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앤 블랙.
시빅 스포츠 시승차는 강렬했다. 컬러가 그랬다. 빨간 보디에 라디에이터 그릴, 휠, 리어 스포일러 등을 진한 블랙으로 배치해 강한 인상을 만들었다. ‘스포츠’에 걸맞는 컬러 조합이다. 새로 적용한 차세대 에이스 보디는 충돌 안전성을 크게 높였다는 설명이다. 때를 맞춰 꽃망울을 활짝 터트리는 계절. 벚꽃 만발한 길을 혼다 시빅 스포츠와 함께 달렸다.
파워트레인은 1.5 터보 엔진에 무단변속기 조합으로 177마력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22.4kgm로 1,700~5,500rpm 구간에서 구현된다. 움직이는 거의 모든 구간에서 최대토크가 나온다는 것.
북미 최상위 트림인 투어링 모델을 기반으로 한국 전용 사양을 더해 국내 판매에 나섰다. 혼다센싱을 탑재한 것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혼다센싱은 차세대 운전자 보조 시스템으로 자동감응식 정속 주행장치, 저속 추종장치, 차선유지보조, 차선이탈 경감시스템, 추돌경감제동, 오토 하이빔 등으로 구성된다. 카메라와 센서 등으로 차의 거동과 주변을 살펴 안전과 주행을 ‘보조’해주는 시스템. 필요하면 조향과 제동에 개입해 안전을 보조해주는 장치다.
혼다 센싱 덕분에 차는 더 똑똑하게 움직이고, 운전자는 차를 다루기가 편해졌다. 잠깐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도 차선을 넘지 않고 차로 중앙을 유지하며 달렸다. 앞차와의 차간 거리를 적정하게 유지하는 능력도 갖췄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자율운전에 가깝게 움직이는 것.
177마력의 힘은 충분했다. 아주 강력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필요할 때 충분한 힘을 내줄 만큼 엔진은 여유가 있다. 속도를 높여 한계속도에 다가서면서 가속감은 약해졌지만, 크게 의미 없는 속도다. 그렇게 빨리 달릴 일은 없을 뿐 아니라, 그래서도 안 되는 속도 구간이기 때문이다. 아주 빠른 속도에서는 차체의 흔들림이 증폭되는 느낌도 온다. 조금 불안해지는 것. 하지만, 역시 의미 없는 속도다.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버튼은 따로 없다. 변속레버를 D에서 한 칸 내리면 S, 즉 스포츠 모드가 된다. D 레인지가 ‘노멀’ D에서 에코 버튼을 누르면 ‘에코’ 모드가 된다.
실제로 달리는 속도에서는 충분한 힘으로 달렸다. 공차중량 1,345kg으로 군살을 쏙 뺀 가벼운 몸. 마력당 무게비를 계산해보면, 7.6kg 수준. 경쾌하게 달릴 수 있는 힘의 효율을 갖췄다.
GPS를 이용한 계측기를 통해 측정해본 결과 시빅 스포츠는 8.85초 만에 126m를 달려 시속 100km를 주파했다. ‘스포츠’라는 이름에 걸맞게 경쾌하다. 시속 100km를 조금 더 넘어서도 조금 더 빠른 속도까지 거침없이 달린다. 몸이 가벼워 힘은 더 크게 다가온다.
힘보다 더 인상적인 건 ‘알뜰한 조향’이다. 스티어링 휠 회전수 2.0 일 때부터 눈치는 챘다. 딱 두 바퀴 도는 핸들이다. 이런 차 드물다. 겨우 유격의 범위로 볼 수 있을 만큼 조금만 스티어링을 움직여도 에누리 없이 몸을 움직여 반응한다. 1원짜리 끝전 하나까지 계산하는 똑순이처럼, 눈치챌까 싶어 살짝 흔들어보는 핸들을 알아채고 즉각 반응한다.
에누리 없이 빠르고 정확한 반응은 와인딩로드에서 빛을 발한다. 여유롭지만 템포를 놓치지 않는 정확한 스텝이 인상적이다. 비트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댄서의 동작이다. 힘 있게 코너를 돌고 나서 부드럽게 힘을 뺀다. 시빅 스포츠에서 ‘스포츠’의 의미를 찾는다면, 정확하게 빠른 조향 반응을 먼저 꼽겠다. 탄탄한 기본기에서 혼다, 기술의 혼다를 느낀다. 설렁설렁 허당같아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진가를 드러내는, 결코 허당이 아닌 존재다.
이 차의 공인복합 연비는 13.8km/L. 1.5ℓ 가솔린 엔진으로는 수긍할만하다. 계기판이 알려주는 평균 연비는 6.6km/L로 절반 수준. 미디어 시승에 사용된 차여서 거친 주행환경을 고려해야 하는 연비여서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듯하다. 실제 주행과정에서 어느 정도로 연비를 좋게 만들 수 있을까. 파주-서울 55km 구간에서 실주행 연비를 측정해봤다.
공교롭게도 시승 당일 자유로는 도로 공사로 장항IC 부근에 극심한 정체가 있었고, 올림픽 도로와 서울 시내 도로 상황도 좋지 않아 계속되는 체증에 시달리며 움직였다. 시빅 스포츠에겐 악조건이었다.
최종 연비는 17.0km/L를 기록했다. 발목을 잡는 교통 체증을 뚫고 보란 듯이 기록한 연비여서 의미가 크다. 에코모드를 택해 차분하게 차를 다룬 결과다. 결국, 연비는 운전자 하기 나름이다.
판매가격 3,290만 원.
오종훈의 단도직입
전통적 방식인 일자형 변속레버는 여전했다. 변속레버로는 수동변속이 안 된다. S 모드로 옮길 수 있을 뿐이다. 패들 시프트가 있어 수동변속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시빅은 언제까지 일자형 변속레버를 언제까지 고집할까. 지켜볼 일이다.
S 모드에서 에코 모드 버튼이 함께 활성화된다. 모순이다. 스포츠모드에서 에코 모드가 함께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기판 상으로는 함께 작동해선 안 되는 두 개의 기능이 함께 활성화된다. 스포츠모드에서는 에코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 게 맞다.
오종훈 yes@autodia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