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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로EV의 ‘단순명쾌’

주행가능거리 100km 남짓한 전기차를 심장 쫄깃하게 탔었다. 자꾸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는 건 정말 다시 하지 못할 일이었다. 말 그대로 후딱 한 바퀴 돌고 시승차를 반납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3~4년 전의 일이다.

이제 그럴 일은 없다. 전기차의 주행가능거리가 400km를 넘보고 있다. 서울-대전을 왕복하거나, 서울에서 부산까지 논스톱으로 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현대차 코나일렉트릭이 주행가능거리 400km를 넘겼고, 기아차 니로 EV는 385km를 기록하고 있다.

단순명쾌. 내연기관 차에 비해 전기차는 단순명쾌하다. 성능을 높이기 위해 연료 분사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실린더 형상은 어떻게 개선할지, 밸브 타이밍을 어떻게 더 개선할지, 더 큰 힘을 내기 위해 터보를 쓸지 말지, 배기가스는 어떻게 처리할지, 열관리는 어떻게 할지 등등의 문제가 전기차에선 사라진다.

배터리 용량을 늘리면 주행가능거리는 확장되고, 모터 회전수를 늘리면 고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 그게 전부다. 적어도 파워트레인과 관련해서는 그렇다. 지난 백여 년 동안 내연기관을 통해 쌓아온 엔진 관련 온갖 기술들이 필요 없게 된다. 허무한 일이다.

니로 EV도 그렇다. 엔진을 빼고 64kW짜리 리튬이온 배터리를 뒷좌석 바닥에 배치했다. 100kW 충전기를 쓰면 54분에 완충할 수 있다. 완속 충전은 9시간 넘게 걸린다. 자기 전에 충전기를 꽂아놓고 밤새 충전해야 한다.

충전구는 하나의 소켓으로 급속과 완속을 함께 쓰는 콤보 타입이다. 이전에는 구분됐었다. 하나의 충전구로 해결하게 됐으니 좀 더 편해진 셈이다.

전기차를 사면 차를 쓰는 패턴이 바뀐다. 낮에 주유소를 찾는 게 아니라, 밤에 집에서 충전하게 된다. 심하면 급속충전도 최소화한다. 낮에 하는 급속충전조차 심야에 하는 완속 충전 비용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타면 그렇게 짠돌이가 된다. 자연스럽게 그리된다.

소형 SUV인데 공간을 영리하게 만들었다. 뒷좌석은 무릎 앞으로 주먹 하나 드나들 공간을 확보했고 머리 위로도 넉넉하게 여유를 뒀다. 뒷차창은 원버튼으로 조작되지는 않지만 뒷시트에는 열선을 넣어 두 단계로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시트는 6:4로 접을 수 있어 트렁크 공간은 1,400리터 이상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패밀리카로 사용해도 좋겠다.

눈에 띄는 건 뒷좌석에 220V 전원구를 만들어 놓은 것. 야외에서 유용하겠다. 혹은 자연재해 등으로 정전됐을 때 이 220V 전원을 사용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전기차는 때로, 움직이는 발전소 혹은 움직이는 대용량 배터리의 역할을 하게 된다. 재난 상황에서 이보다 더 유용한 기능이 있을까.

주행모드는 4단계다. 스포츠, 에코, 노멀 3단계가 있고 어느 상태에서든 버튼을 길게 누르면 에코 플러스가 된다. 주행 모드에 따라 주행가능거리는 달라진다. 노멀 모드에서 269km인 주행가능거리는 에코 플러스모드에선 293km로 늘고, 스포츠모드에선 263km로 줄어든다.

드라이버 온리 모드는 공조장치를 운전자에만 집중시킨다. 에어컨이나 히터, 시트 히팅을 운전석에만 집중시키는 것. 이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시프트 바이 와이어(SBW) 방식의 변속레버는 동그란 형태의 레버로 작동한다. 버튼식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또 다른 느낌이다.

조용하다. 도로상태만 받쳐주면 조용하게 움직일 수 있다. 엔진 소리가 없어 주행 중 잡소리는 실제 이상으로 크게 들린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엔진 사운드가 사라진 소리의 빈틈을 비집고 잡음이 올라올 때가 있다.

너무 조용해서 잡소리가 부담스러울 때 오디오가 유용하다. 잡음에서 해방감을 누리게 해주는 크렐 오디오다. 음성명령은 편하게 작동하다. 적어도 한글 인식은 업계 최고다. 카카오 아이도 이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 기반의 서버형 음성 인식 기술이다.

