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모르고 사는 고집쟁이다. 카마로.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6.2ℓ, 6,162cc의 배기량을 고집하고 있다. 더 뉴 카마로 SS로 우리 앞에 다시 등장했다. 6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만났다.
포드 머스탱과 더불어 카마로는 아메리칸 머슬카라고 흔히 부른다. 칭찬인지 야유인지 모를 ‘아메리칸 머슬카’에는 나름의 특징이 있다. 허술한 듯 빈틈도 살짝 보이지만,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우람한 근육에서 나오는 힘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차. 그런 의미로 읽는다.
V8 6.2ℓ 자연흡기 엔진은 이전 그대로인데 변속기는 10단 자동변속기를 새로 올렸다. 대 배기량에 10단 변속기의 궁합이 이번 시승의 포인트. 서킷에서 마음껏 밟아볼 기회를 얻었다. 변속기 이외에는 사소한 변화들이다.
전통적인 투도어 쿠페 스타일에 4 시트를 갖췄다. 헤드램프는 LED가 적용됐고 쉐보레의 나비넥타이 엠블럼이 적용된 라디에이터 그릴에도 변화가 있다. 뒷모습에선 대구경 듀얼 머플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카마로 SS 전용 블랙 보타이, 신규 LED 테일램프 등이 디테일을 살리고 있다.
8인치 컬러 슈퍼비전 클러스터 및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 24가지 색상으로 설정 가능한 앰비언트 라이트 등을 실내에서 만나게 된다. 룸미러는 후방 카메라와 연동한다.
헬멧을 쓰고 카마로 운전석에 앉아 서킷에 올랐다. 트랙모드 대신 스포츠 모드를 택해야 했다. 트랙모드에선 전자식 주행 안전장비 등이 작동하지 않는다. 일부러 차를 미끄러뜨릴 수 있어야 해서다. 일반인들이 누리기엔 위험할 수 있다. 스포츠모드에서도 충분히 다이내믹한 주행을 즐길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을 돌린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꼬리가 머리를 잡을 듯 차가 휙 돌아버린다. 6.2ℓ에서 터지는 453마력의 힘은 상상 이상의 반응을 끌어낸다. 실린더의 보어와 스트로크는 103.25 x 92mm로 쇼트 스트로크다. 폭발적인 가속을 끌어내는 스프린터 타입에 딱 맞는 엔진이다.
순간적인 힘이 대단하다. 직선로에서 가속페달을 완전히 밟으면 소리가 먼저 와 닿는다. V8 자연흡기 엔진의 리드미컬한, 여유로운 소리는 언제 들어도 반갑다. 갈수록 듣기 어려워지는 소리이기도 하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박물관에서나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건, 카마로 SS는 가장 듣기 좋은 엔진 소리를 들려준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다 고속주행으로 접어들 때, 강한 비트를 섞어 빠른 박자로 전환하는 엔진 사운드의 울림은 차에서 내리고도 꽤 오래 몸 안에 남는다.
서킷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기온 때문이었다. 오전에 영하로 시작한 날씨는 본격적인 시승을 시작하는 오후에 영상으로 겨우 올라온 상태. 차가운 노면은 겨우 얼어붙은 상태를 면한 정도로 여차하면 미끄러질 수 있을 정도였다. 최적의 그립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상태여서 마음껏 밟기는 힘들었다.
코너에 진입하며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니 여지없이 휘청거렸다. 트랙모드였다면 휘청하는 순간 스핀으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마그네틱 라이드 방식의 서스펜션과 245/40ZR20(앞)과 275/35ZR20(뒤) 사이즈의 타이어가 그립을 확보하며 거친 주행을 받아냈다. 브렘보 브레이크가 있어서 마음은 놓였다. 453마력의 힘으로 질주하는 차체를 제대로 컨트롤하는 브레이크다. 컬러 헤드업 디스플레이 덕분에 운전하는 동안 계기판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좋았다.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차체를 잘 지지해줬다. 초당 1,000번 이상 노면의 상태를 파악해 댐핑을 조절한다. 토크 벡터링 시스템은 코너에서의 부담감을 줄여준다. 커스텀 론치 콘트롤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스포츠카를 넘어 레이싱 머신이라고 해도 좋은 이유다.
최고수준의 고성능은 정교하게 다룰 수 있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일단 밟고 보는 묻지마 운전으로는 코너 몇 개를 지나기 전에 트러블을 만날 것이다. 그러니 이 차의 오너가 되고 싶은 이들은 계약하기 전에 드라이빙 스쿨을 먼저 수료하기를 권한다. 또한 차를 인도받은 후에는 꼭 서킷 주행을 경험해 봐야 한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차를 다뤄볼 수 있는 곳은 서킷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카를 알고, 기본적인 주행 기술을 습득한 운전자에게 카마로는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초보 운전자가 이 차를 운전하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패들시프트 덕분에 편하고 빠른 변속 조작을 할 수 있었다. 가끔, 시프트 업, 다운이 버벅대며 늦어지는 건, 속도에 맞지 않게 조작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다단변속기 10단 변속기는 ‘부드럽고 강한’ 모순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출해낸다. 부드럽게 시프트업이 일어나며 차체를 끌고 가는 아주 강한 힘이 시트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진다.
가급적 조향과 가속은 시간차를 두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게 낫겠다. 코너를 만나면, 제동, 조향, 가속의 순서로 하나씩 조작하라는 것. 제동과 조향, 조향과 가속을 동시에 조작하면 컨트롤하기 힘든 상황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또한 가속 페달은 한번에 깊게 밟기보다 시간을 두고 몇 단계로 나눠 깊게 밟는게 훨씬 빠르게 차를 움직이게 만든다.
6.2ℓ 엔진을 만나기 힘든 세상이다. 엔진 출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배기량을 감안해 보면 500마력도 안 되는, 겨우 453마력에 불과하다. 연료 한 방울을 따지는 다운사이징의 결과 4ℓ 엔진으로 6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만들어내는 게 독일 고성능 세단이다.
카마로는 다운사이징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힘이 더 필요해? 배기량을 늘리면 되지 뭐. 이런 식이다. 배기량 키워서 기름 더 때면 되는 거다. 시대의 흐름에 개의치 않고 나의 길을 가는 미국식 스포츠카다. 그들의 고집을 본다. 어쩔 수 없는 미국 차다. 좋다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름의 맛을 가진 차다.
카마로 SS는 5,428만 원의 행복이다. 8기통 400마력대의 스포츠카를 5,000만 원대에서 구입할 수 있다니. 주머니가 가벼운 스포츠카 마니아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일 수 있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10단 변속기를 올렸는데 연비는 이전보다 안 좋다. 8단 변속기를 사용했던 이전 모델의 연비는 7.8km/L였다. 10단 변속기를 적용했지만, 연비개선 효과는 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변속기를 교체한 의미가 반감되는 대목이다.
가격은 싸지만, 유지비는 비싸다. 배기량 때문에 연비가 안 좋고, 자동차 세금은 비싸다. 문짝 두 개인 스포츠카는 보험료도 싸지 않다. 싸게 살 수는 있지만 싸게 유지할 수는 없다.
오종훈 yes@autodiar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