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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 크로스컨트리, 오지랖 넓은 왜건

늘씬하게 빠진 몸매가 인상적인 볼보 크로스컨트리를 만났다. SUV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XC90이 뭉툭한 덩어리의 느낌이라면, 크로스컨트리는 기름기 쪽 뺀 날씬한 몸매다. 크로스컨트리는 한국 이름이다. 본명은 V90. V는 왜건에 붙는 접두사, 90은 최고급 모델에 붙는 계급장같은 숫자다. 결국, 크로스컨트리는 최고급 왜건인 셈이다.

왜건의 자리는 틈새다. SUV와 세단의 틈새, 일상 출퇴근용과 주말 레저용의 틈새, 이쪽과 저쪽을 아우르는 오지랖 넓은 차다. 많이 팔리진 않는다는 게 함정이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가부간에 분명한 걸 좋아하는 사회에선 오지랖 넓은 걸 좀처럼 받아주지 않는다. 경직된 사회일수록 그렇다.

한국이 해치백의 무덤이라고는하지만 왜건만큼이야 할까. 스테이션 왜건, 슈팅브레이크, 에스테이트, 아반트 등등 그럴듯한 다른 이름을 붙여 왜건이 아닌척 하지만 결국 왜건의 다른 이름들이다.

크로스컨트리는 단정하지만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디자인이다. 안으로 파고든 라디에이터 그릴은 세로 바를 배치했다. 토르의 망치를 담았다는 헤드램프에는 풀LED 액티브 하이빔이라고 적혀있다. 스스로 하이빔을 조절한다는 의미다.

볼보는 조금 밝아도 좋다. 스웨디시 럭셔리의 분위기를 잘 드러낼 수 있어서다. 고급 차라면 짙은 컬러에 착 가라앉는 무거운 분위기가 대부분이지만 볼보라면 그러지 않아도 좋겠다.

얇은 옆모습은 전형적인 왜건 스타일이다. 최저시장고 210mm로 노면과 제법 여유 있는 거리를 두고 있다. 어지간한 SUV보다 높다. 휠하우스에는 235/50R 19 사이즈의 미쉐린 타이어가 들어가 있다. 편평비 50이다, 소음과 승차감에 조금 더 신경 쓴 선택이다.

메이커가 밝히는 이 차의 복합연비는 10.9km/L다. 4등급.

리어 램프는 뒷모습의 중심을 딱 잡는다. 다소 복잡한 형상이지만 차의 테두리 분명하게 드러내며 강한 임팩트를 전한다.

트렁크에는 버튼 하나로 뒷 시트를 접을 수 있고, 트레일러 토우도 버튼으로 꺼낸다. 버튼으로 시트를 접고 펴며, 토우를 꺼낼 수 있으니 낑낑대며 힘쓸 일이 없다. 트렁크는 560ℓ에서 1,526ℓ까지 확장 가능하다.

뒷 시트를 접으면 훌륭한 침대가 된다. 혼자서 편하게 드러누울 수 있다. 둘이라면 조금 좁아서 더 좋겠다. 큰길에서 살짝 벗어난 길, 산 높고 물 맑은 곳에 차를 세우고 아주 편하게, 늘어지게 한숨 잘 수 있는 차다. 물론, 짐을 싣고 화물차로 쓸 수도 있다. 왜건은 그런 차다.

SUV보다 낮은 듯 보이지만 뒷좌석 머리 위 공간은 충분하다. 무릎 앞으로 주먹 두 개가 넉넉히 드나든다. 남는 공간을 제한하는 건 센터터널이다. 무척 높게 솟은 터널은 공간을 좌우로 갈라버린다. 사륜구동차여서 어쩔 수 없다지만, 뒷좌석에 3명이 앉을 땐 센터터널이 많이 걸린다. 230V 가정용 전원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레저용 차로 엄청난 강점이 된다. 캠핑 등 아웃도어 활동할 때 아주 쓸만하겠다. 시원한 선루프로 쏟아지는 탁 트인 하늘은 덤이다.

블랙앤 브라운. 투톤 인테리어는 일단 밝아서 좋다. 차 안에 들어앉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다. 나파가죽시트에 촘촘히 드러난 스티칭은 ‘고급’이고 ‘정성’이다.
센테페시아에 세로로 배치된 9인치 모니터는 768×1020픽셀의 해상도를 가졌다. 선명하게 보이고 누르지 않고 살짝 터치만 해도 잘 알아듣고 반응한다.

시동 버튼은 섹시하다. 살짝 비트는 느낌이, 누르는 것과는 또 다르다. 스티어링 휠은 2.8회전한다. 4940mm로 5m 육박하는 길이지만 조향비는 짧게 세팅했다.

하만카돈의 1,476W 출력의 앰프에 19개 스피커를 사용하는 바워스 앤 윌킨스 오디오는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소리로 실내를 가득 채웠다.

