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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 없는 진격의 카이엔

포르쉐 카이엔이 신형으로 교체됐다. 3세대 모델이다.

카이엔. 프랑스 말로 매운 고추를 말한다. 1세대 모델이 처음 등장할 때, 정말 매울 것 같은 고추 그림을 함께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디자인을 완전히 바꿨다. 이전보다 더 딱 벌어진 어깨는 지면에 정확한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타협하지 않는 견고한 수평 라인이 돋보인다. 이전 모델과 분명히 다른데, 여전히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포르쉐 배지의 효과이기도 하겠으나, 리어 휠 하우스 뒤편으로 이어지는 볼수록 매력 넘치는 엉덩이 또한 여전하다. 모든 포르쉐에서 만날 수 있는 매력 만점인 엉덩이는 여전했다.

더 커졌다. 70mm가 길어졌고 46mm 더 넓어져 딱 벌어진 어깨를 만들었다. 높이는 5mm가 낮아졌다. 해서 전체 사이즈는 4,925×1,985×1,700mm다. 휠베이스는 2,895mm로 이전과 같다.

엔진을 비롯한 파워트레인도 구성을 바꿨다. V6 3.6 자연흡기 엔진은 V6 3.0 터보 엔진으로 교체됐다. 배기량을 줄였고 최고출력은 340마력으로 40마력을 보강했다. 다운사이징의 모범이다. 45.9kgm의 토크는 1,340rpm에서부터 시작된다. 움직이면 최대토크 구간이라고 보면 된다.

또 다른 이유로 카이엔은, 아니 포르쉐는 모범생이다. 힘 부족하다 타박한 적 없으나, 때가 되면 스스로 더 강한 힘을 더 효율적으로 따박따박 만들어낸다.

포르쉐는 또한 변할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의 구분이 분명하다. 늘 새롭지만 언제나 그 모습처럼 보이는 이유다. 디테일에서 부지런히 변화를 추구하지만, 어지간해서는 큰 틀을 바꾸는 법이 없다. 당연히 카이엔도 그렇다.

충분히 넓다. 넓은 공간을 최고급 소재로 채웠다. 천장이 높은 응접실의 몸에 착 감기는 가죽 소파에 앉은 느낌이다. 뒷좌석이 그랬다. 뒷시트는 160mm 슬라이딩이 가능하고, 등받이 조절까지 가능했다. 센터터널이 높은 건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할 부분. 5인승이라고는 하지만, 다섯보다는 네 명까지만 타는 게 좋다. 카이엔에 다섯 명을 태워 꽉 채우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아뿔싸, 뒤 차창은 절반을 조금 더 내려올 뿐이다. 넓게 열리지 않는다. 머리 큰 사람은 차창 밖으로 머리 내놓기가 쉽지 않겠다. 스피커 등을 배치하느라 차창이 내려올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까닭으로 보인다.

어림잡아 길이 5m, 너비 2m에 달할 만큼 덩치가 큰데 스티어링휠은 2.2회전 할 뿐이다. 크기에 비해 무척 타이트한 조향비를 가졌다. 크기만 본다면 3회전을 넘겨도 좋을 텐데 두 바퀴를 조금 더 넘기는 정도로 바짝 조였다.

대형 SUV지만, 스포츠카임을 잊지 않았다는 증거다. 큰 몸이지만 굼뜨지 않게, 날쌘 동작을 선보일 수 있게 만든 몸이다. 나비처럼 움직이는 헤비급 복서의 몸놀림이다.

계기판은 7인치, 센터페시아에는 12인치 모니터가 다양한 정보를 띄워준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다. 운전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필요한 정보가 올라온다. 센터페시아의 터치스크린 모니터는 반응이 무척 빠르다. 터치하려고 손가락을 가까이 대면, 닿기도 전에 필요한 부분이 활성화되면서 반응한다. 성격 급한 오너라도 빠르고 정확한 반응에 흡족할 정도다.

모니터 아래로는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버튼들을 배치했다. 8단 변속기를 조절하는 레버 주변에는 시트의 열선과 냉풍을 조절하는 버튼이 각각 자리했다. 열선과 냉풍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 독일 차들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이 조합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

시속 100km에서 rpm은 1,400이다. 새근거리는 아이의 숨소리를 낸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 에서 시프트 다운을 이어가면 3단 4,800rpm까지 이어진다. 폭넓은 엔진 회전구간에서 시속 100km를 누릴 수 있다.

가속페달을 바닥까지 밟으면 거침없는 질주가 이어진다. 끝까지 고개를 쳐들고 달린다. 팽팽한 가속감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살아있다. SUV지만 스포츠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빠른 속도에서의 안정감이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빠른 속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확보하는 것. 타이어, 서스펜션, 사륜구동, 앞뒤의 무게배분, 차의 무게, 드라이버의 스킬, 공력 특성 등등이 어우러져 제대로 조화를 이뤄야 만날 수 있는 궁극의 안정감을 카이엔은 가졌다.

실제 속도와 체감속도의 차이가 크다. 극한 속도에서는 50km/h 이상이다. 달리기에 관한한 흠잡을 데 없다. 문제는 드라이버가 용감해진다는 것. 불안감이 덜하니, 드라이버가 조금 더 밟게 된다. 적어도 포르쉐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스포츠 드라이빙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컨트롤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재미를 느껴야 하는 것.

어댑티브 에어서스펜션은 카이엔을 전천후 폭격기로 만든다. 온로드에서 최대한 수평을 유지하며 스포츠카를 따돌릴 만큼 안정적인 자세로 만드는가하면, 오프로드에서는 바지를 걷어 올려 물을 건너는 것처럼, 최저지상고를 바짝 올려놓는다. 최저지상고는 노멀 상태에서 190mm에서 최고 245mm까지 올라간다. 어지간한 오프로드는 최저지상고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거뜬히 통과할 수 있겠다. 여기에 사륜구동시스템이 결합하면, 아무리 거친 오프로드도 공략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오프로드에 마음 놓고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싼 가격, 수리비를 염두에 둬야 한다. 오프로드에서의 완벽한 성능을 알면서도 온로드를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다. 제원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것으로 오프로드 성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커가 밝힌 100km/h까지의 가속 시간은 스포츠크로노 패키지를 적용한 경우 5.9초다. 계측기를 이용해 실제로 측정해본 결과는 6.8초.

공인복합연비는 7.3km/L. 파주-서울 간 55km를 달리며 측정한 연비는 12.5km/L. 연비 좋게 한다고 제대로 밟지도 못하고 이 차를 타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천정에 굴비 걸어놓은 부잣집 밥상 같은 것. 연비에 연연하는 것은 포르쉐답지 않은 일이다.

오종훈의 오토다이어리
차선이탈방지 보조 장치는 없다. 운전하는 즐거움을 최고로 친다는 포르쉐지만 그래도 첨단 주행 보조장비(ADAS)에 인색한 것은 의외다. 오토 스탑 기능도 스티어링 휠에 살짝 힘을 주면 시동이 걸려버리는 수준. 아주 많은 최첨단 장비들로 중무장을 했지만, 사소하고 엉뚱한 부분에서 빈틈이 크다. 게다가 1억 20만 원부터라는 카이엔의 가격을 보면, 너무 인색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열선 시트와 온풍 시트를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는 방식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느껴져서다. 둘 중 하나만 작동하는 게 맞지 않을까. 깊은 뜻을 알 길이 없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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