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ℓ에서 시작한 심장은 점점 줄어 4ℓ가 됐지만, 힘은 더 커져 급기야 600마력을 넘었다. 3.5초 만에 시속 100km를 넘어서는 차, 메르세데스-AMG S63 4매틱 L을 시승했다.
이름이 길다. 메르세데스의 고성능 브랜드 AMG가 S클래스를 기본으로 만든 고성능 럭셔리 세단. 6.3 리터급의 힘을 내는 사륜구동으로 휠베이스가 긴 모델 정도로 이름을 풀 수 있겠다. 이름에서 벤츠는 사라졌다. AMG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다.
3개의 트윈 루브르가 적용된 라디에이터 그릴은 섬세하고, 프런트 에이프런은 과감하다. 그릴 위에 배치된 AMG 뱃지는 작지만 상징성은 크다. 멀티빔 LED 헤드램프는 현존하는 최고의 기술을 담은 헤드램프다. 운전자의 시야를 최대한 보장해주지만 맞은 편 운전자의 눈부심은 막아주고, 차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빛을 쏘아주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전조등이다.
옆모습은 중후함 그 자체다. 지방이 없는 팽팽한 근육 위로 매끈한 슈트를 입은 모습이다. 길이 5,287mm에 휠베이스는 3,165mm에 달한다. 보닛은 길고 트렁크 리드는 짧게 떨어진다. 앞뒤로 20인치 타이어가 휠 하우스를 꽉 채웠다. 타이어 사이즈는 앞이 255/40R20, 뒤가 285/35R20 이다. 휠 안으로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이 자리했다. 앞 펜더에 V8 바이터보 뱃지가 눈에 띈다.
AMG S63에는 AMG 퍼포먼스 배기시스템이 기본 탑재된다. 뒷범퍼 아래 좌우 두 개씩 모두 4개의 배기구를 가진 배기 시스템이 이 차의 성능을 암시하고 있다.
실내는 넓다. 뒷좌석이 그렇다. 럭셔리, 즉 고급스러움은 결국 공간에서 만들어진다. 아무리 최고급 소재를 사용해도 좁은 공간에서는 빛을 발할 수 없다. 대단한 공간이 최고급 소재를 사용해 만든 인테리어의 수준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무릎 앞으로 한 뼘을 훨씬 넘는 공간이 남는다. 머리 위로도 여유가 충분하고 헤드레스트는 푹신한 가죽 베개를 덧댔다. 잠을 부르는 포근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시승차는 5인승이다. 뒷좌석 가운데 자리를 없애 4인승으로 만든 모델도 있다. 센터 터널이 높아 5인승으로 사용하기엔 불편하다.
64개 컬러로 변하는 은은한 앰비언트 라이트는 탑승객의 심리적 만족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스마트폰 핫스팟을 이용해 차 안에 인터넷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부메스터 오디오는 숨소리, 바이올린의 작은 떨림까지도 큰 감동을 담아 전달해 준다. 음의 깊이와 질감이 여느 오디오와는 확연히 다르다. 맹수의 울음소리를 내는 엔진 사운드와 부메스터 오디오의 섬세한 소리가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스티어링휠은 정확한 원형에서 벗어나 있다. 아래와 좌우가 원형이 아니다. 둥근 휠을 돌릴 때의 단조로움을 피했다. 스티어링휠은 2.3회전 한다. 이 큰 차를 스티어링 휠 단 두 바퀴로 다룰 수 있다. 명쾌한 조향이다.
최고급 나파가죽으로 덮은 실내는 고급감을 최고치로 끌어 올린다. 브라운 컬러를 더해 모노톤의 지루함을 덜었다. 센터 페시아 중앙에 박아 놓은 IWC 시계는 고급의 끝이 아날로그 시계임을 아는 이에게 보내는 신호다.
31.2cm의 컬러모니터는 시원 깔끔해서 편하다.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상단을 두 개의 모니터로 이어서 구성했다. 아주 다양한 기능들을 이 안에서 직접 조절할 수 있다.
시트도 한몫한다. 마사지 기능으로 피곤함을 덜어주고 다이내믹 시트 기능으로 지우는 몸을 지지해준다.
교통표지판 어시스트,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 나이트 뷰 어시스트 등 하나같이 어시스트가 붙은 기능들이 많다. 어시스트 즉 보조장비임을 말하고 있다. 책임 안 진다는 의미다. 운전의 책임은 운전자 몫이다.