가솔린 T5 엔진은 직렬 4기통으로 254마력의 힘을 낸다. 리터당 100마력을 훌쩍 뛰어넘는 고효율 고성능 엔진이다. 8단 변속기가 그 힘을 조율한다.

시속 100km에서 1,700rpm을 보인다. 수동변속을 이용하면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3단까지 내릴 수 있다. rpm은 4,900rpm으로 치솟는다. 속도와 변속기 기어를 아주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는 게 다단변속기의 묘미다.

시속 100km 안팎의 속도에서 차는 노면 굴곡을 지그시 밟으며 달린다. 편하게 순항하는 느낌이다. 시끄럽지도 않고 진동도 거의 없다. 차분하고 조용한 가솔린 엔진이다. 세단과 크게 차이 없는 반응이다.

오프로드 주행을 대비한 HDC 기능이 있다. 저속 크루즈 기능이다. 오프로드에서 전진은 시속 10km, 후진 7km/h의 속도로 정속 주행할 수 있다. 오프로드에선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주행모드는 에코 컴포트 다이내믹, 오프로드 모드가 있다. 다이내믹 모드에선 엔진 사운드가 보란 듯이 살아난다. 컴포트와 에코 모드에서는 소리의 결이 또 다르다.

끈질기게 가속하다 페달을 툭 놓는 순간, 꽤 오래 코스팅 기능이 활성화된다. 연료 소비를 줄이며 움직이는 구간이 된다.

쏜살같은 맛은 아니다. 힘을 끌어모아 차근차근 속도를 높인다. 중간에 지치는 법 없이 고속까지 치고 달린다. 운전자가 느끼는 체감속도와 실제 속도 차이가 크지 않다.

고속에서 차의 흔들림이 조금 증폭되는 느낌이 있다. 가속이 무뎌지고 바람 소리는 커진다. 그래도 큰 불안감이 없는 건 사륜구동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주행 질감이 딱 좋은 왜건이다.

파주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약 54km를 에코모드로 차분하게 달리며 점검해본 실주행 연비는 13.0km/L 수준이었다. 공인연비 10.9km/L보다는 훨씬 우수한 성적표다. 연비는 운전자 하기 나름이다.

재미있는 건, 마력당 무게비와 흔히 제로백으로 말하는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다. 공차중량 1,876kg으로 마력당 무게비 7.4kg. 제로백은 7.4초다. 마력당 무게비와 제로백이 7.4로 딱 들어맞는다.

어댑티브 크루즈와 차선유지 조향보조 시스템은 정확하게 작동한다. 좌우로 갈지자 행보를 보이지도 않는다. 대체로 중앙을 유지하면서 차로를 따라 잘 달렸다.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코너에서도 스티어링휠을 강하게 조작하며 차로를 유지했다. 보행자도 인식하고, 더구나 야간에도 주간과 똑같이 작동한다고 한다. 운전자 보조 주행장치(ADAS)는 편의 장비이기도 하고, 안전장비이기도 하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 지도로 꽉 채운 계기판은 컬러풀하다. 자연스럽게 앞을 보면 깔끔한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펼쳐진다. 시선이 가는 곳에 모니터가 있고, 필요한 정보를 띄워준다.

안전에 관한 한 가장 앞쪽 그룹에 볼보가 있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면, 볼보를 택하는 게 답이다.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더욱 현실적이다. 크로스컨트리는 6,770만 원 크로스컨트리 프로는 7,390만 원이다.

크게 본다면 장점도 단점도 ‘왜건’이라는 사실이다. 세단 아니면 SUV로 양극화된 국내 시장에 왜건이 설 수 있는 공간은 무척 좁다. 성공한 왜건을 찾기도 힘들다. 한국에선 그렇다. 왜건이라서 싫은 사람이 많은 거다.

하지만 정반대도 가능하다. 왜건이라 좋은 것. 크로스컨트리가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격과 기능, 성능, 디자인 등이 만족스럽다.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면을 추구하는 소비자라면 크로스컨트리는 가장 만족할만한 후보 중 하나다. 게다가 많이 팔리는 차가 아니니 희소성도 크다. 남들 다 타는 차 싫다면, 이 차 눈여겨 볼 필요있다. 왜건이지만 괜찮다. 참 괜찮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음성인식은 반응이 없다. 스티어링 휠에 음성명령 버튼은 있는데 눌러도 대답이 없다.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다. 음성명령은 국내에선 지원이 안 된다. 버튼은 있는데 쓰지 못하는 기분이 유쾌할 수는 없다. 기능을 담던가, 버튼을 빼던가.
조수석 앞 대시보드는 칼날처럼 예각으로 마무리했다. 바람직하지 않은 수준을 넘어 위험한 디자인이다.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볼보가 어떻게 이런 디자인을 했을까.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다.

오종훈 yes@autodi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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