다. 오프로드를 요리하기 위해 다양한 조건에 대응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다.

부변속기는 2H, 4H 오토, 4H 파트타임, 4L 등을 갖췄다. 온로드에서 2H, 눈길 빗길 등에선 4H 오토, 상태 좋은 오프로드에선 4H 파트타임, 견인, 탈출, 강한 구동을 위해선 4L을 택하면 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앞뒤 차축을 잠글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액슬 로크다. 좌우 바퀴 간 회전 차이가 발생할 때 차축을 직결시켜 회전 차이를 없애게 한 것. 한 바퀴라도 움직이면 그 힘으로 차가 움직일 수 있는 원리다.

하나 더 있다. 스웨이바. 서스펜션을 구성하는 일종의 토션바와 같은 장치인데 이를 풀어버리면 바퀴의 상하 진동 폭이 커진다. 바위를 올라탈 때, 좌우 경사가 클 때 노면 접지를 유지해 구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오프로드의 화려한 메뉴판을 공략하기 위한 루비콘의 무기들이다. 오프로드에선 4WD라는 단순공식에 익숙한 이들에게 락 트랙 4WD 시스템은 쉽게 이해하기 힘든 복잡계다.

제법 험한 숲길에 접어들었지만 아주 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능력의 절반도 채 쓰지 않았지만, 뚜벅뚜벅 전진했다. 굳이 락 트랙 시스템이 아니어도 발톱을 세운 오프로드용 타이어만으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던 길.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늘로 올라가듯 가파른 경사를 밀고 오를 때였다. 마지막 순간 경사를 넘어서는 순간은 짧은 휠베이스였기에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휠베이스가 길었다면 배가 닿아버렸을 수도 있던 상황.

온로드에서 다소 부족해 보였던 느낌은 오프로드에서 200% 만회할 수 있었다. 오프로드 주행을 마치고, 온로드에 올라설 때의 즐거움은 덤이다. 거친 길을 울퉁불퉁 뒤뚱뒤뚱 움직이다 말끔하게 포장된 길에 올라설 때의 기쁨은 경험해본 이들만의 몫.

짧지 않은 자동차 기자 생활 동안 가장 인상적인 차를 꼽으라면, 랭글러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겠다. 성격이 분명한 차에서 감동을 받는다. 두루뭉술 모두를 만족시키는 차가 아니라, 자신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특화된 부분에 강한 모습을 보일 때 그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감동을 받는다. 랭글러가 그랬다.

연비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기록을 위해 체크했다. 파주-서울 간 55km를 달리며 측정해본 이 차의 연비는 12.6km/L다. 제원표상의 공인복합연비는 8.7km/L. 랭글러 연비도 결국 운전자 하기 나름임을 말해주는 기록이다.

올 뉴 랭글러는 스포츠, 루비콘에 각각 2도어와 4도어 트림이 있고, 오버랜드 4도어, 파워탑 4도어 등이 포진해 있다. 4,640만 원부터 6,190만 원까지다. 시승차인 루비콘 2도어는 5,540만 원.

루비콘 2도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오프로드에서 빛을 발했다. 대자연의 품속 깊숙이 안기고 싶은 이라면 이 차를 못 본 척하기는 힘들겠다. 랭글러 루비콘 2도어라면 남들 못 가는 길을 헤쳐 좀 더 깊숙한 공간으로 안내해줄 것이다. 다만, 도심 출퇴근용으로 이 차를 산다면 말리고 싶다. 그건 아니 될 일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안테나. 우측 휀더에 꽂혀있는 안테나는 참으로 고전적이다. 그게 손으로 돌리면 빠진다. 장난꾸러기들의 손을 탈 수 있다. 달릴 때 바람 소리를 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전적이어서 랭글러에 어울리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걱정하게 된다. 글라스 안테나를 권한다.


구조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부변속기 조작이 조금 복잡하고 힘들다. 4L에 기어를 넣기 위해선 변속기 중립을 한 뒤에 조작해야 한다. 실제로 힘도 많이 써야 부변속 레버를 움직일 수 있다. 터프가이에게 조금 부드러운 걸 기대하는 게 무리일까.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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