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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벤츠가 일군 130년 역사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벤츠의 역사는 130년에 이른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자동차 브랜드다. 130년간 벤츠는 어떤 차들을 만들었을까. 대표적인 벤츠 모델 10대를 통해 벤츠의 역사를 살펴본다.


1. 1886년 최초의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

1886년 1월 29일 벤츠가 처음으로 만든 가스엔진으로 움직이는 차량이 개발되었다. 내연기관이 만들어낸 동력으로 움직이는, 모든 자동차의 어머니 격인 현대적 개념의 자동차가 탄생한 것이다.

벤츠가 만든 첫 차는 마차라기보다는 움직이는 의자에 가까웠다. 쇠 파이프를 용접해 만든 뼈대 위에는 나무 의자가 놓였고, 앞에는 방향을 바꿀 때 쓰는 바퀴 한 개가, 의자 뒤쪽에 놓인 엔진의 좌우에는 엔진 힘으로 구르는 커다란 바퀴 두 개가 있었다. 벤츠가 자체적으로 만든 단기통 엔진의 힘은 말 한 마리가 하는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0.75마력. 100킬로그램 남짓한 무게의 차체에 한 사람을 태우고 달릴 때의 속도 역시 발 빠른 말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작동을 시작한 엔진이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커다란 플라이휠은 수평으로 놓인 채 회전하며 색다른 모습을 자아냈다.

2. 1904년 메르세데스-심플렉스 28/32 PS

고틀립 다임러는 1886년 첫 차를 만든 이후, 자신의 회사인 DMG(Daimler Motoren Gesellschaft)에서 빌헬름 마이바흐와 함께 수준 높은 고급 차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사업가 에밀 옐리넥의 조언에 힘입어 내놓은 새 모델은 판매와 모터스포츠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덕분에 메르세데스는 좋은 차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고, 이후 DMG의 모든 승용차에 쓰이기 시작했다.

메르세데스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이에, 마이바흐는 새로운 차를 개발하는 데 힘썼다. 초기 자동차는 주요 고객인 왕족과 부호들이 다루기에는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그래서 마이바흐는 엔진 밖에 노출되어 작동하던 부분을 부서지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엔진 안으로 넣는가 하면, 구조를 개선해 시동을 거는 과정이나 변속기 조작 방법을 단순화한 차를 만들었다. 지금의 자동차와 비교하면 여전히 복잡했지만, 당시 모터스포츠에 열광하던 백만장자들이 정비사의 도움 없이도 몰 수 있는 첫 차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새 차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다임러는 새로운 메르세데스에 간결함을 뜻하는 심플렉스라는 이름을 더했다.

1901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메르세데스-심플렉스는 큰 인기를 얻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도 개인적 관심을 보였다.

 

 

3. 1927년  메르세데스-벤츠 24/100/140 PS

1907년 이후 다임러의 기술 책임자는 고틀립 다임러의 아들 파울이었다. 그는 마이바흐의 뒤를 이어 메르세데스 기술 발전에 오랫동안 기여했지만, 이사회와의 마찰로 1922년에 회사를 떠났다. 그는 DMG를 떠나면서 슈퍼차저 엔진을 미완의 기술로 남겨놓았다. 슈퍼차저는 엔진 크랭크샤프트에 연결해 엔진과 함께 회전하는 압축기로,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압축해 성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메르세데스의 성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이 기술을 완성하는 일은 곧 후임자의 몫이 되었다. 그 후임자는 자동차 역사에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페르디난트 포르쉐였다.

