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파일럿이 신형 모델을 내놨다. 3세대의 마이너체인지 모델로 굳이 따지자면 3.5 세대라 할 수 있는 모델이다. 파일럿은 2012년 2세대 모델이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 전천후 대형 SUV로 시작한 파일럿은 이제 굿대디를 위한 SUV로 한국시장 공략에 나선 것.
기자단 시승회가 열린 곳은 공교롭게 화성시의 롤링힐스 호텔. 남양연구소와 화성, 아산공장 등이 근처에 있는 곳으로 현대차그룹이 운영하는 호텔이다. 또한 현대차가 대형 SUV 팰리세이드를 출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더더욱 흥미 있는 지점이다. 겨울이라 날씨 위험에서 비교적 안전한 지역을 찾다 보니 부득이하게 이곳을 택했다는 게 혼다 측의 설명.
7인승(파일럿 엘리트)과 8인승(파일럿)이 있다. 파일럿 엘리트를 시승차로 받고 한 시간가량 핸들을 잡았다. V6 3.5ℓ 엔진은 284마력의 힘을 낸다. 공차중량 1,965kg으로 마력당 무게비는 6.9kg이 된다. 9단 자동변속기가 엔진을 조율하는데, 버튼으로 조작한다. 덕분에 앞 좌석 공간이 넓어졌다.
3회전 하는 스티어링휠은 약간의 유격이 있다. 서스펜션은 살짝 부드럽게 만들었다. 노면의 굴곡을 따라 느끼는 부드러운 승차감이 먼저 다가온다.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에 둔 세팅일 수도 있겠다. 딱딱한 서스펜션과 타이트한 조향이 오프로드에선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 적당히 흔들리며 거친 노면의 흔들림을 상당 부분 흡수하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조향 성능이 거친 오프로드에선 어울린다. 물론 온로드에서 적당한 승차감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하다. 부드럽다고 말랑거리거나 낭창거리는 건 아니다. 적당한 쿠션을 가진 기분 좋은 승차감. 혼다가 만들었지만, 이 차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미국에서 생산된 미국차다. 미국 스타일이다.
변속은 부드럽고, 그 힘은 셌다. 멈춘 상태에서 냅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출발하는데 타이어의 회전이 힘차다. 처음부터 아주 강한 힘이 차체를 끌고 달리는 것. 2톤에 달하는 무게가 거침없이 달린다. 고속주행에 이르면 그 무게감이 더해져 내리누르는 안정감을 만난다. 헤비급 복서가 전력 질주하는 느낌이다. 헤비급 스프린터인 것. 물론 이 차를 타고 고속 질주할 일은 많지 않겠지만, 그럴 일이 있을 땐 확실하게 달릴 줄 안다. 가속할 때 터지는 화끈한 숨소리도 매력 있다.
100~120km/h 구간에서 안정감 있게 달린다. 계기판에서는 사륜구동 시스템의 구동력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앞바퀴굴림 기본으로 움직이다 후륜으로 힘을 흘려준다.
공인복합 연비는 8.4km/L. 대형 SUV인 만큼 연비는 각오해야 한다. 배기량과 차급을 감안하면 수긍할만한 수준이다.
혼다센싱은 후측방 경보시스템과 크로스 트래픽 모니터 기능이 더해졌다. 후측방 경보시스템이 들어오면서 우측 후방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모니터로 보여줬던 레인워치 시스템은 사라졌다. 차간거리와 차선을 유지하는 기능은 무척 안정적이다. 어지간해서는 놓치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를 넘는 속도에서도 차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보조 운전자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해낸다.
파일럿은 성능보다 공간이 중요한 차다. ‘굿 대디’를 내세우는 패밀리카를 지향하고 있어서다. 3열로 먼저 들어갔다. 2열 시트를 젖히기도 쉽고, 2열로 들어간 뒤 통로를 통해 뒤로 넘어가도 된다. 실내에서 이동이 수월하다. 3명이 앉아야 하는 3열 시트는 딱 맞는 공간이다. 살짝 세워진 무릎은 앞 시트에 닿을락 말락 할 정도. 머리 위로는 공간이 넉넉했다. 성인 3명이 편하게 앉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2열은 가장 여유로운 공간이다. 시승차는 7인승으로 2열 시트가 좌우 독립식으로 구성됐다. 천정에 배치된 10.2인치 모니터와 헤드폰 등이 있어 재미있게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블루레이, DVD, HDMI 단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실내 바닥은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계단식 구조다. 뒷좌석의 시야가 가로막히는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실내 마이크를 통해 얘기하면 뒷좌석 스피커로 전달되는 캐빈토크 기능은 수다 떨기에도 좋다.
현대차의 팰리세이드와 경쟁이 불가피한 모델이다. 팰리세이드 가솔린 모델 풀옵션보다 1,000만 원가량 파일럿이 비싸지만, 뚜렷한 강점이 보이지 않는다. 수입차라는 희소성이 장점이 될 수 있을까? 혼다는 ‘안전성’을 내세웠다. 오랜 세월을 두고 대형 SUV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왔고, 2018년 미국 IIHS(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에서 실시한 충돌 테스트에서 최고수준의 안전성(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을 인정받았다는 것. 팰리세이드의 충돌 안전성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그와 상관없이 파일럿은 최고수준의 안전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애플 카플레이만 적용되어 있고, 안드로이드 오토에는 대응하지 않는다. 아이폰 사용자는 더 편하게 이 차를 쓸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 폰 사용자에겐 그 길이 막힌 셈.
영문으로 표기되는 계기판은 거슬린다. 굳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한글만큼 편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 미국에서 파는 그대로 가져다 소비자에게 건네는 것 같아 무성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한국 소비자에 대한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