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신형 3시리즈와의 첫 대면. 입술 같은 그릴이 먼저 눈에 띈다.
두툼하게 루주를 바른 입술처럼 라디에이터 그릴 주위로 두꺼운 크롬 라인을 그렸다. 좌우로 정확하게 분리됐던 키드니 그릴은 서로 붙여놨다. BMW 상징이라는 키드니 그릴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원형을 보존하고 변화를 담아야 하는 모순된 상황. 늘 그렇듯 자동차는 모순을 안고 달리는 존재다. 어쩌면 모순덩어리 그 자체일 수도….
BMW의 또 다른 디자인 특징인 호프 마이스터킥은 도어 바깥으로 라인을 뺐다. 좀 더 길어 보이는 착시효과를 노린 것. 도어 하단부에 강조된 라인, 바깥으로 빼서 볼륨감을 준 휠 하우스 주변부 등 디테일에 세심한 신경을 쓴 부분도 눈에 띈다.
직선을 강조한 인테리어는 긴장감이 있다. 가죽과 금속, 그리고 빛을 적절히 섞어 단정하지만 품격있는 실내를 완성했다. 인테리어는 한국인 디자이너 김누리 씨가 개발을 주도했다. 한국 사람이 BMW를 함께 만드는 시대. 자동차에 국적을 묻는 건 더 이제 더 이상 의미 없음을 그녀가 말하고 있었다.
바뀐 코드네임 G20. 완전히 다른 차로 태어났다는 의미다. 더 커진 몸은 심지어 무게까지 줄였다. 55kg의 감량. 성인 1명의 몸무게를 덜어낸 것. 공차중량이 330i 기준 1,620kg이다.
길이 4,709mm로 이전 대비 76mm나 길어졌다. 차폭은 대형 세단 못지않은 1,827mm에 이른다. 휠베이스 2,851mm는 이제 정말 소형 세단 맞나 싶을 정도.
뒷좌석에서 느끼는 공간감은 소형차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들어가고도 남는다. 공간 그 차제가 주는 고급스러움에 소재의 질감이 더해져 소형 세단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소형 세단이 아니다. 그냥 3시리즈다.
BMW가 한국에서 판매를 시작했던 2세대 모델부터 7세대까지 한 자리에 모아놓은 자리에서 보니, 세대를 거듭할수록 차체가 커지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중형차를 넘볼 크기에까지 이르렀다. 대·중·소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차급 구분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320d 말고 330i를 시승차로 택했다. 이왕이면 센 놈을 맛보고 싶었고, 디젤에 대한 피로감도 있었다.
2.0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에 8단 변속기를 물려 258마력의 힘을 낸다. 넘치는 힘이다. 제원표에 따르면 5.8초 만에 시속 100km를 주파한다. 시승 도중 계측기를 통해 측정해본 결과는 6.79초가 가장 빨랐다. 성인 두 명이 타고 있어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뒤에서 밀고 가는 강한 추진력을 느낄 수 있었다.
8단 변속기는 레버를 왼쪽으로 밀어 스포츠 모드를 택하면 자동변속을 제한한다. rpm이 치고 올라가도 운전자가 변속을 해줘야 시프트업이 일어나는 것. 변속하지 않으면 높은 엔진회전수를 팽팽하게 유지하며 다음 변속을 기다린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에서도 4,000rpm을 넘기며 기분을 낼 수 있다.
엔진 사운드는 딱 좋게 세팅했다. 탁 트인 소리로 내질러버리는 소리는 아니다. 소리를 높
여가다 어느 순간 딱 절제하는 느낌. 그래도 강력한 파워를 품고 있음을 알리는데 충분한 소리다.
굽이굽이 넘어가는 와인딩 로드에서 330i는 빛났다. 일단 순간 가속으로 추월이 쉽다. 앞으로 가로막은 느림보들을 잠깐 사이에 추월한다. 수시로 시야가 막하는 길에서는 추월 시간이 짧아야 안전한 법. 생각보다 더 빠르게 추월을 마무리한다. 힘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앞뒤 균형이 잘 잡힌 차체는 단단한 섀시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스티어링 휠을 돌린 채 코너를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흔들림 없는 자세가 매력 있다. 시종일관 느꼈던 것은 엔진 성능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 섀시의 한계. 순간 가속, 고속주행, 코너에서 일관되게 안정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근본 원인은 섀시였다고 꼽고싶다.
G20은 편안하게 달리는 세단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단단한 새시를 기본으로 다양한 주행보조 장비들을 추가해 달리는 즐거움에 조금 더 다가선 세단이다. 소형 세단이 무엇을 추구해야 잘 할 수 있는지를 330i는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애늙은이처럼 마냥 편안한 소형 세단은 재미없다. 아무리 편하다 한들 중대형 세단보다 더 편할 수는 없는 법. 달리기라면 얘기가 다르다. 작아도 훨씬 더 잘, 재미있게 달릴 수 있다. BMW 330i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애늙은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중접합유리를 많이 써서 실내는 조용하다. 차창을 내리면 쏟아져 들어오는 와글거리는 도시의 소음이 창을 닫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가다 멈출 때도 그랬다. 에코 플러스모드에서 차가 멈추면 실내는 잠깐 사이에 적막강산으로 변한다. 엔진이 멈추는 것. 이 상태에서 스티어링휠을 돌리면 처음엔 엔진 꺼짐을 유지하는데 휠을 조금 더 돌리면 어느 순간 시동이 툭 걸려버린다.
스티어링 휠. 이게 물건이다. 락투락 2.1회전 정도 하는데 유격이 거의 없다. 주행 중 아주 살짝, 그러니까 다른 차들 같으면 유격이 허용하는 범위 정도로 핸들을 흔들어봤다. 에누리 없는 반응이 돌아온다. 1원짜리 끝전 하나까지 정확하게 계산하는 똑순이다. 서킷을 달리듯 칼같은 조향 성능을 보인다. 느슨하고 편안한 조향을 기대한다면, 살짝 놀랄 수도 있다.
신형 3시리즈에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 리버스 어시스턴트. 즉 자동 후진 기능이다. 좁은 골목길을 겨우 들어갔는데 길이 막혔다면 이 기능을 이용해 간 길 그대로 되짚어 후진할 수 있다. 물론 운전자는 버튼 하나 눌러 이 기능을 활성화시킨 다음 차에 운전을 맡기면 된다. chleo 50m 까지 후진 가능하다니 대견하고 똘똘하다.
마지막으로 돈 얘기. 320d는 5,320만 원부터다. 320d xDrive M 스포츠 패키지는 5,920만원. 330i는 6,000만원부터다. 6,020만원부터 6,510만원. 하반기에 출시한다는 340i는 7,590만 원을 예고하고 있다. 슬금슬금 올라가다 보면 340i에 이르게 된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내비게이션이 그래픽으로 터널 안 모양을 그려낸다. 그래픽 완성도가 떨어진다. 게다가 화면이 살짝 흔들리기까지 한다. 생생한 현실감을 반영하려 했다면 부족하다. 좀 더 완성도를 높이던지, 아니면 그래픽 효과를 없애는게 낫겠다.
뒷좌석 암레스트 안에 만들어 놓은 접이식 컵홀더는 조작감이 거칠다. BMW답지 않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워야 BMW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은 이노베이션 패키지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기본 적용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