탁월한 두 기술자의 손을 거쳐 슈퍼차저 엔진을 완성한 시기는 1924년이다. 배기량 4.0리터와 6.3리터의 두 종류로, 이 중 더 높은 출력을 내는 직렬 6기통 6.3리터 엔진은 당대 최상위 모델인 24/100/140 PS에 탑재됐다. 독특한 이름을 구성하는 세 개의 숫자는 엔진의 출력을 뜻한다. 맨 앞에 있는 숫자는 당시 독일에서 자동차 과세 기준으로 쓰인 계산상의 출력을 가리키는 이른바 ‘과세 출력’, 가운데 숫자는 실제 엔진의 유효 출력이다. 많은 차의 이름에 이 두 가지 숫자가 표시됐지만, 슈퍼차저를 단 메르세데스 차들에는 그 뒤에 슈퍼차저가 작동할 때의 출력을 나타내는 숫자가 하나 더 붙었다. 즉 24/100/140 PS의 엔진은 슈퍼차저가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100마력, 슈퍼차저가 작동할 때에는 140마력의 최고 출력을 냈다.

24/100/140 PS는 5인승 오픈 투어러를 기본으로 최고급 풀만 세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들 중 상당수는 섀시 상태로 독일 진델핑엔 공장을 떠나 세계 각지의 유명 코치빌더의 손으로 넘어가 개성과 화려함이 넘치는 차체를 품고 완성되었다. 1926년에 다임러와 벤츠가 합병한 뒤, 24/100/140 PS와 성능을 높인 24/100/160 PS는 1928년부터 630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0년에 후속 모델인 770 ‘그로서 메르세데스’에게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최고의 럭셔리 세단으로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이름을 높이며 S-클래스 디자인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4. 1934년  메르세데스-벤츠 W 25

20세기 초부터 유럽에서 인기 있던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는 메르세데스-벤츠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무대였다. 특히 새로운 규정을 시행한 1934년은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의 열기가 가득했다. 세계적 대공황의 여파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던 1930년대 초반 사람들에게 모터스포츠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동안 모터스포츠 활동을 쉬어야 했던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새 규정은 냉각수와 각종 오일류와 타이어를 제외한 경주차 무게를 750킬로그램 미만으로 제한해 ‘750킬로그램 포뮬러’라고도 불렸다. 그렇게 정한 데에는 치열한 경쟁으로 경주차의 출력과 최고 속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위험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주최 측의 의도였다.

메르세데스-벤츠가 만든 W 25 경주차는 앞 엔진 뒷바퀴 굴림 방식의 보수적 설계에 신뢰성이 입증된 직렬 8기통 3.4리터 엔진과 슈퍼차저를 결합한 기대주였다. 그러나 첫 경주 출전을 하루 앞두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차 무게가 규정에 정한 750킬로 보다 1킬로그램 가까이 무거웠던 것. 팀원들은 기계적인 부분에 손대지 않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시도했다. 심지어 차에 칠한 흰색 페인트까지 모두 갈아내고 나서야 겨우 무게를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W 25 경주차는 은빛 알루미늄 차체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경주에 출전했고, 결국 평균 시속 122.5킬로미터를 기록하며 가장 먼저 뉘르부르크링 서킷 결승선을 통과해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W 25 경주차는 연승 가도를 달리며 ‘은빛 화살’, 즉 ‘실버 애로우(Silver Arrow)’라는 별명이 붙었고, 다른 독일 브랜드들도 알루미늄 차체를 쓰면서 은색은 독일 경주차의 상징색이 되었다. W 25 경주차는 1936년까지 여러 그랑프리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실버 애로우’ 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모터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금까지도 그 명맥은 이어져 메르세데스-벤츠 F1팀 머신의 이름은 ‘실버 애로우’다.

5. 1938년 메르세데스-벤츠 170 V 카브리올레 A(W 136)

직렬 4기통 엔진을 얹은 170 V가 1936년 베를린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일 때만 해도, 이 차가 무려 20년 동안 생산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대적 자동차 세그먼트 기준이 자리를 잡을 무렵 170 V는 작은 엔진을 얹은 중형차 개념으로 메르세데스-벤츠가 내놓은 첫 차로 주목받았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포석이었지만, 그럼에도 실용성 높은 이 새 차는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상위 모델이 지닌 고급스러움을 이어받아 큰 인기를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장 많이 판매된 메르세데스-벤츠 170 V였다는 점은 개발 당시 의도한 실용성과 고급스러움의 결합이 성공적이었음을 입증했다.

