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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E 페이스의 악착같은 충성심

재규어가 E-Pace를 내놨다. F 페이스에 이은 두 번째 SUV다. 재규어는 세단, 랜드로버는 SUV라는 경계가 이제는 확실히 무너진 셈이다.

아름답지 않으면 재규어가 아니다. 재규어는 역시 디자인이다. 세단에서 갈고 닦은 재규어의 유려한 디자인이 SUV인 E-페이스에도 살아있다. 언뜻 보면 여느 SUV와 다를 바 없는 뭉툭한 덩어리로 다가온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재규어의 디테일이가 살아있다. 쿠페라인의 지붕, 헤드램프이 아랫부분을 감싸는 J 블레이드 주간주행등, 매시타입의 그릴, 그 한가운데 박아놓은 표범, 아니 재규어의 얼굴 등이 그렇다.

시승차는 P250R 다이내믹 SE 트림. 6,470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차다. 가솔린 2.0 인제니움 엔진을 9단 변속기가 조율한다. 최고출력 249마력, 최대토크는 37.2kgm다. E-페이스의 가장 낮은 가격은 P-250S로 5,530만원이다.

블랙앤 아이보리 투톤 컬러로 구성된 인테리어는 작은 차 답지 않게 고급스럽다. 뒷좌석은 콤팩트 SUV치고 넓다. 필요한 공간을 확보했다.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는 넓고 시원한 하늘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통로.

뒷시트는 6:4로 접을 수 있다. 덕분에 트렁크는 484ℓ에서 최대 1141ℓ로 확장할 수 있다.

메르디앙 오디오 스피커 덕분에 귀는 호강한다. 질감이 풍부한 살아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피아노 건반소리, 기타 줄 튕기는 소리에 생생한 현장감이 실려있다. 어느 정도 소음을 안고 달려야 하는데 양질의 오디오 소리가 실내의 자잘한 잡음을 덮어버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스티어링휠은 2.4회전 한다. 길이 4,395mm인 작은 차에 걸맞는 타이트한 조향비다.

센터페시아에 심어놓은 10인치 모니터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고 여러 기능을 조절하게 된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면 연료 잔량, 주행가능 거리, 히터작동, 도어 오픈 등 원격조정이 가능하다.

돌출형 내비게이션 모니터가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재규어는 매립형 모니터를 보여주고 있다. 원칙을 지키는 자세다. 대시보드에는 위해를 가할만한 각을 찾을 수 없다. 안전한 디자인의 모범이다. 칭찬할만하다.

SOS 버튼과 정비 요청 긴급호출 버튼이 있어 비상시를 대비하고 있다. 그게 있다는 점만으로도 운전자는 든든하다. 여차하면 연락할 곳이 있다는 것, 든든한 지원부대가 대기하고 있음을 두 개의 버튼이 말하고 있다.

콤팩트지만 폭이 넓다. 1900mm. 몸을 기울여 오른팔을 쭉 뻗어도 조수석 차창에 닿지 않는다. 그만큼 넓다. 넓어서 좋은데, 좁은 길에선 조금 불편할 때가 있다. 서울엔 왜 이리 좁은 길이 많은지….

도로에 나서면 날렵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조향이 부담 없다. 짧은 길이에 사륜구동 시스템이라 뒤가 미끄러질 염려가 크지 않다. 노면 굴곡을 툭툭 타고 넒을 때마다 서스펜션의 완성도를 느낀다. 서스펜션이 중요함을 새삼 느낀다. 충격을 잘 흡수하고 있다.

오토스톱은 차가 멈출 때마다 작동한다. 툭하면 숨을 안 쉬어버리는 통에 엔진 공회전 소리를 들을 새가 없다. 이 상태에서 스티어링 휠을 살짝 돌리면, 바로 시동이 걸려버린다. 그 직전에 약간의 저항점이 있다. 넘기면 시동이 걸리고, 안넘기면 조용히 숨죽여 있다.

