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물 밖에선 제법 유명한 차다. 닛산 엑스트레일.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닛산 배지를 단 차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2016, 2017년엔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SUV라고 닛산은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선택한 차, 엑스트레일을 만났다.
2000년에 데뷔한 이후 3세대로 이어지는 닛산의 대표 SUV다. 시승 모델은 3세대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2WD, 4WD, 4WD 테크 3개 트림이 있다. 시승차는 4WD 테크 트림.
모나키 오렌지. 세련된 컬러가 눈길을 확 잡아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컬러다. 닛산의 DNA를 품은 멋진 디자인에 세련된 컬러의 조합이다. 다만, 잘 관리해야 하는 컬러다. 제때 씻겨주지 않아 먼지와 때를 잔뜩 묻힌 채 다닌다면, 멋진 컬러의 의미가 없다. 게으른 사람에겐 권하기 힘든 색이다.
V모션 그릴과 부메랑을 닮은 헤드램프와 테일 램프는 닛산의 상징이다. 4WD 테크 트림인 시승차에는 19인치 휠이 적용됐다. 225/55R19 사이즈의 브릿지스톤 에코피아 타이어를 신었다. 제법 넓은 파노라마 선루프와 그 옆을 따라 배치된 루프레일, 지붕 끝 선을 따라 이어진 스포일러, 측면 보디 하단의 크롬 라인 등이 디자인에 포인트를 주고 있다. 구석구석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SUV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인테리어다. 편하다. 기능적이어서다. 뒷좌석이 그렇다. 앞뒤로 슬라이딩이 가능하고 등받이를 조금 더 뒤로 누일 수도 있다. 시트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 트렁크를 조금 더 넓게 사용할 수도 있다. 대게 뒷시트는 6:4로 나뉘게 마련인데 이 차는 4:2:4로 시트를 나눠 접을 수 있다. 상황에 맞춰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것.
트렁크도 공간도 그렇다. 뻔한 트렁크 공간이지만, 이 차는 달랐다. 리어 게이트를 열어 공간을 마주하면, 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지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간다. 바닥을 들어올려 2층 구조로 만들 수 있고, 앞뒤로 구분해 공간을 나눌 수도 있다. SUV의 가장 큰 장점, 혹은 효용성이 ‘공간’이라고 한다면, 엑스트레일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적인 공간을 펼쳐 보인다. 뻔한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2열 공간의 바닥에 솟은 센터 터널은 그리 높지 않다. 크게 불편할 게 없다.
D 컷 스티어링 휠을 적용했다. 조향할 때, 불규칙이 주는 재미가 있다. 완전히 감았다 풀며 나갈 때 손에 걸리는 불규칙한 느낌이 D 컷 스티어링 휠의 재미.
변속레버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주행 모드를 정하고 AWD 록 등을 선택하는 여러 버튼들은 스티어링 휠 왼편에 배치됐다. 오른손과의 형평성을 고려했을까. 왼손이 해야 할 일이 조금 더 많아졌다.
2.5ℓ 가솔린 엔진에 X트로닉 무단 변속기를 물렸다. 준중형급이라고는 하지만 중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이다. 파워트레인으로 보면 차급 구분은 의미 없다.
172마력, 24.2kgm의 힘을 낸다. 무단변속기의 밋밋한 변속감을 보완하기 위해 약간의 변속감을 가미한 D 스텝 로직을 적용했다. 킥다운을 하면 몇 차례 rpm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변속을 이어가는, 무단변속기 같지 않은 변속감을 보인다.
중저속 구간에서 강한 가속을 하면 엔진 소리가 살짝 도드라지지만, 고속으로 접어들면 바람소리와 섞여버린다. 강하게 치고 나가는 소리가 어느 순간 바람소리에 섞이며 사라져 버리는 것.
공기저항계수는 0.33이다. SUV치고는 우수한 편. 중저속에서는 이런저런 소리들이 잔잔하게 실내로 파고들고, 아주 빠른 고속에서는 바람소리가 모든 소리를 잡아먹어 버린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대체로 앞바퀴 굴림 상태로 움직인다. 계기판을 통해 실시간 구동 상황을 보면 그렇다. 가속 초기, 깊은 가속, 코너링에서 뒷차축으로 힘을 보내며 사륜구동 시스템이 작동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고속주행 상태에서도 앞바퀴굴림 상태일 때가 많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앞바퀴 굴림을 ‘고집’하고 있다. 조금 인색한 ‘사륜구동 시스템’인 셈.