첫 발짝 떼는 느낌이 무척 고급스럽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에는 2톤이 넘는 육중한 느낌이 담겨있다. 꾸욱, 가속페달을 끝까지 밀어냈다. 발은 페달을 밀고, 시트는 몸을 민다. 날개를 펴면 날아오를 듯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가속페달 함부로 밟을 일이 아니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날아오를 듯 달린다.
디스트로닉 플러스는 아주 간단히 작동을 시작한다. 차 스스로 조향에 개입하고 차간거리를 유지한다. 가끔씩 핸들을 쥐라는 경고만 없다면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는 셀프 드라이빙 수준으로 즐길 수 있다. 교통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중저속 구간에서 엔진은 조용 차분하다. 고성능이 아닌 듯 포커 페이스하며 그저 최고급 세단 분위기만 물씬 풍긴다.
가속페달을 툭 쳐보면 안다.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자그마치 612마력의 힘이다. 공차중량 2,275kg로 마력당 무게비는 3.7kg, 메이커가 밝히는 0~100km/h 가속 시간은 3.5초다.
6.3ℓ에서 시작된 엔진은 5.4ℓ를 거쳐 4.0ℓ까지 배기량을 줄였다. 이전세대 5.4ℓ 엔진 출력은 585마력, 4.0 리터 엔진은 612마력이다. 연비도 7.3km/L에서 7.8km/L로 개선했다. 마법 같은 기술이다.
그중 하나, 실린더 비활성화 시스템이 있다. 2, 3, 5, 8번 실린더를 주행 상황에 따라 비활성화시키는 것. 정속주행 상황에서 8기통 엔진을 4기통만 사용하는 것. 이를 계기판에서 알려준다.
시속 100km에서 1,200rpm까지 떨어진다. 놀라운 건 변속기 2단에서 시속 100km를 커버한다는 사실. 2단에서 100km/h를 커버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자동변속을 허용하지 않는 수동모드로 가속하면 2단에서 110km/h까지 올릴 수 있다. 미친 2단이다.
고속주행까지는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다. 600마력이 넘는 미친 힘을 큰 부담감 없이 다룰 수 있는 건, 차의 각 부분이 운전자를 잘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고속주행에서도 불안하지 않았다. 타이어, 서스펜션, 사륜구동 시스템 등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차의 안정을 유지했다.
스포츠 배기시스템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달라진다. 배기플랩을 이용한 사운드는 크게 자극적이지 않은데 감성을 건드린다. 영혼을 터치하는 낮고 강렬한 소리다. 호랑이 등에 오른 듯, 운전자의 마음을 흥분시킨다. 가속 마치고 마지막 발을 뗄 때 마무리하듯 털어내는 소리도 인상적이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 가속력을 이 차에서 오랜만에 느꼈다.
극한적인 고성능이 놀라운 것은 잘 제어된다는 사실이다. 힘을 주체하지 못해 일어나는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을 만나지 못했다. 운전자가 부족한 부분을 적절하게 보완해 준다. 주인을 잘 따르는 맹수다. 그래도 이 차를 제대로 다루려면, 기본적인 드라이빙 테크닉은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이트한 코너에서도 반응은 안정적이다. 속도는 제법 빨랐지만, 안정감을 유지하며 진입한 뒤 탈출했다. 타이어와 서스펜션, 특히 사륜구동이 차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힘은 남고, 서스펜션은 단단했고, 타이어는 여유가 있었다.
AMG S63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다. 편안하게 달릴 땐 럭셔리 세단의 고급스러운 중후함이 있다. S 클래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며 작정하고 달릴 땐, 슈퍼카 뺨치는, 아니 슈퍼카를 뛰어넘는 파워와 성능을 보인다. 612마력의 힘이 겨우 4ℓ 엔진에서 터져 나온다. 4ℓ 엔진의 마법이다.
2억5,100만 원이다. 100만 원 깎아달라면 깎아줄지 모르겠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보닛 끝에는 벤츠 삼각별 엠블럼이 세워져 있는데 그 아래 또 하나의 작은 벤츠 엠블럼이 있다. 중언부언, 역전 앞이다. 하나만 있는 게 좋겠다. 트렁크 천정에는 맨 철판이 드러나 있다. 최고급 S 클래스에서도 AMG S63 아닌가. 격에 맞지 않는 허접스러운 모습이다. 지붕 가리는 데 얼마나 든다고 2억 5,100만 원짜리 차에 맨 철판을 드러내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열선 시트와 냉풍 시트를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둘 중 하나만 작동하는 게 맞다.
오종훈 yes@autodiary.kr