2.0 가솔린 인제니움 엔진이다. 9단 자동변속기가 조율해 249마력의 힘을 만들어 낸다. 다운사이징에 다단변속기 조합이다. 최대토크는 37.2kgm로 1,500~4,500rpm 구간에서 고르게 발휘된다. 중저속은 물론 중고속까지 커버하는 효율적인 엔진이다.

주행모드는 빙판/눈길, 에코, 컴포트, 다이내믹 모드가 있다. 다이내믹을 택하면 확실한 힘을 만나게 된다. 붉은 계기판, 두세음 올라간 사운드, 신경질 부리는 가속 반응. 스포츠 모드에서나 만날 수 있는 반응들이다.

엔진 사운드가 멋있다. 듣기 좋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조건 중 하나, 사운드다. 소리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프리미엄이라 하기 힘들다. 대충 만든 엔진 사운드로 프리미엄이라 하면 안 된다. 엔진 사운드로 보건데, 이 차 프리미엄의 자격을 갖췄다.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라 잘 다듬어진, 듣기 좋은 소리다. 그 안에 성능이 담긴 사운드.

공차중량은 2,220kg으로 마력당 무게비가 8.9kg에 달한다. 시속 100km 도달 시간은 7.0초. 일반적인 수준보다 훨씬 높은 성능 효율이다.

235/55R19 사이즈의 타이어를 신었다. 55시리즈는 오프로드까지 감안한 타이어 세팅으로 보인다. 실제 속도와 체감 속도 차이가 없다. 솔직한 속도감이다. 차가 높아 바람 소리를 피하지 못하는 탓이다.

시속 100km에서 9단 1,500rpm을 보이는가 하면 3단 6,000rpm까지도 커버한다. 3단에서 9단까지 100km/h를 커버한다. 그만큼 운전자의 선택 폭이 넓다.

스포츠 모드에서 수동 변속을 하면 자동변속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높은 rpm까지 물고 올라간 뒤에도 운전자가 직접 변속하지 않으면 끝까지 기어를 물고 있다. 악착같은 충성심이다. 운전자가 시프트 업 해야 비로소 rpm이 잦아든다. 울적한 날, 찐하게 달리고 싶을 때 스포츠 모드에 수동 변속을 택하면, 후회는 없겠다. 다만 이 조건에서 명심해야 하는 건, 온도 관리다. 엔진 냉각수, 변속기 오일 온도를 보며 달려야 한다. 괜히 엔진 과열로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급제동을 했다. 앞이 콱 숙여질 만큼 강하게 제동했는데, 앞이 숙여지지 않았다. 서스펜션이 잘 버티면서 속도를 줄인다. 맥없이 주저앉는 게 아니어서 듬직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데 뭔가 걸린다. 앞 차창 좌측 아래에 재규어 두 마리가 있다. 어미와 새끼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다. 일종의 유머가 아닐까. 숨은 유머 코드다.

메이커 발표 공인 연비는 9.0km/L. 파주에서 서울 교대역까지 54km를 달리며 실제로 측정해본 연비는 12.3km/L다. 공인 연비를 훌쩍 뛰어넘는 우수한 연비다. 결국, 연비는 운전자 하기 나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차로유지 조향보조 시스템은 차로 가운데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한다. 차선에 걸칠 때 비로소 조향이 개입하기 때문에 충격이 크다. 무심코 있을 땐 마치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는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수준이다. 차로 중앙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 더 다듬었으면 좋겠다.
변속레버 주변부 디자인은 흔들리고 있다. 원형 변속레버를 없애고 주행모드 선택 버튼도 바꿨다. 그동안 쌓아놓은 재규어의 특색을 과감히 허물었는데 대안이 확실치 않다. 제자리를 못 찾는 느낌이다. 가구들이 빠진 빈방의 느낌이랄까. 뭔가 어중간하고 허전하다. 이 부문 디자인은 다시 완전히 허문 뒤 처음부터 다시 만들 것을 권한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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