엔진 배기량을 뜻하는 170 뒤에 붙은 V는 앞서 선보인 뒤 엔진 뒷바퀴 굴림 차 170 H와 구분하기 위해 엔진이 차 앞쪽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다. 모델 이름은 비슷하지만 두 차는 전혀 달랐다. 설계 책임자인 한스 니벨은 튼튼하고 안전하며 편안한 차를 만들기 위해 먼저 나온 170보다 더 발전된 설계와 기술V에 담았다. 단면이 타원형인 파이프를 X자 모양으로 결합한 뼈대는 튼튼하면서도 가벼웠고, 간단한 구조의 네 바퀴 독립 서스펜션과 엔진 진동을 억제하는 설계로 승차감이 뛰어났다. 1.7리터 엔진의 성격은 스포티하지는 않았지만 신뢰성이 높아 유지 관리가 편리했다. 더구나 38마력을 발휘하는 1.7리터 4기통 엔진은 이전 6기통(32마력)보다 실린더가 줄었지만 높은 출력을 발휘해, 오늘날 ‘다운사이징’의 선두주자격인 셈이다.

170 V는 폭넓은 수요를 고려해 다양한 형태로 제작했다. 대부분 비교적 점잖은 디자인이었지만, 2도어 2인승 컨버터블인 카브리올레 A는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으로 다른 모델과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다양한 수요를 충족하는 여러 장점에 힘입어170 V는 1942년 11월까지 7만2,000여 대를 생산했다.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가장 먼저 생산을 재개해 메르세데스-벤츠와 독일 재건의 기틀이 되었고, 여러 차례 개선을 거치며 1955년까지 살아남았다.

 

6. 1951년 메르세데스-벤츠 220 카브리올레 B(W 187)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메르세데스-벤츠는 폐허 속에서 미래를 열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모델 V와 고급형 모델인 170 S의 성공을 밑거름 삼아, 다시금 정상의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대형 럭셔리 세단을 개발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195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모습을 드러낸 220(W 187)과 300(W 186)이 그 첫 결실이었다. 220은 당시 메르세데스-벤츠의 실질적인 최고 모델로서 S-클래스의 직계 조상인 셈이다.

아직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탓에 겉모습과 뼈대에는 전쟁 이전의 모습이 많이 남았지만, 가장 중요한 심장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220의 2.2리터 엔진은 메르세데스-벤츠가 전쟁 후 처음 개발한 직렬 6기통 구조일 뿐 아니라,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새로 설계해 만든 것이기도 했다. 캠샤프트가 엔진 실린더 위에 놓이는 구조는 매우 현대적인 것이어서 전문가와 애호가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170 S의 직렬 4기통 엔진보다 훨씬 더 높은 80마력의 출력은 대형 세단을 움직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M 180이라는 형식명이 붙은 이 엔진은 우수한 설계 덕분에 개선과 더불어 명맥이 이어져 1989년까지 메르세데스-벤츠의 핵심 엔진으로 살아남았다.

220은 큰 차체와 높은 성능에 걸맞은 제동력을 내는 듀플렉스 방식의 앞 브레이크를 썼고 충돌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도어가 갑자기 열리지 않도록 원뿔형 도어 핀을 쓴 안전 도어를 처음 적용했다. 아울러 히터에 송풍용 팬을 다는 등 안전성과 편의성 면에서도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차체는 4도어 세단을 기본으로 2도어 2인승 컨버터블인 카브리올레 A, 2도어 4인승 컨버터블인 카브리올레 B가 함께 나왔고, 1954년에 쿠페가 추가되었다. 카브리올레와 쿠페는 세단보다 스포티한 디자인과 성능으로 럭셔리 스포츠 투어링 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220과 함께 메르세데스-벤츠는 다시금 독일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세계인의 기억에 각인될 수 있었다.