그렇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필요할 때에는 정확하게 사륜구동을 구사한다. 타이트한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갈 때는 앞뒤 50대 50까지 구동력을 나누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바퀴의 마찰저항이 제각기 다른 오프로드에서도 구동력은 뒷바퀴까지 정확하게 전달된다.
오프로드에선 ‘4WD 록’을 선택하면 된다. 앞뒤 50대50으로 구동력을 고정시켜 버리는 것. 어느 한 바퀴가 헛돌아도 나머지 바퀴들이 움직이며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험한 길도 문제없이 주파할 수 있다. 미끄러운 경사면을 오르는 오프로드에서, 처음에 살짝 헛바퀴를 돌던 시승차는 금방 구동력을 회복하며 움직였다. 두바퀴굴림 차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4WD의 힘’이다.
인텔리전트 모빌리티가 있다. 사각지대 경고, 후측방 경고, 비상 브레이크,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 차간거리 제어, 트레이스 컨트롤 등의 기능 앞에 모두 ‘인텔리전트’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차 스스로 판단해 대응하며 이런 기능들을 작동시킨다는 것. 경고음과 경고등이 작동하고 필요할 때 브레이크가 함께 연동한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조향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차선 이탈할 때 ‘경고’까지만 한다. 조향에 개입해 차선을 넘지 않도록 스티어링휠을 조절해주지는 않는다. 아쉬운 부분이다.
계측기를 통해 측정해본 결과 엑스트레일은 9초대에 시속 100km를 주파했다. 4차례 가속 테스트를 했는데 9.3~9.6초대를 기록했다. 평균 기록은 9.51초. 172마력, 공차중량 1,670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9.7kg이 된다.
파주-서울 간 55km 구간에서 연비를 측정해본 결과 13.4km/L의 연비를 보였다. 이 차의 공인 연비 10.6km/L에 비하면 약 3km/L 정도 우수한 연비를 만난 것. 엔진 배기량과 차의 무게에 비하면 무척 우수한 연비다.
판매가격은 2WD 3,460만 원, 4WD 3,750만 원, 4WD 테크 4,120만 원. 국산 중형 SUV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지에 경쟁차로 올려도 좋을 가격대다. 수입차 시장에 참 좋은 SUV 하나가 더해졌다. 소비자들의 선택폭이 그만큼 늘었다.
SUV는 이래야 한다는 걸 엑스트레일이 잘 보여주고 있다. 굳이 성능에 욕심낼 필요는 없다. 무난한 성능이면 족하다. 공간은 욕심을 낼 필요가 있다. 편리하고 유연한 2열 시트, 트렁크에서 만나는 아기자기한 공간구성, 매우 유용한 사륜구동시스템,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까지. SUV가 갖춰야할 것들을 두루 갖춘 모범생이라 할만하다.
앞서 언급했듯 이 차는 닛산 브랜드 안에서,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베스트 셀러’의 자리에 오른 차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이 팔린 차가 좋은 차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분명한 건, 나쁜 차는 절대 많이 팔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선택의 갈림길에 있을 때, 참고할만한 기준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조향에 개입하지 않는 차선이탈 경고장치는 아쉽다. 인텔리전트라는 수식어가 어색한 이유다. 조향까지 척척 해내는 요즘의 다른 차들에 비해 한발 뒤진 느낌을 받는다. 닛산이 인텔리전트 모빌리티를 강조하는 마당에 차선유지까지 해내는 명실상부한 ‘인텔리전트’ 모빌리티였으면 좋겠다.
센터페시아 모니터 옆에 USB 단자는 조립이 엉망이어서 USB를 끼울 수 없었다. 당연히 시승차에만 한정된 문제겠지만, 그래도 걱정스럽다. 이런 차가 최종 품질관리를 거쳐 출고됐다는 건, 조립품질과 품질관리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조립과 품질관리에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겠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