휠 아래 두 개의 패들 버튼이 있다. 에너지 회생제동 시스템을 조절하는 버튼이다. 에너지 회생 강도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차간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며 회생제동을 수행하는 오토 모드도 있다. 이를 잘 이용하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도 차를 완전 정지까지 조절할 수 있다. 이른바 ‘원 페달시스템’이 가능해지는 것.

타이트한 코너를 돌아나가는 반응이 무척 깔끔하다. 가볍고 빠르게 코너링을 마무리한다. 가벼운 차체, 경쾌한 조향, 딱 잡아주는 낮은 무게중심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모터 출력은 204마력, 공차중량은 1,755kg으로 마력당 무게비를 따지면 8.6kg이 된다. 무척 효율이 높은 차다. B 세그먼트 SUV에서 204마력을 만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전기차여서 가능한 일이다.

기아차의 지능형 첨단 안전기술, 드라이브 와이즈는 무척 우수하다. 차선을 잘 읽고 그 중간을 유지하며 달린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차간거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끼어드는 차가 있을 때에도 유연하게 대응한다. 반자율운전의 측면에서 볼 때 현대기아차의 기술 수준은 업계 상위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킥다운 하면 휠 스핀이 일어난다.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자극적이면서도 묘한 이질감을 준다. 초기에 힘을 끌어모으는데 잠깐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탄력을 받으면 빠르게 속도를 올린다. 계기판 속도계를 기준으로 대략 계측해본 이 차의 100km/h 도달 시간은 약 8초 전후. 차급에 비해 무척 빠른 성능이다.

에코 플러스 모드에서도 킥다운 반응은 살아난다. 스포츠 모드에선 말할 나위가 없다. 가속하면 모터 소리가 먼저 올라온다. 스포츠카가 울고갈 반응이다. 엔진 소리 없이 빠른 고속으로 달리는 느낌은 묘하다. 소리와 속도감으로 꽉 차 있어야 할 느낌이 뭔가 빠진, 그래서 조금 비어있는, 기존의 균형이 무너진 생경한 느낌을 만난다. 터질듯한 엔진 사운드가 울려 퍼져야 할 속도에서, 바람 소리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속페달을 오래 밟을 수 없다. 워낙 빠르게 속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모드에선 어지간한 스포츠카들과 충분히 어울려 달릴 수 있겠다.

노면 굴곡을 잘 타고 넘어 괜찮은 승차감을 보인다. 소형 SUV여서 어느 정도 차체의 흔들림이 용인될 수 있는데, 차급에 비해 안정적인 자세를 보인다. 덕분에 아주 빠른 속도까지 부담 없이 가속을 이어갈 수 있다.

센터페시아의 화면을 터치하다 보니 “동급 가솔린 차량이 주행 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보다 6.9kg만큼 감축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만난다. 환경오염, 이상기후, 지구 온난화 등을 생각하면, 이제 소비자도 착한 소비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다. 그런 면에서 전기차는 가장 좋은 선택이 된다.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배터리 내구성이다. 배터리가 얼마나 버텨줄까. 기아차는 니로 EV의 배터리를 평생 보증한다. 일정 수준 이하로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 교체 받을 수 있다. 평생. 모터와 같은 전기차 관련 부품은 10년 16만km를 보증한다. 부품 내구성 때문에 전기차 구입을 망설일 이유는 없겠다.

시승차에서 내릴 때 확인한 시승 구간에서의 평균연비는 6.2km/kWh다. 공인 복합연비는 5.8km/kWh.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달려도 공인 복합연비 이상의 효율을 보였다.

가격은 조금 복잡하다. 보조금과 세금혜택 때문이다. 세제 혜택 후 판매가격이 프레스티지 4,780만 원, 노블레스 4,980만 원이다.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이 서울시 1,700만 원이고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3,000만 원 초반대에서 구매할 수 있다. 원한다고 다 살 수도 없다. 정부의 보조금이 바닥나면, 판매도 거기서 스톱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지붕 끝에 손을 넣어보면 거칠고 넓은 틈새를 만난다. 손가락이 드나들 정도로 재질의 단면도 거칠게 드러난다. 차급에 비하면 탓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기아차는 그동안 이런 부분을 잘 마무리해 왔었다. 잘 하던 마무리가 거칠어진 이유가 궁금하다.
센터페시아의 버튼들은 너무 많다. 아무 생각 없이 뿌려놓은 것 같다. 누르기 전에 버튼을 찾아 헤맬 때가 생긴다. 너무 많은 버튼을 앞두고 손가락이 길을 잃는 것. 터치식 모니터까지 갖춘 만큼 기능적으로 통폐합해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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