7. 1955년 메르세데스-벤츠 300 SL 걸윙

오랜 공백기 이후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의 순수 혈통 스포츠카가 부활한 것은 1954년의 일이다. 양산차를 스포티하게 손질한 것이 아니라, 모터스포츠의 설계와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정통 스포츠카였다. 이전까지 나온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와 달리, 이차는 세 꼭지별 엠블럼이 라디에이터 그릴 위가 아니라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빛나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 차의 이름은 바로 300SL. 많은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메르세데스-벤츠로 기억되는 차이기도 하다.

300 SL의 탄생에 메르세데스-벤츠 미국 판매상인 맥스 호프먼이 영향을 미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1950년대 초반에 과거 많은 스포츠카가 그랬듯, 경주차에 뿌리를 둔 스포츠카를 만들어주기를 메르세데스-벤츠에 요청했다. 경영진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당시 한창 활약하고 있는 W 194 경주차를 바탕으로 하는 스포츠카를 대량 생산기로 결정했다.

300 SL의 뼈대는 파이프를 입체적으로 용접한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로, 무게가 50킬로그램에 불과할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튼튼했다. 다만 차체 옆 부분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탓에 일반 승용차와 같은 형태의 도어는 달 수 없었고, 그래서 위로 들어 올려 열었을 때 마치 갈매기가 날개를 펼친 듯 아름다운 모습이 되는 이른바 ‘걸윙 도어’가 탄생했다. 또 당시 최상급 모델인 300에 쓰인 직렬 6기통 3.0리터 엔진에는 메르세데스-벤츠 양산차 최초로 기계식 연료 분사 장치를 달아 뛰어난 성능을 냈다.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엔진을 기울여 달면서 앞모습은 낮고 날렵하게 설계했고, 보닛에는 엔진 위에 공간적 여유를 두기 위해 길이 방향으로 두 개의 도드라진 부분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디자인 요소는 물론 기능과 디자인의 결합이라는 철학은 이후 선보이는 모든 메르세데스-벤츠 스포츠카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8. 1955년 메르세데스-벤츠 190 SL (W 121)

1954년 뉴욕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메르세데스-벤츠 300 SL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는 깜짝 놀란 이들의 시선을 빼앗을 또 하나의 차를 같은 장소에서 공개했다. 300 SL의 모습을 쏙 빼닮은, 아름다운 디자인의 2인승 컨버터블 190 SL이었다.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많은 사람 190 SL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디자이너 칼 빌페르트와 발터 해커의 손을 거쳐 다듬어진 양산 모델은 1955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되었고, 그해 여름부터 독일 진델핑겐 공장의 문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경주차에 뿌리를 둔 300 SL과 닮은 겉모습과 달리, 190 SL의 바탕은 중형 승용차인 180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스포츠카 중 처음으로 프레임 위에 차체를 얹지 않고 차체 자체가 프레임 역할을 하는 모노코크 구조로 만든 것이다. 오버헤드 캠샤프트 방식 직렬 4기통 1.9리터 엔진은 새로 설계한 것이지만, 앞뒤 서스펜션은 서로 다른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의 것을 이어받았다. 그 덕분에 정통 스포츠카라기보다는 편안하면서도 스포티한 주행 감각을 지닌 GT, 즉 그란 투리스모의 성격이 짙었다.

1950년대 중반 이후 경제 부흥과 더불어 자유롭고 활기찬 사회 분위기 속에서 편안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190 SL은 당대 젊은이들의 드림카로서 특히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가격은 1957년에 나온 300 SL 로드스터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판매량은 14배에 가까운 2만5,881대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 내 인기가 대단했다. 1955년부터 생산이 끝난 1963년까190 SL의 80퍼센트가 독일 밖으로 수출되었는데, 그중 절반 가까운 숫자가 미국 땅을 밟았다.

