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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는 1.5, 혼다 어코드 터보

시나브로 자동차 엔진이 작아지고 있다. 4, 5리터급 엔진은 이제 찾기 힘들고 3리터급은 가뭄에 나는 콩처럼 드문드문 보인다. 반면, 2.0 리터 미만은 풍년이다. 대부분의 차들이 2ℓ 미만을 품고 있다. 다운사이징 바람이 빚은 풍경이다.

‘소형차 전용’ 이미지가 강한 1.5 엔진을 혼다가 보란 듯 중형차에 올렸다. 혼다 어코드 터보다. 2.0 엔진을 적용한 어코드 터보 스포츠, 1.5 엔진을 올린 모델은 어코드 터보다. 3.5와 2.4 엔진을 2.0과 1.5로 낮춘 것. 시승차는 1.5 터보 엔진을 사용한 어코드 터보.

10세대 어코드는 혼다도 이제 다운사이징 엔진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배기량은 줄이고 힘은 키우는 극한적인 효율을 추구했다. 혼다, 일본 메이커가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어코드는 미국 차다. 오랜 세월 미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형세단이다.

쿠페를 닮은 패스트백 디자인은 날렵하지만 어색하다. 아직 눈에 안 익은 탓이다.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는 법이다. 뒤가 낮아지면서 공간을 침해할 법하지만, 뒷좌석 머리 공간이 좁지 않다. 어코드 터보는 어코드 스포츠 터보와 달리 리어 스포일러가 없고, 17인치 타이어를 적용한 게 외관상 드러나는 특징이다.

1.5 엔진을 품은 어코드. 어떤 맛일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작은 엔진에 큰 차체는 한국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었다. 다운사이징의 ‘효율’을 추구한 게 아니다. 방점은 큰 차체에 있다. 엔진이야 어쨌든 그럴듯해 보이는 겉모습이 중요했던 것.

어코드 터보는 작은 엔진에 방점이 찍힌다. 배기량은 작지만, 중형크기의 차체를 끌고 달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 엔진 출력은 194마력이다. 1.5 엔진이 200마력에 육박하는 출력을 만들어내는 것. 속이 꽉 찬 엄청난 효율이다. 토크는 26.5kgm.

4890x1860x1450mm 크기다. 충분히 크다. 뒷좌석 공간이 이를 말한다. 다리를 꼬고도 남은 공간이다. 중형세단은 곧 패밀리세단인만큼 이 차급에서 공간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높이다. 이전보다 15mm를 더 낮췄다. 운전석에 앉은 채 문을 열어 두 다리를 땅에 짚을 수 있을 정도로 시트 포지션이 낮다. 무게 중심도 낮아서 주행안정감이 확실히 다르다. 도로에 딱 달라붙어 달리는 느낌이 확 살아난다.

무단변속기를 적용했지만 지속적으로 가속을 이어가면 중간중간 변속감을 느낄 수 있다. 밋밋하거나 심심하지 않아서 운전하는 맛이 살아 있다.

1.5 엔진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 힘을 만들어내는 건 직분사와 터보의 조합이다. 리터당 100마력을 훌쩍 뛰어넘는 효율이다.

어코드 터보는 배기량의 한계를 완전하게 극복했다. 생동감 있는 힘이 살아 있다. 힘의 부족은 극한적인 고속의 마지막 순간에서 잠깐 느껴질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의미 없는 속도다. 주로 만나게 되는 중저속 구간에서는 질 좋은 힘을 느낀다.
쥐어짜는 힘이 아니다. 터치는 힘이 아주 자연스럽다. 무심코 달리면,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럽다. 엔진 배기량을 의식하지 않으면 그렇다.

이게 1.5 엔진 맞아? 되묻게 된다. 자연스러움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엔진 배기량을 의식하는 순간, 그 힘이, 터지는 가속감이, 부드럽고 강한 힘의 질감이, 하나하나가 모두 놀랍고 충격으로 다가온다. 1.5 엔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 이게 말이 돼?

시속 100km에서 1700rpm으로 낮은 엔진회전수를 보인다. 변속레버를 이용해 3단으로 낮추면 rpm은 5600까지 올라간다. 잔잔하게, 혹은 거칠게 원하는 대로 달릴 수 있다.

중저속 구간에서 뭐라 흠잡기 힘들 정도로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중형세단은 패밀리세단이다. 가족이 함께 타는 차로서 무난함이 생명이다. 고속주행안정감보다 중저속에서의 편안함이 더 중요한 차다. 아빠 혼자 좋다고 기분 내는 차여서는 곤란하다.

가족을 태우고 무난하고 안전하게 달리는 능력이 중형세단에선 가장 중요하다는 것.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무난함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필요를 정확하게 꿰뚫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고려하는 무난함이다. 그런 면에서 어코드 터보는 무난했다.

공인 복합연비는 13.9km/L다. 가솔린 엔진을 적용한 중형세단에서 만나기 힘든 연비다. 아낌없이 힘을 끌어쓰면서도 연료 소비는 악착같이 줄인 결과다. 실주행 연비는 이보다 조금 더 좋았다. 파주에서 서울 강남까지 50여km를 달리며 실제 주행을 측정한 결과 15.3km/L를 기록했다. 교통체증이 심했음에도 공인복합연비보다 더 좋은 연비를 보여줬다.

차량 유지 과정에서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연료 소비가 적고, 배기량에 비례해 부과되는 자동차 세금도 저렴해서다. 충분한 힘을 갖췄고 유지비 부담이 크지 않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가장 재미있고 짜릿한 드라이빙은 코너에서 맛볼 수 있다. 더 낮아진 차체, 낮은 무게 중심에 힘입어 앞바퀴굴림 차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의 안정감을 보인다. 도로와 하나가 된 듯 밀착해서 달리는 느낌이 압권이다. 가족들 태우고 무난하게 달리는 어코드 터보의 반전이 코너에서 일어난다.

판매가격은 3,640만 원. 국산 중형세단, 준대형 세단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다. 합리적인 수입 중형세단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어코드 터보는 겁이 없다. 자신의 한계를 아랑곳하지않고 거침없이 도발한다. 고속주행을 힘차게 소화하고 윗급 엔진을 추월하는 도발적인 엔진 힘도 인상적이다. 중형세단에 어울리는 무난한 승차감을 가졌음은 물론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지붕 틈새 마무리는 거칠다. 틈새가 벌어져 있고, 손을 대보면 재질의 단면이 거칠게 드러나 있다. 직접 눈에 보이는 부분은 아니지만, 자동차의 마무리 품질을 가장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대중차 브랜드인 만큼 크게 흠잡을 수준은 아니지만, 조금은 더 신경을 써야 할 필요성은 있다.
센터페시아에 돌출된 모니터는 위험하다. 안전띠를 매고 측정하는 충돌 테스트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승객이 안전띠를 매지 않을 때도 있다.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을 도모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센터페시아의 모니터는 매립형이어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 의견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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