190 SL에서 시작한 현대적 메르세데스-벤츠 2인승 럭셔리 컨버터블의 전통은 꾸준히 이어져, 지금의 SL 로드스터에서도 일상 속 편리함과 여가를 위한 드라이버의 즐거움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9. 1960년대, 메르세데스-벤츠 280 SL 파고다 (W 113)

196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인 230 SL은 메르세데스-벤츠 스포츠카의 세대교체를 선언한 모델이다. 시대의 전설이 된300 SL과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은 190 SL의 뒤를 잇는 것은 물론, 두 차의 장점을 하나로 결합한 차였다. 이는 탁월한 주행 성능과 안정성을 갖춘 쾌적한 2인승 GT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앞서 나온 두 컨버터블과는 차별화되어, 승용차 설계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스포츠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많은 부분을 강화하고 개선했다.

특히 ‘핀테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220 SE의 기본 설계를 활용한 덕분에, 230 SL은 스포츠카 중 처음으로 안전 차체 구조 개념을 반영한 차로 기록되었다. 사고 때 차체 일부가 찌그러지면서 일차로 충격을 흡수하고, 견고한 탑승 공간이 이차로 탑승자를 보호하는 크럼플 존 개념이 쓰인 것이다. 고성능과 안전은 메르세데스-벤츠의 한결같은 최우선 가치였다.

230 SL은 처음부터 ‘파고다’라는 별명이 붙었다. 밝고 상쾌한 실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옆 창을 키우고 선택 사항인 하드톱이 안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도록 만들면서, 앞에서 봤을 때 차체 윗부분이 동양의 사찰 지붕이 연상되는 독특한 곡선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습은 전위적이라는 평가를 얻으며 2세대 SL의 상징이 되었다.

230 SL로 시작된 신세대 메르세데스-벤츠 컨버터블은 시간이 흐르면서 배기량이 더 크고 성능이 뛰어난 엔진을 얹은 250 SL, 280 SL로 발전했다. 가장 발전된 형태인 280 SL이 등장한 것은 1967년 말의 일이다. 280 SL보다 20마력 높아지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 시간은 9.0초(4단 수동 기준)로 2.1초 짧아졌다. 또 같은 세대 이전 모델보다 더 많이 판매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10. 1972년 메르세데스-벤츠 600 풀만(W 100)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선보인770  ‘그로서 메르세데스’와 전후 최고급 모델이던 300의 뒤를 잇는 메르세데스-벤츠 최고의 럭셔리 세단인 600은 196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600은 다른 브랜드의 초대형 럭셔리 세단 또는 리무진보다 한층 더 품격 있고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600은 처음부터 소수의 특별한 고객을 위한 차였고, 대부분 고객의 취향과 요구에 따라 맞춤 제작해 꾸밈새가 완전히 똑같은 차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벤츠 내부에서 W 100으로 불린 600은 4도어 세단으로도 제작했지만, 상당수는 차체 중간을 늘린 리무진 형태의 풀만으로 나왔다. 풀만 모델의 앞뒤 바퀴 사이 거리(휠베이스)는 요즘 경차 한 대가 쏙 들어갈 만큼 넉넉했고, 실내에는 7~8명이 탈 수 있었다. 도어는 4개와 6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뒤쪽 지붕을 여닫을 수 있는 런들렛 버전도 만들었다.

큰 차체를 감당할 심장으로는 새로 개발한 6.3리터 250마력 엔진이 쓰였다. 이 엔진은 메르세데스-벤츠가 전후 처음 내놓는 V8 엔진이면서 V8 엔진에 기계식 연료 분사 장치를 더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첫 사례이기도 했다. 길이 6.2미터, 총중량 3.4톤 남짓한 차체를 10초 이내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하고, 시속 200킬로미터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새 엔진의 공이 컸다.

안락함과 쾌적함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600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에어 서스펜션, 좌석 열선 기능, 파워 윈도 등 현대적 고급차의 필수 장비는 55년 전 600이 선보일 때 이미 갖추고 있었다.

600은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왕족, 유명 인사가 대중 앞에 설 때 그들이 지닌 권력과 명예를 상징하는 존재로 함께했다. 1964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한 600은 모두 2,677대. 그중 풀만은 59대의 런들렛을 포함해 겨우 488대뿐이었다.

 

이상진 daedusj@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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